스트레스

by 간질간질

싸다구 씨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소시민 직장인이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물려줄 재산도 없다. 적당한 빚과 적당한 친구들과 적당한 삶을 누리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다.


싸다구 씨는 요즘 스트레스를 받는다. 회사의 간부 자리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고 나서는 자신의 유일한 소득원인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봐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나이가 50이 넘어 임시직원이라 놀림받는 임원이 되지 못하는 직장인이 민간회사에서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길을 막고 시위하는 민노총을 불편해하던 사람들도 왜 우리 회사에는 노조가 없는지 또는 노조가 있더라도 왜 이리 약한지 불만을 터뜨린다. 싸다구 씨는 남에게 스트레스를 넘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쌓아둔다.


스트레스는 누군가 주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자 무게이고 상대방이 약하다고 생각될수록 흉기가 되어 보이지 않는 깊은 상처를 만든다. 무협영화나 게임에 등장하는 기를 쏘아내서 상대를 제압하는 현실이 어디 있냐고 비웃지만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를 쏘아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무기는 존재한다.


공격무기가 그렇듯 누군가는 쏘아내고 그걸 맞으면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받는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는 상사가, 조직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국가라는 공권력이 와이파이 전파를 발산하듯 스트레스를 쏘아댄다. 와이파이를 수신한 스마트폰처럼 싸다구 씨라는 몸의 단말기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중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이래 봤자 스트레스를 피하는 거나 이겨내라는 이야기의 각종 변종 수단들을 각자 알아서 하는 일 밖에 없다. 약물에 의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오십 줄에 들어간 싸다구 씨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은 속살을 드러내고 거리를 다니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다. 젊은 사람들은 신체를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고, 미국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당당하게 노출하고 다니지만 중국인 아저씨들이 웃통을 벚어젖힌 모습이 불편하듯 싸다구 씨는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다.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싸다구 씨의 소심함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고스란히 증폭하는 기능이 발달했다. 진화론은 생존을 위해 특별한 기능이 발달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싸다구 씨의 진화 방향은 지금 시대를 살기엔 적합하지 않은 종인 듯하다.


그래서 싸다구 씨는 자기 몸을 갉아먹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버티는 중이다. 스트레스가 오면 차곡차곡 몸에 쌓아둔다. 몸 한 구석이 터지거나 찢어질 때까지 버티기. 전통적인 소시민들이 하는 유일한 대응책이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포식자가 나타나면 맞서 싸우기보다 누구보다 빨리 도망치거나, 땅굴 같은 자기만의 요새로 틀어박혀 농성전을 준비한다. 스트레스라는 포식자에게 잡히지 않으면 생존한다. 해결. 스트레스라는 포식자에게 잡혀서 잡아먹혀도 역시 해결. 싸다구 씨라는 특정 개체의 죽음으로 싸다구 씨라는 종은 살아남았으니 자연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세상은 문제없이 돌아가게 된다.


싸다구 씨는 한껏 농성을 하며, 여기저기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는 손짓을 한다. 싸다구 씨도 안다. 구원의 손길을 보내는 수많은 다른 싸다구 씨들에게 안쓰러움의 눈길과 여유 있을 때 한 끼 식사를 준 적은 있어도 다른 싸다구를 위해 목숨을 걸거나 내 땅굴을 내어준 적은 없다. 다른 싸다구들도 싸다구 씨에게 진심이 담긴 위로와 공감을 하지만 자신의 땅굴을 내줄 생각도 여력도 없다.


싸다구 씨는 지금 벌어지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그동안 겪은 것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홀로 맞서는 중이지만 피할 수 있는지, 막아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오십 줄의 낡고 기름진 육체가 잘 버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돌멩이와 수제비에게도 싸다구 씨의 상황은 공유되었다.

"싸다구 선배 어쩌지?"

"그러니까... 어떻게 하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좀 알아봐 어디 싸다구 선배 갈 곳이라도 있을지...:

"그래 너도..."


수제비와 돌멩이 중 누구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돌멩이와 수제비 역시 분류상 싸다구 종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3명 중 누구의 이름을 넣어도 된다. 싸다구 종은 살아남지만 어느 싸다구가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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