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빠진 사람을 알고 있다. 진심 사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우연히 인연이 닿았다. 그분은 사전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회사 다니는 동안 사전 서비스를 담당했고, 사전을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을 갔으며 사전 관련해서 책을 냈다.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돈은 못 벌었다.
우연히 만났겠지만 여전히 아주 가끔 만나는 사이인걸 보면 유유상종이란 말은 맞다. 나도 이런저런 수식어를 덧 붙이지만 사전이란 것을 혼자 만들면서 좋아하고 있으니 말이다.
브런치에 글을 써도 되는데, 굳이 구독자 하나 없는 티스토리에 만든 것은 돈 때문이다. 돈은 적나라한 표현이다. 적나(赤裸. 옷을 벗어 붉은 몸을 그대로 드러냈다는)는 참 잘 만들어진 단어다. 모든 옷을 벗고 몸을 드러냈다는 표현이니 직접적이고 꼬지 않아 명확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수익 때문'이라고 돌려 말하겠지만 공식회의를 끝나고 모이면 '결국 돈 벌자고 하는 거잖아!'라고 적나라해진다.
티스토리에는 광고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광고를 붙이면 사람들의 클릭수에 따라 몇 원이라도 적립이 되고, 몇 원이라도 챙기면 버스 한번 탈 돈은 생기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Rule은 항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거다. 다른 말로 '공짜는 없다'는 말.
아래 링크를 눌러서 가본다면 구경해야 될 것은 내용이 아니라. 첨부된 이미지들이라고 소리를 높여본다!
오로지 목적이 돈 하나 때문은 아니다. 읽어 본 적은 없지만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온다는 빵집 주인 이야기처럼-국부론에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있을 뿐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자애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유리함을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 빵집 주인이 빵을 만들지 몰라도 자본주의에는 또 다른 반대방향으로 동일한 법칙이 작용한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 빵집 주인은 '팔릴 만한 빵을 만든다'는 대가를 지불해야 먹고살 수 있다. 광고를 붙인다고 한들 사람들이 사지 않으면-블로그에 방문해서 읽지 않으면- 돈을 목적으로 한 티스토리는 곰팡이가 슬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뭔가 팔릴만한 포장을 해야 한다.
여전히 사람들이 이 빵집을 찾을지는 알 수 없다. 빵집 주인 입맛에 맛있다고 한들 사람들 입맛에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또 하나. 정말 맛있는 팥빵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크림빵만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여전히 돈이 벌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빵 만드는 과정이 괴롭지는 않다. 이 것 하나 만으로도 복 받은 인생이려니 생각한다. 돈은 못 벌어도 사회에 뭔가 도움 되는 일은 한다고 생각할 수 있고, 뭔가 즐거운 일 하나 할 수 있으니 적어도 할 일 없어 불행하지는 않다. 물론, 이 수고로운 행복보다 수억 원 로또에 당첨되는 순간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점을 부인할 용기나 뻔뻔함은 없다.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배운 사실 중 하나가 사람 목숨처럼 알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것. 사람 목숨은 '이래도 안 죽어?'라는 생각이 들만큼 질기기도 하고, '어쩌다가?'라는 생각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회사일로만 치면 제발 격주 일요일만 보장해달라고 할 만큼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일해도 아프지 않으면서 몇 년을 버티고, 회장 보고 및 PT자료 만든다고 겨우(?) 이틀 정도 밤샜는데 회장 보고를 마치고 바로 쓰러져 돌아가신 분도 봤다. 회사 사람 모두에게 욕먹어도 승진하는 임원은 흔하고, 회사 사람 모두가 좋아해도 잘려 나가는 상사 역시 길거리 비둘기만큼이나 많다.
힘든 시기를 겪고 곧 신용불량자를 벗어날 한 분은 항상 내게 "나랑 같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헤어져서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 나서 바로 죽을 수도 있어. 그런데 뭘 그렇게 애달복달해?"'라고 말한다. 그 사람보다 가진 자산이 많지만 난 그 사람보다 심장과 마음이 작다.
점심 먹고 마주친 햇살 좋은 홍대. 길거리 아저씨에게 누가 인사를 한다. 젊은 커플. 맵시 있게 입은 커플이 나를 알리가 없을 텐데. 미간에 힘을 주고 쳐다봤다. 솔직히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 나이 들면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연륜으로 얻은 행동. '반갑게 인사하기' 기술을 사용해 반가운 표정으로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내 첫 책을 기획해 줬던 마케터분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평소 패셔너블하다고 생각은 못했었는데, 홍대 때문인지 동그란 선글라스가 잘 어울린다. 과하지 않은 색상의 옷, 7부 바지라는 말은 아재의 단어지만 다른 말은 모르니 써야겠다. 날씬한 발목이 드러나는 7부 바지에 트레이드 마크였던 에코백이 잘 어울린다. 에코백을 들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꼭 들었을 것 같고, 들었어야 내 기억이 완성되니 들려야겠다.
옆에는 잔 꽃무늬 원피스에 동그란 안경을 낀 여성이 있다. 부인이다. 결혼식 때는 못 갔지만 청첩장에서 본 사진 속 사람보다 훨씬 행복해 보이고 어여쁜 분이었다. 둘이 참 잘 어울린다. 둘의 옷이, 둘의 표정이, 둘이 걷고 있는 거리가 잘 어울렸다.
둘이 꼭 같이 책을 내자고 했었는데, 후속작은 아직 없다. 그 마케터 분은 독립해서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고, 둘은 잊을만하면 메일을 주고받으면 살아있고, 당신과의 약속(책을 내자는)은 잊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만났다. 그래서, 지금 난 당신과의 행복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글 스타일도 딱딱하거나 설명하는 방식이 아닌, 그분이 제안했던 에세이 형식에 맞춰서 쓰고 있다. 화룡점정을 위해 이 글에 그동안 갈고닦은 -하지만 여전히 부끄럽고 생기 없는- 그림을 하나 넣으면 좋겠지만 그림만큼은 실력이 안되니 뭉툭한 손재주가 아쉽다.
오늘은 날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