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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n Feb 23. 2021

shit happens

망해도 괜찮아

넘어져서 우는 아이에게 엄마들은 곧잘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한다.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라니.

나는 그 장면을 싫어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프고 놀래서 울음을 크게 터뜨리려다가도  어리둥절하게 엄마를 바라본다.

'나는 아픈 거 같은데.. 그래서 울고 싶은데.. 그게 아니라 나는 괜찮다고요? '

이런 표정으로 울음을 삼킨다.

내 감정은 내 것이다. 그 누구도 그 감정이 맞다 아니다 대신 판단 내릴 수 없다.그런데 우리는 유독 아이들의 감정을 잘 침범한다. 특히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소화할 시간도 주지 않고 획 아이의 눈 앞에서 그 감정을 가짜의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꿔치기해서 준다.

아이는 당연히 어리둥절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울면 안 돼~'라는 노래도 싫어한다.

(이쯤에서 나는 싫어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

아프거나 속상하거나 슬프면 울 수도 있는 거지, 대체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것에 무슨 억한 심정이 있어서, 우는 아이한테만 선물을 안 준다는 건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 저 노래가 여기저기 나올 때마다, 아이에게 몇 번이고 강조한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운다고 선물 안주는 산타할아버지는 이상한 사람이야.

슬프면 울고, 화나면 화내고, 행복하면 웃는 거지. 좀 울었다고 선물을 안 준다고? 됐다 그래..

엄마가 대신 선물 줄게. 엄마는 솔직하게 울 줄 아는 아이한테는 더 좋은 선물을 줄 거야.



싫어하는 거 하나만 덧 붙이자면, 어떤 큰 일을 앞두고 긴장하거나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넌 잘할 거야' 라던지 '다 잘될 거야'라던지 '절대로 실패 안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같은 말을 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한 말들은 '실패의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실패할 가능성을 최대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겁쟁이의 마음과, 긍정에 대한 강박이 더해진 경우가 많다. 듣는 입장에선 '잘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실패하면 너에게 실망할 거야'로 들리기도 한다.


 당연히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화도 내고, 울기도 할 것이며, 좌절하고 바닥을 치고, 그 바닥을 깔고 앉아 허송세월도 좀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잘못한 것이 없는 대도 느닷없이 사건 사고들이 터져버린다. 이 세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성공과 긍정과 웃음'의 세계에 대해서만 아이에게 디테일하게 가르쳐준다.

'실패와 부정과 외로움과 고독'의 세계에 대해서는 옷장 속에 숨은 괴물취급을 하며 쉬쉬 숨기려고 한다. 사실 옷장 속에 숨은 괴물은, 아주 너그럽고 용감하고 자유롭고 멋진 괴물인데 말이다.


나도 나름 많은 좌절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늘 나를 응원해주셨고, 스스로도 늘 반듯하게 살았다고 자부했기에 그러한 좌절과 실패는 몇 배로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한 나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던 말은 힘을 내라던지.. 다 잘될 거라던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던지.. 괜찮다는 말들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Shit happens 


 라는 말이다. 한글로 번역하자면, 개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라는 말이다. 불쾌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내가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이다.

 저 말이 나를 위로하는 가장 큰 포인트는

'그냥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고 그런 거지-' 하고 삶을 유연하게 보는 태도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내가 뭘 잘못했나? 왜 나만 불행한 거야. 의 자학적인 의문에 한참 빠져 있을 때 우연히 봤던 영화 속 주인공이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던 것이다.

Shit happens..


 그래.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원인을 찾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살다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의미 없이,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인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저 말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아이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shit...은 좋은 말은 아니니까,나중에 좀 더 크면 해주기로.



대신 지금은,

어떤 일을 앞두고 걱정하거나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망치면 좀 어때. 뭐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원래 시험이란 많이 틀리면 틀릴수록 많이 배우는 거고 뭐든 크게 망할수록 크게 배우는 거야.

멋지게 망치고 망하고 실패하는 것도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사실 평소에도 나는 아이와

망했다! 는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을 부정적인 언어로 대하지 않는다. 망했다. 는 말은 어찌 보면, 나쁜 방향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유머로 가볍게 만들고자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망했다-! 고 말하고 나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망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나의 뇌피셜..)


이왕이면 시원하고 통쾌하게 죄책감 없이,무슨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사고가 터져버리면 에잇 망했다! 같이 속 시원하게 인정해버린다.


그러면 긴장이 풀리면서 욕심을 놓게 되고 다시

이성적으로 거리를 두고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


 망했다-라는 말이 주는 유머와 카타르시스의 힘을 눈치챈 것은 3년 전 아이와 간 영화관 에서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팝콘을 안고, 상영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쁘게 영화관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만 팝콘을 와르르 엎고 말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순간 짜증이 올라온 것은 사실이다. 그게 표정으로 드러났나 보다.

아이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팝콘을 쏟았다는 사실보다,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서 무서웠던 것이다.

아이가 내 눈치를 보면서


엄마.. 어떡하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이가 들고 있던 생수병까지 쏟았다. 이 상황 수습 불가능하다 싶은 경지에 다다르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포기가 주는 평화. 옴...


어쩌긴 뭘 어째.

망한 거지...

팝콘도 물도 이제 다 사망했어... 어차피 못 살려..



 아이의 표정에서 눈물이 사라지고, 풉.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이가 웃으니 나도 웃음이 나온다. 우리 진짜 망했다-고 생각하니 망하면 좀 어때, 팝콘과 물을

잃었지만 뭐 좀 어때, 우린 아직 잘 살아 있잖아(?) 같은 요상한 위안이 몰려왔다.


 쏟아진 팝콘을 치우고 있으니 직원이 달려와서 말린다. 우리는 감사하게 직원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다시 팝콘과 물을 사러 갔다. 가는 길에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영화관 입구에서 벌어진 참담한 사건 현장을 보며

'헐 누가 쏟았나 봐..ㅋㅋㅋ 어쩌냐 ㅋㅋ 대망이넼ㅋ'

자기들끼리 가십처럼 떠들며 지나간다.

아이와 눈을 맞췄다. 우리는 비밀의 공범자들. ㅋㅋ 우린 그 가십의, '대망-크게 망한'의 주인공들.

짜증이 나는 사건이 우리 만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요리를 하다가도, 실패하면 '망했다_!!' 외치고, 하루 종일 놀던 아이가 뒤늦게 밤이 되어서야


엄마 나 어쩌지... 내일까지 해야 할 숙제가 많은데  까먹고 있었어.

오늘 다 못할 거 같은데 어떡하지..


같은 말을 하면


뭘 어쩌긴 어째. 망한 거지.. 오늘은 시원하게 망했다 치고 늦었으니까 그냥 자. 낼은 망한 거 수습 데이~~~


라고 위로.. 아니 놀려준다. 그러면 숙제를 안 하면 큰일 날 거 같다고 생각하던 아이의 마음이 가벼워진다. 사실 숙제를 안 하고, 공부를 못하고, 뭔가 해야 할 일을 못해서 날법한 큰일은 단 한 가지이다. '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망한다는 것은 한없는 어두운 세계도 아니며 끝없는 실패의 세계도 아니다.

망함의 세계는,  유연하고, 용서와 너그러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기회와 배움으로 가득하다.

 오늘 숙제 못해서 망하면, 내일 하면 되고, 밀린 숙제를 하느라 고생 빠듯하게 하고 나면 아 다음엔 좀 미리 해놔야지 배우면 좋은 거고.


특히, 망했다_! 고 인정하고 외쳐버리고 나면,

또는 지나간 일에 대해서 'shit happens'라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것에 대해 부정하고 분석하고 곱씹는 과정에서 감정적인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낀 에너지를 '자 이제 뭘 해야 하지?'를 생각하는 것에 쓰는것에 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도 꽈당 넘어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망했다-! 고 인정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원하게 망할 예정이다. 여기서 툭 저기서 툭 사고가 터지면 shit happens 라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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