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부질없다.
며칠 전, 주어진 악보를 리코더로 연주하고 그것을 촬영하여 학급 밴드에 올리라는 온라인 숙제가 있었다.
아이는, 내가 듣기에는 리코더를 제법 잘 분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후후'불지 말고 '두두두'소리를 내듯이 불라고 한 것이 아이는 영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엄마.. 두두두 로 불라는 게 뭐야?
응?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입으로 두두두두 소리를 내봐.
혀로 윗니를 두두 부딪히면서 음과 음을 구분하라는 거야.
아이는 다시 한번 불어 본다. 그러나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두두'의 어려움은, 연속해서 같은 음을 두 번 내야 할 때 폭발했다.
아니 후후 말고. 두두.
그 두두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
나는 할 일 하면서 대충대충 설명해주다가, 싸늘한 기분이 들어 아이를 쳐다보니, 역시나 울고 있다.
아이는 종종 그런다. 뭔가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대도 그게 영 억울하고 화가 나는 것이다. 특히, 고비를 앞두고 잘 그런다. 보통은 한바탕 괴로워하고 울고 짜증내고 나면 수욱 실력이 늘어있다. 이제는 아이의 그러한 패턴을 알기에 나도 나름 넓은 마음으로 아이의 짜증을 받아준다.
하지만 10살이 넘어, 11살에 이르니 그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남과의 비교가 아닌, 그저 스스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그러한 좌절을 불러올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남들보다 못한다고 생각해서 좌절하는 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분에 못 이겨 엉엉 울면서
난 정말 리코더가 싫어-!! 리코더 세상에서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엉엉 왜 리코더 같은걸 배워야 해? 왜 꼭 두두로 불어야 하고?
난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노래 만들어서 불고 싶다고.!!!
속사포처럼 분노의 랩을 쏟아놓는다.
우진아 그 정도면 잘 부는 건데, 뭐가 그렇게 안 되는 것 같고 뭐가 그렇게 속상해?
아니야.. 다른 애들은 다 나보다 잘 분단 말이야.. 나만 두두 할 줄도 모르고 나만 못 분다고. 그리고 나는 4분의 3박자니 4분의 4박자니 이런 규칙도 너무 싫어. 나는 반박자 이런 것도 싫고..
(리코더에 대한 혐오가 악보에까지 퍼지는 현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아 엄마는 네 문제를 고칠 방법이 생각났어!
우진아. 리코더를 잘 불고 싶어?
응..
그 욕심을 버려. 그러면 해결!
아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더듬더듬 소심하게 몇 마디를 덧붙인다.
리코더 잘 불어서 뭐하니. 그냥 적당히 불면 되지.
그런데 다른 애들은 잘 분단 말이야.
아닐걸. 엄마가 듣기엔 다 비슷비슷해.
다들 비슷비슷하게 두두 소리 내면서 부느라 고생할 거고, 다들 자기가 제일 못 분다고 걱정할 걸?
그리고 다들 너보다 잘 불면 뭐 어때. 네가 꼭 모든 걸 다른 애들보다 잘할 필요는 없잖아?
난 그러고 싶은데..
나는 그제야 이 아이의 승부욕이 보였다. 아이의 짜증과 초조함은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아니라, 남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승부욕이 근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얌전하고 조용하다 보니 (남들 앞에서는) 그러한 욕심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쯤 되면, 아이의 욕심에 불을 지펴서 승부욕을 자극하고, 아이가 뭘 하든 남들보다 잘하길 응원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모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 부럽습니다.
하지만 나는 에너지 레벨이 낮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나의 에너지의 총량은 무척이나 그릇이 작고 텐션 또한 대체로 로우 하다. (하이 탠션인들도 부럽습니다.)
얼마나 총량이 작냐 하면, 하루 종일 마음먹고 청소도 하고 요리도 좀 했다 싶으면, 그날은 어김없이 아이에게 짜증을 많이 내거나 작업을 설렁설렁하게 되거나 무엇에든 집중을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정도이다.
단순히 쉽게 지치고 피곤해서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체력적으로는 에너지가 꾸준하고 지구력이 좋은 편이다. 쉽게 지치지 않는다. 다만 정신적으로, 한 곳에 신경을 써버리면 다른 곳에 쓸 신경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우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한 살림꾼이었다. 매번 반찬을 새로 만들고, 매일매일 대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매일 장을 봤다.
그러나 밤이 되면,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고 하고 싶은 희미한 의욕만 남을 뿐,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될지에 대해서 까지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 자연스럽게 살림을 적당히 하게 되었고, 요리도 대충 하게 되었다. 그것들을 전처럼 부지런히 하면서는 아이라는 일 순위를 온전한 마음으로 챙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라서 (무척 작아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에 그 에너지를 많이 할당하고 리스트의 아래쪽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적당히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 세상 어디엔가, 살림도 완벽하게 하면서, 아이도 잘 키우면서, 자기 일도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깨끗하게 인정하고, 대신 늘 우선순위를 염두에 두고 에너지를 소비한다.
일을 시작하면서는 에너지의 배분이 전보다도 더 중요해졌다. 당연히 엄마로서의 나에게 일 순위는 아이이지만 , 그 못지않게 나라는 사람을 지탱해주는 나의 일도 나에게는 중요하다.
이 둘에만 에너지를 쏟아도 부족했으므로, 나는 서서히 하지만 뻔뻔하게 (예전의 살림꾼 내가 봤으면 황당할 정도로) 리스트의 아래쪽에 있는 것들은 느슨하게 놓기 시작했다.
그중 첫 번째는, 요리다. 전에는 반찬도 다 만들어 먹었었다니! 당연히 다른 일을 할 상상력이 부족할 수밖에-그 에너지를 반찬 만드는데 다 써서 그렇다.
요즘에는 반찬은 당연히 사 먹고, 요리도 되도록 간단한 것들로 한다. 재료 사고 손질하고 굽고 끓이고 상 차리고 먹고 치우고 하는데 몇 시간을 쓰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외식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는다.
청소, 빨래, 같은 살림도 적당히 한다. 청소는 집이 너무 엉망이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빨래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침구도 적당히만 갈아주고, 다림질은 한두 달에 한 번씩 모아서 하며, 집안 곳곳의 화분에게 물 주는 것도 대충 감으로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준다.
그래야 나는 우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밤이 되어 작업실에 앉아, 만들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러니 아이의
난 다른 애들보다 잘하고 싶어_!
라는 말에서, 이 아이의 욕심을 자극하여 그것이 동기가 되도록 하겠어-같은 생각보다는
이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에 대해 말해줄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진아. 우진이 리코더 좋아?
아니.
근데 왜 잘 불고 싶어?
그냥.. 다른 애들은 다 잘하니까.
리코더를 잘 부는 방법은 간단해. 연습을 정말 많이 하면 돼. 그런데, 엄마는 좋아하지도 않는 리코더를 굳이 그렇게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 에너지와 시간을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쓰는 게 낫지 않겠어? 왜냐하면 에너지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게 아니거든. 그런데 그 에너지를, 오로지 남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이유로, 네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에 막 쓰다 보면 나중에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아.
엄마를 봐봐.. 엄마 우진이랑 많이 놀지? 엄마 밤에 맨날 일도 즐겁게 많이 하지?
그 대신에 엄만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서 아침상을 딱 차려낸다던가, 집을 정말 깨끗하게 청소한다던가, 요리를 열심히 한다던가 그런 건 안 하잖아?
그건 다 그런 곳에 쓸 에너지를 아끼려고 그러는 거야. 아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쓰려고. 특히 우리 딸한테 쓰려고 그러는 거야.
와 내가 하는 말 정말 멋진데? 생각하며
연설을 이어 나가려는데 아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근데 엄마.. 그건 다른 집 엄마들도 안 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닐걸. **엄마만 해도 엄마가 알기론 엄청 부지런하시고 요리도 잘하시고 그러는데..
아니야 엄마. 내가 전에 그 집에서 파자마 파티했잖아. 그 집은 우리 집보다 더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고, 더 아침도 대강 먹고 그래.
아...
그렇구나...
어쨌든! 리코더를 잘 불려는 욕심을 버리라고.
암튼.. 끝!
훠이 빨리 가서 너 할거 해~
나는 정말 멋지게 에너지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대화가 갑자기 다른 집 tmi로 흘러가는 바람에 급하게 대화를 끝냈다. 뭐 다들 사는 모습은 비슷비슷한 걸로.
결국엔, 나의 오랜 시간에 걸친 쿨한 다독임은 허무하게도 증발되어버리고 , 친구들이 올린 리코더 연주 동영상을 보면서 아 다들 나랑 비슷비슷하구나- 를 깨달은 아이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결국엔 '두두'를 마스터해서 숙제를 잘 마쳤다.
오늘의 교훈은 아무리 부모가 충고와 조언과 공감과 위로를 해줘도, 또래를 보며 스스로 깨닫고 배우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겠다는 마음.. 다 부질없다..
아이를 가르치겠다는 이 에너지도 아껴서 다른 곳에 써야지. 그 다른 곳은 바로 나. 나나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