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그리운 메이 아줌마> & <그 여름의 끝>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
혹 그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을 드러내는 단어라면?
지난주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심리·적성검사를 받았다. 진행자는 52가지 카드 중에서 자기와 가장 잘 맞는 단어가 적힌 카드 9장을 골라달라고 했다. 분석, 예측, 설명, 검토, 정리 같은 단어가 적힌 카드에 가장 먼저 손이 갔다. 다음은 고른 카드를 뒤집어 뒷면에 나타난 색깔별로 모으라고 했다. 내가 고른 건 파란색 6장, 노란색 2장, 초록색 1장이었다. 진행자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네 가지 색으로 드러난 각 사람의 심리상태를 설명했다. 나처럼 파랑 카드가 많은 사람은 자료형 인간이란다. 정확하고 세밀한 사람이고, 책임감이 있고 조심성이 많으며 빈틈이 없고 계획적인 사람, 딱 나다. 그는 대개 이런 유형의 근원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그래서 자료와 틀, 계획에 매달리기 쉽다고 덧붙였다. 애써 감춰놓았던 것이 드러난 부끄러움과 함께 왠지 모를 후련함도 함께 찾아왔다.
불안이야말로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보인다고 말들 하지만 그건 나의 내면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사실 나는 사고가 두려워 운전도 못 하고, 조금만 비행기가 흔들려도 뚝 떨어질까 봐 식은땀이 나는 사람이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괜찮다고 되뇌어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남편이 예상보다 늦게 들어오면 먼저 잠이 들지도 못한다. 새벽 1시고 2시고 올 때까지 기다린다. 온갖 나쁜 상상을 억누르는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중 가장 극도의 불안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특히 남편과 아이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어떤 나쁜 일이 닥친다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영생을 믿지만 이 땅에서 남은 날 동안 그 큰 빈자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건 아마 나의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겠지.
장마와 더위가 공존하는 여름의 초입에 <그리운 메이 아줌마>와 <그 여름의 끝>을 읽었다. 둘 다 청소년 소설로 상실을 주요 주제로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지난 6년간 사랑으로 키워주신 아줌마를 애도하는 과정을 그렸고, <그 여름의 끝>은 어린 시절 세상을 뜬 하나뿐인 언니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여름글방 과제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여름이라는 계절과 상실이라는 주제가 어긋나는 것 같아 몰입이 어려웠다. 애써 잠재워 놓았던 두려움이 튀어나와 우울해지기도 했다. 여름이야말로 죽음과 가장 안 어울리는 계절이 아닌가? 명실공히 젊음의 계절, 생의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때에 상실이라니. 사색에 잠기기엔 여름은 너무 푸르고 맑고 뜨겁다.
째깍째깍... 마감일은 이미 넘겨버렸는데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두 번째 읽으니 이번엔 ‘죽음’이 아니라 ‘삶’이 보였다. ‘슬픔’을 걷어내자 ‘사랑’이 남았다. 메이 아줌마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브 아저씨의 아픈 무릎을 연고로 문질러 주었고, 서머가 수두에 걸려 아팠을 때 눈 한번 붙이지 않고 간호해 준 사람이었다. 늘 ‘나’를 “서머, 우리 귀여운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기(그리운 메이 아줌마, 52쪽)”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던 사람. 서머는 “아줌마는 오직 사랑뿐인 커다란 통 같았다(같은 책, 26쪽).”라고 추억한다. 어쩜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계산적이고 좁은 마음의 소유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세계다. 그러니 그토록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 마지막 순간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슬픔에 빠져 생의 의지를 잃어버린 오브 아저씨와 서머에게 다가온 클리터스를 통해서도 사랑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쓸데없는 걸 수집하는 괴짜지만,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가려내는 능력(같은 책, 54쪽)”을 가진 아이.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클리터스의 존재로 인해 천천히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그 여름의 끝>에서도 언니의 입원으로 괴로워하는 주인공 메그를 다정히 감싸주는 이웃들이 있다. “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다는 것을, 웃음과 울음이 어떤 때는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두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그 여름의 끝, 149쪽).” 사랑하는 언니, 딸을 먼저 떠나보내는 건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가족과 이웃이라는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 메그 가족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터스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을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 그리운 메이 아줌마, 35~36쪽
아끼는 노트를 꺼내 메이 아줌마의 당부를 적어두었다. 언제고 불행은 예고도 없이 닥쳐 평온한 삶을 모조리 무너뜨릴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사랑으로 한 발짝 더 옮기고 싶다.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이들을 꼭 붙들고 싶다. 언젠가 찾아올 ‘그 여름의 끝’에서 나도 ‘그리운 메이 아줌마’처럼 깊이 사랑받고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처음엔 여름과 상실은 잘 어울리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상실이 미치지 못하는 계절이란 없으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일은 어느 계절이나 유효하므로. 인생의 여름을 통과하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이 두 소설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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