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과다섭취한 강아지의 결말
올해도 일찌감치 준비해 두었다. 어드벤트 캘린더 말이다. 어드벤트...? 캘린더...? 머릿속에 잘 안 그려지실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를 드리자면 어드번트(Advent)는 대림절, 캘린더(Calendar)는 달력이니 우리말로 하면 '대림절 달력' 쯤 되겠다. 대림절은 기독교 전통에서 성탄절 전 4주 동안을 말하며, 아기 예수의 나심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어드벤트 캘린더는 12월 1일부터 시작해 12월 25일 당일까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날마다 하나씩 열어볼 수 있는 작은 칸으로 구성된 선물상자를 말한다. 서양에서는 주로 초콜릿, 화장품, 차(tea), 장난감 등의 브랜드에서 해마다 다양한 어드벤트 캘린더를 출시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초콜릿 어드벤트 캘린더를 사주는 게 일반적이다.
영국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교를 갔다 온 큰 아이가 "엄마, 그 무슨 캘린더라고, 매일 초콜릿 먹는 거 있다는데, 우리 반에서 나만 빼고 다 있대."라고 했다. 안 그래도 슈퍼마켓 간식 코너에 쌓여있는 걸 봤지만 뭐 몸에 좋지도 않은 단 걸 매일 먹나 싶어 눈길도 안 줬던 나는 아차! 싶어서 마트로 달려갔다. 그때가 이미 12월 중순, 어드벤트 캘린더는 이미 동이 나고 없었다. 그 해를 교훈 삼아 다음 해부터는 꼬박꼬박 미리 준비하곤 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에는 12월 첫날부터 매일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는 달콤함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최근엔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긴 하지만 비싸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아 올해도 영국에 사는 사촌 동생의 귀국길에 특별히 부탁해 놓은 터였다. 올해 동생이 사다준 건 강아지 모양의 초콜릿이 들어있는 어드벤트 캘린더. 친절하게 포장지에 "Not For Your Furry Friends(털북숭이 친구들용은 아님)"이라고 적혀있었고, 아이들은 강아지 모양 초콜릿을 미안해서 어떻게 먹냐며 농담을 던졌다. 그럼 먹지 말던가!
대망의 12월 1일!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에게 어드벤트 캘린더의 개시일임을 알렸다. 학교 갔다 온 뒤 하나씩 꺼내먹으라고 일러주고 큰 아이 것 하나, 작은 아이 것 하나, 두 박스를 작년처럼 아이들 손이 잘 닿고 잘 보이는 소파 등받이 위에 올려두었다. 한 달 전부터 우리와 함께 살게 된 마루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강아지에게 초콜릿은 치명적인 독성물질이다), 설마 손이 저기까지 닿겠어... 싶었다. (안일했다) 강아지를 키우게 된 후로 집을 비우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게다가 이 날은 약속이 있어 오전 일찍 집을 나섰다가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왔다. (안일했다 2) 집에 돌아오니 어드벤트 캘린더 하나가 반쯤 뜯겨있고 바닥에 놓여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이 먹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에이, 매일 하나씩만 먹으라니까. 그리고 먹고 나면 제 자리에 둬야지 왜 바닥에 둬...' 별생각 없이 식탁 위로 올려뒀다. (안일했다 3) 긴 외출 후 더 격렬해진 마루의 뽀뽀세례를 받으며 소파에서 느긋하게 놀고 있는데 방과 후 수업을 갔다 온 아이들이 돌아왔다.
"그거 우리가 먹은 거 아녜요! 집에 오니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그럼 이걸 다...? 얘가 먹었다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서둘러 초록창을 열어 검색을 했다. 초콜릿에는 테오브로민이라는 흥분물질이 들어있는데 강아지 체내에는 이를 분해할 수 없어 독성물질로 작용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가만 보자. 강아지가 초콜릿을 먹으면 일어날 수 있는 주요 증상으로는 흥분, 호흡 곤란, 구토나 설사, 발작, 심장마비,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손이 덜덜 떨리면서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실수로 초콜릿을 섭취했을 경우, 최대한 빨리 동물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섭취 후 6시간 이후 증상이 발생하며 체내 흡수를 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 내가 아침에 10시쯤 나가서 4시쯤 돌아왔으니까 이미 6시간이 지났...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이미 반쯤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었다. 이제 막 정이 들기 시작한 녀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한 손으로는 반쯤 먹은 초콜릿 상자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아지를 안고 무작정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뛰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강아지가 초콜릿을 먹었어요... 많이 먹었어요… ㅠㅠ"
접수 시 간호사 선생님의 의례적인 질문에도 멎었던 눈물샘이 다시 터졌다. 곧장 진료실로 안내되어 마루를 담당해 주시는 수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고, 우리 마루가 사고를 쳤구나." 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선생님. 나를 보고서는 "보호자님, 왜 이렇게 많이 우세요..." 하면서 휴지를 꺼내주셨다. 먹은 초콜릿을 성분표를 보시더니 밀크 초콜릿이라 괜찮을 것 같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신다. 일단 구토를 시켜보겠다고 처치실로 데리고 가셨다. 째깍째깍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긴지... 선생님은 마루를 다시 내 품에 돌려주신 뒤 엑스레이 화면을 보여주시며 설명을 해주셨다.
"여기 보이는 까만 게 다 초콜릿이고요, 위장의 반이 초콜릿으로 차 있네요. 다행히 체내로 흡수가 되기 전이라 구토유발제를 사용해 구토시켰고요, 다음 사진에 보면 위가 다 깨끗이 비어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지요? 잘 비워졌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돌아가셔서 혹시 문제가 생기면 다시 오시면 되는데 거의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하면서 안심시켜 주셨다. 다행히 마루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선생님은 카카오 함량이 낮고 설탕과 우유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있는 밀크 초콜릿이라 많이 먹었어도 큰 부작용이 없을 것 같다며,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은 정말 치명적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의 말씀도 덧붙이셨다. 엑스레이 두 번에 구토유발제와 억제제 투여, 상담비까지 10만 원이 적힌 청구서를 보고 속이 쓰렸지만 그래도 이만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얼마나 놀랐느냐며 꼭 안아주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어떻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다고, 계속 눈물을 글썽거리던 내가 진정이 되자 꾹 참고 있었던 농담을 던지는 남편.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마루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퉁퉁 부운 얼굴로 또 하하 웃었다. 맞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마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싶어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한 달 밖에 안 되었지만 너는 이미 내 마음에 크게 자리하고 있구나. 이번 일을 통해서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초보 반려인으로서 앞으로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반성도 했다. 강아지는 죄가 없다. 손 닿는 곳에 놓아둔 보호자가 잘못이지. 앞으로는 '설마가 강아지 잡는다. 잘 둔 초콜릿 다시 보자.'를 표어로 삼아 조심, 늘 조심할 것.
그런데 마루야, 너 정말 많이 먹긴 먹었더라. 초콜릿이 그렇게 맛있었니? 아무래도 우리 집에 어드벤트 캘린더는 올해가 마지막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