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나 Dec 14. 2023

프롤로그: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어서

운명처럼 내게 온 강아지


나이 마흔을 먹도록 이제껏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볼 기회가 없었다. 내가 아는 건 오직 인간뿐. (인간을 제대로 아느냐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지만 일단 넘어가자 :-) 아이들이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처럼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조를 때도 나는 단호했다. "너희를 키우는 것만 해도 힘들어. 엄마는 돌봄에 그다지 소질이 없단다. 할아버지 집 같은 전원주택이면 모를까, 아파트에서는 안 돼. 우리도 힘들고, 걔네도 불쌍해. 짖기라도 하면 그런 민폐가 어딨니."


고양이 셋, 강아지 하나와 함께 사는 시누이가 믿을만한 입양처를 찾고 있다고, 혹시 키울 생각 있냐고 넌지시 물어봤을 때도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 범위 밖의 일이었다. 키워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어쩌다 너그러이 등을 내주는 개들을 만날 때도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남편과 달리 움찔움찔했다. 내가 개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친근함보다 무서움에 가까웠고, 감히 같이 살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낯선 '동물'이었다.




생각이 조금 바뀐 건 3년간의 영국 생활이었다. 공원(aka. 개 놀이터) 앞 집에 살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같은 시간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도 가족처럼 지내는 개가 있었다. (그중에 카트리나네 쇼코, 야쓰요네 한스와 친해졌다. 아이 미스 유... )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반려동물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만약에 영국에 계속 산다면, 이런 주택에 계속 산다면, 언젠가 키울지도 몰라...' 정도로 진화했다.


이제는 한참 스크롤을 올려야 찾을 수 있는 쇼코, 건강하길


귀국 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개 산책 시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유아차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니 개모차인 경우도 빈번했다. 코로나 3년을 겪으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다더니 정말이었다. '아, 아파트에서도 많이 키우는구나.' 아이들이 조를 때마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모를까, 아파트에서는 절대로 못 키운다고 하던 명분이 없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남의 얘기였다.




10월 어느 날, 시누이에게 연락이 왔다. 세 식구가 모처럼 집을 비우고 며칠 여행을 떠나는데 그 기간 동안 강아지를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음... 계속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며칠 봐주는 거야 해줄 수 있겠지...' 그러고마 해놓고 수시로 마음이 바뀌었다. '주말이 지나면 남편은 출근하고, 애들은 학교 갈 텐데... 나랑 강아지랑 둘이서 대치 상태가 되면 어떡하지? 그냥 안 된다고 할까...?' 이미 승낙을 해놓고 이제 와서 바꾸는 것도 면이 안 서는 일, 아이 둘을 키웠는데 강아지 하나 못 키우겠느냐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결전의 날이 왔다. 남편과 아이들이 시가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조심히 내려놓던 밤이 생생하다. "안녕, 마루야. 너구나!" 사진보다 더 작고 귀여운 털복숭이. 집이 추워서일까, 낯설어서일까 덜덜 떠는 모습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남편과 아이들이 하루 종일 함께 놀며 얼굴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다. 게다가 처음 보는 나와 우리 집이 얼마나 불편할까. 우리의 개손님이 계시는 동안 최대한 편안하게 있기만을 바랐다. 그날 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예민한 나는 방 밖에 낯선 생명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어 깊이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마루와 처음 만난 날, 잔뜩 신난 우리 집 어린이들


다음 날 아침부터 마루와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견생 4년 차, 사람으로 치면 청년인 마루는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붙임성이 많은 강아지라 친해지기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소파에 누워있으면 자기도 폴짝 올라와 내 팔에 몸을 기댔다. 등을 살살 쓸어주면 어느새 콜콜 자고 있는 녀석. 그 태평한 모습을 보면 웬만하면 낮잠을 자지 않는 나도 잠이 솔솔 왔다. 가만히 있으면 손으로 톡톡 치며 어서 쓰다듬으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배변훈련도 완벽히 되어있고, 집안 물건 하나, 화초 하나 건드리지 않는 매너 있는 개라는 점도 초보 보호자에겐 고마운 점이었다.




약속한 3일이 지나고 마지막 날 밤, 자기 전에 소파에 잠시 누웠는데 마루가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와 목을 감싸고 품에 폭 안겼, 아니 꽉 안아주었다. ‘아... 이 낯선 느낌은 뭐지?’ 동물과 이런 식의 교감은 처음이라 당황했다. 움직일 수도 없이 안긴 채 가만히 있자 이내 마음속 깊이 보드랍고 따뜻한 느낌이 차올랐다.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강형욱 훈련사가 방송에서 "누군가의 전부가 되는 경험을 하실 거예요."라 하신 말씀이 이런 뜻인가...? 사십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오늘을 있게 한 그 밤의 기습 포옹


다음 날 시누이 언니는 다시 한번 마루를 키워보지 않겠느냐 권유했다. 두 돌 된 아기가 고양이들이랑은 잘 지내는데 마루랑은 자꾸 부딪친다고. 마루가 너희 집에서 잘 지내는 것 같고,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집으로 보내고 싶다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이번엔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며칠 더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지만 나는 어젯밤 포옹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이 아이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고민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가 아이들을 낳을 때 완벽히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가지기로 결정했냐고. 이것저것 다 따지기 시작하면 아마 낳고 기를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라고. 몰랐기에 용감하게 선택했고, 그러기에 오늘이 있는 것 아니겠냐고. 우리가 바라고 계획한 일은 아니지만, 미래는 여전히 두렵지만, 그래도 오늘 사랑할 용기를 내보자고. 정해진 계획과 루틴을 중시하는, 그러나 이미 나보다 더 마루를 사랑하게 된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강아지 마루가 운명처럼 내게 왔다.




마루와 함께 한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개를 무서워하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마루 얘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쓴다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너무 사적인 얘기가 아닐까, 나중에 정해진 이별의 날이 오면 낱낱이 써놓은 글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지 않을까 망설였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정우열 작가님의 <다시, 개를 그리다>를 읽다가 만난 문장: 개를 키우다 보면 개를 그리게 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한 문장이지만 고민하던 내게 답이 되어 주었다. 개와 함께 사는 만화가는 개를 그리고, 개와 함께 사는 작가는 개에 대해 쓴다. 네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되는 거지, 뭘 그렇게 망설이고 있나...


정우열, <다시, 개를 그리다>, 동그람이 출판사


그래서 용기를 냈다. 운명처럼 내게 온 강아지를 사랑하고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얘기를 써보기로! 매주 한 편씩 반려동물을 통해 만나게 된 새로운 세계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반려인구 천만 시대에 우리 집 강아지 얘기가 궁금한 독자 하나 둘은 있으리라고 믿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 좋겠다. 자, 그럼 이제 시-작!


* 연재 제목 <강아지라는 세계>는 애정하는 김소영 작가님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어린이라는 세계>처럼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글 쓰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