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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Oct 02. 2020

그 나잇대에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하여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문하연,평단


 더 이상 피할 수도 없이 중년에 접어들었다.

 만으로 해도 30대가 될 수 없는 지금. 나름 중년의 시기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검은 머리 안에 숨어 있던 새치를 발견한 날은 끝도 없는 불안이 밀려들었다.


 승강기 안에서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던 순간이었는데  희고 튼튼한 것이 반짝 보였다. 티끌이겠거니 하고 좀 더 자세히 머리를 들쳐보니 검은 머리 사이에 꽤 자란 흰머리 세 가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장 뽑지도 못하고 흰머리를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라고 속으로만 외치면서 머리로만 이제 중년이지 했을 뿐. 가슴으로는 여전히 30대이길 바란 것이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뼈에 깊이 새겨지던 날이었다.



오마이 뉴스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묶은 에세이집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는 저자의 명랑한 삶에 관해 말하고 그녀의 새로운 꿈에 관해 들려준다. 꿈과 도전은 이십 대에만 하는 게 아니라고 중년이 되어서도 꿈도 꾸고 성공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반면에 나는 자꾸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그녀의 모습만 보여 조금 불편했다.

내 마음이..


천국과 지옥은 모두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남편과 성인이 된 아들 둘, 간사라는 전문직으로 일하다 퇴직한 후 취미생활을 하면서 글쓰기라는 오랜 꿈을 시작해 책을 출간하고 지금은 드라마 작법을 배우면서 글을 쓰는 중년의 그녀


삶을 얘기하는 그녀의 글은 분명 명랑하고 긍정적이었는데 나는 자꾸만 다 갖었으니 명랑할 수 있는 거지. 부족한 게 없는 삶인데 싶은 삐뚤어진 마음이 계속 솟아 나왔다. 육아의 힘듦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도, 아이들이 다 커도 육아는 계속된다는 것도, 중년의 친구들은 만나도 자식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것 등은  이해도 동감도 감동도 없었다.

  중년에비혼이나 아이가 없는 여자들도 있는데 육아의 고단함에 대한 상념들이 글의 전반에 깔려있어 보는 동안 나는 명랑해지지 못했다.

삼십 대의 프로필 사진은 거의 어린아이의 사진이나 가족사진이 올라오는 육아의 시절이라는 것 또한.

친구 같은 듬직한 아들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건강한 중년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보이는 에세이였다. 그녀의 자신감에 자격지심이 들었던 것인가?


물론 글이라는 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가 쓰는 글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폭력적인 글감들이 의도하지 않게 숨어있을 것이다.


 나는 명랑한 중년이 되고 싶어서 읽은 책인데 내 상황에서는 은퇴는 생각도 못하고 친구 같은 아이들도 없고 평일에 시간을 내어 취미생활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더 무겁게 다가와 우울해져 버렸다.


 중년에는 모두 아이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열심히 일한 직장에서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찾아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만 명랑해지는 것인가. 꼭 삼십 대는 육아의 힘듦을 겪어야 하는 시절인 것인가?


책을 읽은 나의 마음이 문제일 테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우울한 기분이 한동안 이어졌던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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