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지난 추석 연휴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요가를 했다.
30분씩, 40분씩, 그리고 무려 수리야 나마 스카라 108번.
요즘 나의 유튜브 선생님은 서리 요가다. 짧고 쉬워 매일 아침 함께 했는데 어느새 그분의 구독자수가 10만이 되었다면서 10만 기념 수리야 나마 스카라를 108번 하는 영상을 올려주셨다. 은근히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는 나는 꼭 이것도 해야 할 것 만 같은 강박에 때문에 실행해 버렸다. 영상 재생시간 1시간 50분.
애증의 수리야나마스카라는 정말 싫어하는 동작인데 이전에 50번을 하고 이번에 108번을 하고 나니 조금은 싫은 감정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피하고 싶은 아사나 중 하나이다. 그래도 결국 해내고 말았다. 시작 전에는 이걸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다 포기하는 건 안 하는 것보다 더 싫은데 하고 일단 시작했는데, 역시 나는 의지의 한국인 2시간 가까이되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내고야 말았다.
내가 너무 뿌듯하고 대견했다. 이 어려운 걸 또 해냈네. 하고 영상에 댓글도 달고 그런데 무리한 수련이었는지 햄스트링이 너무 당겨서 어기적 어기적 나와 개운하게 샤워까지 마치고 났는데 갑자기 쓸쓸함이 훅하고 밀려왔다. 나 이걸 해냈어하는 뿌듯함이 겨우 10분을 못 넘기고 왜 이렇게 요가에, 운동에 집착하는 것인가 이걸 해냈다고 왜 자꾸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 쓸쓸함과 씁쓸함이 함께 와버렸다.
운동의 긍정적 효과야 너무나 많아서 열거하기도 어렵고. 나 역시 꾸준히 혼자 운동을 해오면서 그 긍정적인 영향을 몸소 느껴왔지만 어느 순간 운동이 강박처럼 다가왔다. 매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운동을 못하는 날은 있어도 안 하는 날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요가를 하면서는 강박이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다시 요가도 매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특히 아쉬탕가를 하면서 선생님들은 매일매일 수련을 강조하고 더 구부리고 더 비틀고 더 고난도의 동작을 숙제로 주셨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멘트는 따라왔지만 정작 나는 자꾸 욕심을 내고 보여주기 위한 요가를 하고 급기야 요즘에는 내가 요가를 하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나는 이러이러해서 요가를 해.
그래서 이렇게 좋아졌고 수련이 매일 즐거워 (사실 매일이 즐겁지는 않다. 아쉬탕가의 특성상 크고 작은 부상도 많다. )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꾸 보여주는 요가를 하려고 한다. 멋진 동작과 그럴싸한 의미들로 포장해서 내가 엄청 괜찮은 사람인 척하고 싶은 것인가? 그냥 하면 되는데. 꾸준히 하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인데도 매일 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이제 그만.
그냥 하자.
그냥 하면 된다.
꾸준히 하다 보면 이전에 운동하면서 체험했던 긍정적인 모습과 마음이 다시 올 거니까.
매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도 말고 의미를 부여하지도 말자.
그저 매일 눈을 뜨고 일상을 살듯이 매일 해야 하는 일처럼 꾸준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