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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영 Jun 08. 2021

22억짜리집을 보고 왔다.

지난 금요일에 다녀온 지인의 집이 22억이라고 한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서래마을이라서 꽤 비싸겠지라는 생각뿐이었는데, 게다가 오래된 빌라였고. 

첫인상은 오래된 빌라지만 단지 내 조경도 아름답고 관리가 엄청 잘 돼있네 정도였다. 

집 내부 역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아주 쾌적하고 높은 층고에 개방감이 좋더라. 


내가 갖고 싶어 하는 넓은 테이블에 넉넉한 소파까지 있던 거실은 아늑했고 창 너머로 오래된 나무들의 풀냄새가 살금살금 들어오는 게 참 좋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곳 


세상 맛있는 초밥을 대접받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와인을 마시고.

그들 삶의 여유가 내게도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높은 층고의 쾌적함과 넓은 공간의 여유. 작고 귀여운 고양이까지 돌아다니던 곳. 입에 넣자마자 밥알이 사르르 풀어지면서 쫀득한 생선살의 풍미가 확 올라오던 지금까지 먹었던 초밥 중에 으뜸이었던 것과 술은 잘 모르지만 꽃향기가 아주 고급스럽던 와인.

술을 못하는 나를 위해서 와인샵 추천으로 공수해왔다는 내추럴 와인이라고. 

그동안 내가 먹었던 초밥은 대체 뭐였나 싶게 아주 맛있었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포도주는 술을 즐기지 않는 나도 나중에 찾아먹고 싶을 만큼 향기가 좋았다. 


 집이 탐난다거나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애초에 타고난 환경이 다른 것을.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만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그들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꼭 꿈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고 비싼 집 구경시켜 준 동거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 인생에 가져보지 못할 곳이니.


그저 친구 집에 다녀온 것뿐인데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와 나와 출발이 다른 그들, 시작이 조금 차이가 났을 뿐인데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가진 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우리들은 더 가난해졌다. 나의 탓도 그의 탓도 그들의 탓도 아닐 테지만 지난 금요일만큼 버락 거지라는 단어가 절실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작고 귀여운 우리 집은 항상 나의 기쁨이었는데 점점 오르는 부동산 가격과 그에 반해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나의 집을 보니 내가 과연 잘한 선택이었던가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은데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집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넓고 쾌적한 공간, 오래된 풀냄새, 안정적인 그들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돈이 만들어 낸, 자본에 기초한 안정감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것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 나는 왜 아직도 저런 안정감을 갖지 못하고 이렇게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일까,  삶의 여유라는 것은 언제쯤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자꾸만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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