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누만 아사나 Hanumanasana
피아니스트 레너드 번스타인은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단원들이 알고, 사흘을 쉬면 청중이 안다, 그래서 하루도 연습을 거를 수 없다.'라고 했다.
나는 운동선수도 예술가도 아니면서 수련이 하기 싫어지면 저 명언을 떠올린다. 오늘 쉬면 편하겠지만 내일은 더 힘들겠지라며 스스로를 끙차 일으키는 거다. 거의 매일 수련을 하다 보니 가끔 주말은 내리 쉬어버릴 때가 있다. 그런 후의 월요일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주 곤혹스럽다. 수련을 쉬면 마음까지 풀어져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식을 일삼게 된다. 몸만 풀어지는 게 아니라 입까지 풀어지는 것이다.
매주 아쉬탕가는 적어도 두 번 이상 수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승이 없으니 더 이상 진도는 나가지 못하더라도 퇴보하지 말자는 스스로의 약속 같은 것인데 지난주는 평일 수련을 놓치고 토요일에 빠른 호흡의 아쉬탕가를 수련했다. 힘든 수련으로 일요일은 꼼짝하기 싫어서 말 그대로 바닥과 한 몸으로 지내고 나니 몸이 아주 늘어져서 월요일은 눈 뜨자마자 '아, 오늘은 꼭 해야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누만 아사나 Hanumanasana
다리는 앞뒤로 곧게 뻗고 그 위에 골반. 척추를 바르게 정렬해 둔 다음 흉곽을 열어 손을 위로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다섯 호흡.
아쉬탕가 대신 선택한 빈야사의 오늘 메인 포즈는 하누만 아사나였다.
골반을 풀고 열고 닫고 햄스트링을 조였다 풀었다 비둘기 자세도 해보고 하나의 아사나를 위해 10분 이상 몸을 풀면서 준비한다 그리고 인대가 다치치 않게 천천히 다리를 뻗어 원숭이 자세를 취해본다.
몸은 양쪽이 똑같은 정렬이 되지 않는다. 한쪽이 잘되면 한쪽은 무너지기 일수 이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내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 그것을 하기 위한 수련이 바로 요가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자세에서 안정적인 호흡을 유지하는 것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딱 그만하고 싶은 순간이 오지만 다섯 번의 호흡만 잘 버텨내면 작은 성취감과 기분 좋은 뻐끈함이 들어오는 것. 그 순간을 위해서 몸을 움직이고 균형을 맞춰본다.
양손잡이에 오른발잡이인 나는 하누만 아사나를 잡을 때 오른발을 앞에 두었을 때는 골반의 균형이 잘 잡히는 편이지만 왼발을 앞으로 두었을 때는 기우뚱 넘어지기 일수다. 가끔은 왜 이쪽만 안 되냐 싶어 화가 나고 짜증이 솟기도 하지만 다섯 번의 호흡을 제대로만 지켜낸다면 그 마음이 거짓말처럼 가라앉는다.
오래전 한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요가는 몸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고 호흡을 잘하기 위한 수련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행하는 아사나는 그저 호흡을 잘하기 위한 도구일 뿐 종국에는 숨을 잘 쉬는 법을 배우는 수련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처음에는 동작을 따라가느라 숨차게 이어갔던 몸짓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서 숨 쉬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요가의 모든 동작은 거의 다섯 번의 호흡을 가져간다. 물론 긴 호흡을 유지하는 하타요가는 한 동작을 5분 이상씩 하기도 하지만 하타요가를 제외한 빈야사나 아쉬탕가등의 요가에서는 대부분이 그렇다. 결국 숨을 잘 쉬기 위한 동작이라는 것을 요가 수련 수년이 지나서야 체득하게 된 것이다.
역시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자꾸 쓰러지는 왼쪽 발의 하누만 아사나를 유지하면서 기우뚱하지 않기 위해 골반의 힘을 쓰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늘 내가 가져온 깨달음은 그저 꾸준함이 답이라는 것.
모든 것은 꾸준히 정진하는 것 만이 답이라는 것.
조급할 것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매일 조금씩 정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왼쪽 발을 앞에 두었을 때도 기울어지지 않는 완벽한 하누만 아사나가 되리라는 것.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거지 같고 나만 뒤쳐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 만이 언젠가 다다를 정상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엔 많은 명언과 조언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읽고 머리에 넣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내가 체득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언제든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은 아사나와 함께하는 다섯 번의 호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