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_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폭탄이 떨어졌다.
발신자: [중국 상하이 법인장].
제목: [업무 협조] 티몰(Tmall) '황실 앰플' 운영권 이관 요청.
내용은 심플하고 잔인했다.
"한국 본사 TF팀이 기획해서 대박 난 '황실 앰플', 이제 안정화 단계니까 중국 법인이 직접 운영하겠다. 너희는 손 떼고 신규 개발이나 해라. 아, 그리고 안 팔리는 '악성 재고' 10만 개는 한국으로 반품하겠다."
전형적인 '체리 피킹(Cherry Picking)'.
달콤한 과육만 발라 먹고, 씨앗은 우리 마당에 뱉어버리겠다는 심보.
"이건 강도짓입니다! 공산당도 아니고! 내 피땀 눈물!"
양세찬 과장이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옆에 앉아 있던 박대리 역시 분노로 눈이 이글거렸다.
"본부장님! 이거 뺏기면 제 인센티브도 날아가는 거죠? 네? 제 차 할부금은요! 이건 전쟁입니다!"
국내팀과 글로벌 TF가 합쳐진 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 양 과장의 태도는 무척 놀라웠다. 아, 이게 이렇게 되는 거로구나, 싶었다. 아이들 학비 때문에 길길이 날뛸 것 같았던 최부장은 외려 차분하게 업무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이런 역동을 뒤로한 채,
11층 제니퍼(조 상무)의 지시는 평화로웠다.
[Jennifer]: K. 글로벌 원 팀(One Team) 알죠? 싸우지 말고 '나이스'하게 넘겨줘요. 어차피 회사 전체로 보면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거니까.
웃기는 소리.
회사는 주머니가 같을지 몰라도, 우리 주머니는 다르다.
회의실.
분위기는 냉동창고 같았다.
나는 링링을 주시했다.
그녀는 상하이 지사 출신.
어제까지만 해도 중국 동료들과 위챗(WeChat)으로 낄낄거리던 그녀.
분명 지금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상하이에 보고하고 있겠지?
'한국 팀 분위기 망했음. 지금 뺏어오면 됨.'
양 과장이 링링을 쏘아붙였다.
"링링 대리. 너 김 부장이랑 친하지? 솔직히 말해봐. 걔네 왜 저러는 거야? 우리가 호구로 보여?"
링링은 무표정하게 타이머를 눌렀다.
"양 과장님. 감정 소모는 비효율입니다. 팩트만 보시죠. 중국 현지 영업은 중국 법인이 하는 게 물류비 관점에서 효율적입니다."
양 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와... 너 진짜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거냐? 한국 와서 우리 법카로 밥 먹으면서 결국 팔은 안으로 굽네?"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니라, 로직(Logic)이 그렇다는 겁니다."
링링은 차갑게 대꾸했다.
나는 체념하듯 입을 열었다.
"좋아. 링링 말대로 넘겨주자. 어차피 제니퍼 지시도 있고..."
"그런데 말입니다."
링링이 내 말을 끊었다. 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냥 넘겨주면, 제 KPI(성과지표)는 어떻게 됩니까?"
"뭐?"
"저는 이번 분기부터 소속이 '한국 법인'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즉, 제 인센티브는 강 팀장님 예산(Budget)에서 나옵니다. 혹시 중국 법인이 매출을 가져가면, 제 성과급도 '0원'이 되는 겁니까?"
"어... 시스템상 그렇지. 우리 팀 실적이 줄어드니까."
링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회의실 화이트보드로 걸어가더니, 검은색 마카 뚜껑을 이빨로 거칠게 물어뜯어 열었다.
그리고 거칠게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본부장님, 이건 1급 기밀인데."
링링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녀는 더 이상 '중국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본주의 용병(Mercenary)'이었다.
"상하이 법인 김 부장, 현지 벤더랑 짜고 물류비를 15%씩 부풀려서 리베이트 챙기고 있습니다. 제가 영수증 사본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 감사팀에 찌르면 김 부장 옷 벗습니다."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양 과장이 입을 딱 벌렸다.
"야... 너 그거 까발리면 고향 못 돌아가는 거 아냐? 배신자라고 칼 맞을 텐데?"
링링이 양 과장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과장님. 애국심이 제네시스 할부금 내줍니까? 저는 중국을 사랑하지만, 제 통장을 더 사랑합니다. 지금 제 고용주는 강 본부장님입니다. 입금되는 곳이 곧 조국입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링링은 '스파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냥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맹수였다.
링링은 태블릿을 나에게 내밀었다.
"팀장님. 이 데이터 들고 협상하시죠. 사업권 넘겨주는 척하면서, '영업 이익의 50%를 한국법인 로열티(Royalty)로 송금한다'는 조항 넣으세요. 안 그러면 감사팀 띄운다고 협박하시고요. 제 인센티브, 이걸로 보전해 주십시오."
협상은 싱겁게 끝났다.
내가 '리베이트 장부'의 표지만 보여줬는데도, 상하이 법인장은 사색이 되어 도장을 찍었다.
우리는 중국에 '운영권'이라는 명분을 주고, '로열티'라는 실리를 챙겼다.
(일 안 하고 돈 받기. 최고의 비즈니스다.)
회식 자리. 양꼬치 집.
분위기는 기묘했다.
양 과장은 링링에게 칭따오 맥주를 두 손으로 공손히 따르고 있었다.
"이야~ 우리 링링 대리! 역시 글로벌 인재! 내가 오해했네. 우린 한민족... 아니, 위대한 '자본주의 동맹'이지! 내 제네시스의 은인!"
링링은 맥주를 원샷하고, 빈 잔을 탁 내려놓았다.
"양 과장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본부장님 편도, 과장님 편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제 통장' 편입니다. 다음 분기 인센티브 오차 있으면 바로 노동청 갑니다."
그녀는 양꼬치를 기계적으로 씹어 먹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4B 연필을 만지작거렸다.
든든하다. 내 편이라서.
하지만..
한편으론 무섭다.
언젠가 내가 힘이 빠지면, 그녀는 주저 없이 내 약점이 적힌 장부를 들고 적에게 갈 테니까.
나는 링링에게 물었다.
"링링. 그래도 같이 일한 선배인데, 마음 안 불편해?"
링링이 쯔란(Spice)을 듬뿍 찍으며 말했다.
"팀장님. '죄수의 딜레마' 아시죠? 먼저 배신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게임. 김 부장이 먼저 제 밥그릇(KPI)을 걷어찼습니다. 저는 'Tit-for-Tat(눈에는 눈)' 전략을 썼을 뿐입니다."
옆에서는 최 부장이 "그래도 애가 똑 부러지네! 깐깐한 게 나 젊을 때 같아!"라며 링링에게 쌈을 싸주고 있었다.
나는 4B 연필을 만지작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의 적(상하이 법인)'이 나타나자, 이 콩가루 같던 팀이 하나가 되었다.
최 부장의 쌈, 양 과장의 아부, 링링의 냉철함, 그리고 박 대리의 정산 능력.
이 모든 것이 '돈'이라는 중력에 이끌려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먹이를 쫓는다.'
어쩌면 이것이 비즈니스에서 말하는 '팀워크'의 가장 솔직한 정의일지도 모른다.
나는 씁쓸한 맥주를 들이키며, 내 옆의 서늘한 칼날(링링)을 위해 건배했다.
"그래. 우리의 조국, '통장'을 위하여."
착한 호구와 나쁜 협상가: '원 팀(One Team)'의 딜레마
상사는 "회사를 위해(One Team)" 양보하라고 하고, 팀원은 "내 밥그릇(Incentive)"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이때 상사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호구(무능한 리더)'가 되고, 팀원 편을 들면 '이기적인 싸움닭'이 됩니다. 당신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어떤 줄타기를 하시겠습니까? 강 팀장처럼 상사에게 명분(운영권)을 주고, 팀원에게 실리(로열티)를 챙겨주는 '제3의 협상안'을 설계할 수 있습니까?
유능한 용병(Mercenary)의 활용법
링링은 정의감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통장'을 위해 고향(중국 법인)을 배신했습니다. 성과는 확실하지만, 이익에 따라 언제든 당신의 등에도 칼을 꽂을 수 있는 '유능한 배신자'. 당신은 그를 핵심 인재로 곁에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위험분자로 분류해 거리를 두시겠습니까?
분열을 치유하는 '공동의 적'
. 그토록 섞이지 않던 링링과 양 과장이 '상하이 법인'이라는 적 앞에서는 절친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팀워크를 다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따뜻한 격려가 아니라, 우리 밥그릇을 위협하는 '외부의 공포'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팀이 분열되어 있다면, 억지 화해 대신 함께 싸울 '공동의 적'을 설정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