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_ 진실은 결핍을 타고 흐른다.
세상의 부조리를 돌파하는 유일한 힘은,
완벽한 논리가 아니라 똑같이 상처 입고 피로한
타인과의 '연대'에서 나온다
멕시코시티의 밤 10시. 해발 2,200미터의 서늘한 공기에 매연과 고수(Cilantro) 냄새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길모퉁이의 허름한 '타코 알 파스토르(Tacos al Pastor)' 노점상 앞.
7년째 거래 중인 멕시코 디스트리뷰터 '카를로스'가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손에 흐르는 고기 기름을 핥고 있었다. 50대 초반, 툭 튀어나온 배를 가진 피로한 멕시코의 가장.
"Salud(건배). 마이 프렌드, K."
카를로스가 미지근한 코로나 맥주를 내밀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마테오가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본부장님, 저 회전하는 돼지고기 좀 봐요. 미세먼지가 다 달라붙고 있어! 저건 타코가 아니라 중금속 폭탄이에요!"
하지만 링링은 무표정한 얼굴로,
"돼지고기 100g당 단백질 효율 대비 가격이 훌륭하네요. 위생 불량으로 인한 수명 단축 리스크보다 포만감의 가치가 큽니다, 호호"
라며 벌써 세 개째 타코를 기계적으로 씹어 넘기고 있었다.
"어머머... 링링, 결혼하더니, 좀 변했네"
마테오는 실망(?)한 듯 혼잣말을 읇조렸다.
나는 마테오의 호들갑을 무시하고, 짧은 영어로 카를로스에게 말을 던졌다.
"카를로스. 넥스트 이어(Next year). 트웬티 퍼센트 텐션(20% Tension). 오케이?"
내 투박한 단어에 카를로스가 타코를 씹다 말고 사레가 들렸다.
그가 기침을 하며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 토해냈다.
"Loco(미친). 너 크레이지? 멕시코 인플라시온(Inflación) 8퍼센트야! 에잇 퍼센트! 로컬 벤더들 싹 다 마진 제로라고. 20퍼센트? No way. 임파서블(Impossible)."
현상 유지도 피가 마르는 시장.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건 적이 아니라 7년을 함께 늙어온 전우였다. 나는 구겨진 말보로를 입에 물며 덤덤하게 단어들을 이어 붙였다.
"마이 뉴 보스... 미스터 곽. 베리 크레이지 가이."
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빙빙 돌리는 시늉을 했다.
"히 원트 더블(He want double). 이프 노 20퍼센트(If no 20%), 히 컷 유 앤 미(He cut you and me). 바이바이."
카를로스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Maldita sea(빌어먹을)... 책상물림 새끼들..."
"투데이 미팅."
내가 타코 냅킨으로 입가를 벅벅 닦으며 맥주병으로 그의 배를 툭 쳤다.
"환율 로스(Exchange rate loss). 아이 페이(I pay). 내 전결로 다 털어줬잖아. 쏘, 유 푸시(So, you push). 다른 브랜드 매대 밀어내. 20퍼센트."
카를로스가 허탈하게 웃으며 뒷주머니에서 두툼한 지갑을 꺼내 열었다.
교정기를 낀 큰딸 마리아의 사진이 보였다.
"Miami university... 학비, 진짜 crazy야. 미쳐버리겠어."
그의 한탄에 나도 지갑을 지난 말레이시아 여행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이 도우터, 코리안 아카데미(Korean academy)... 올쏘 퍼킹 익스펜시브(Also fucking expensive)."
언어가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50대를 바라보는 사내들의 어깨에 얹힌 무게는 징그럽게 똑같았다. 카를로스가 내 아들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더니 씩 웃었다.
"오, K. 딸이 너랑 똑같이 생겼네. 푸어 걸(Poor girl. 불쌍하게도)."
"셧 업(Shut up)."
우리는 동시에 소리 내어 낄낄거렸다.
"오케이. 위 트라이(We try). 대신... 퍼플 오일(보라색 오일)."
카를로스가 내 멱살을 가볍게 쥐며 흔들었다.
"그 어글리 똥물 슬라임. 멕시코에 기브 미(Give me). 틱톡, 내가 로컬 애들 풀어서 조져볼 테니까."
"콜(Deal)."
우리는 악수 대신 코로나 맥주병을 쨍하고 부딪쳤다.
20% 성장이라는 기적 같은 수치가, 허술한 브로큰 잉글리시 몇 마디와 타코 노점상 앞에서 체결되었다. 완벽한 마케팅 전략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멈추면 안 되는 일상이 있기에, 서로 타협을 한 게 아닐까. 물론 20% 성장을 해낼지는 모르겠다. 언제나 비즈니스는 변화의 연속. 그럼에도 이렇게 말해주는 카를로스가 고마울 따름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카를로스는
"마리아, 폰 콜"
이라며 손을 흔들고 낡은 택시에 올랐다.
나는 링링, 마테오와 함께 멕시코시티의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 호텔로 향했다.
"본부장님."
마테오가 코를 킁킁거리며 물었다.
"아까 카를로스 사장님이랑 '넥스트 이어, 20퍼센트, 오케이?'이 세 단어로 방금 연장 계약 하신 거예요? 서류도 없이?"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어. 영어 길게 할 필요 없어. 저 양반 첫째 딸이 마이애미 사립대 갔거든. 학비 대려면 올해 인센티브 악착같이 땡겨야 해. 나도 곽 상무 돈으로 남미 시장에서 틱톡 테스트해 봐야 하고."
링링이 입가에 묻은 타코 소스를 닦으며 건조하게 덧붙였다.
"양측의 '생존 압박'이 일치할 때, 문법의 정확도는 협상 결과와 무관해집니다."
내가 낡은 서류 가방을 고쳐 맸다.
"뭐 회의실에서 비즈니스 한답시고, 고상한 전문용어들 들이대며 얘기하지만, 결국은 돈 벌어야 하는 생활인들이고, 아이들 키우는 부모 아니겄나? 자식 입에 들어갈 돈 앞에서 별 수 있나. 한국이나 멕시코나, 일상은 그냥 고단한 거지.."
마테오가 묘하게 숙연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링링마저 발걸음 속도를 늦춰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에어컨 나오는 쾌적한 빌딩 숲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글로벌 비즈니스의 이면.
우리는 서로의 피로한 어깨를 부딪치며, 멕시코의 낯선 밤거리 속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Q1. 상대를 움직이는 것은 유창한 '문법'입니까, 같은 주파수의 '결핍'입니까?
타인을 설득해야 할 때,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증명'하려 애를 씁니까, 아니면 체면을 버리고 상대의 가장 비루한 밑바닥에 '주파수'를 맞추려 애씁니까?
Q2. 당신은 시스템의 '숫자'에 복종합니까, 내 옆의 '사람'과 연대합니까?
답이 없는 캄캄한 막막함 앞을 마주했을 때, 당신은 데이터를 보며 불가능한 이유만 찾습니까, 아니면 기꺼이 진흙탕에 발을 담가줄 동료와 '연대'할 수 있습니까?"
Q3. 자본주의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당신의 진짜 동력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오늘 이 피곤한 하루를 견디며 악착같이 벌어들이는 그 실적(숫자)은, 결국 당신의 삶에서 어떤 '사람(지갑 속 사진)'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