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를 작고 조용한 변화, 하지만 나는 깨닫는다.
요즘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고, 누군가가 알아챌 정도로 확실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안에서 아주 작고 조용하게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예전 같았으면 분명히 화부터 냈을 상황에서 오늘은 그냥 한숨만 쉬었다.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도망치듯 그 말을 반복하다 보면 놀랍게도, 감정이 조금 잠잠해진다.
그 몇 초 사이에 나를 망치던 말들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된다.
아이의 떼쓰는 목소리에도 이젠 가끔,
“아, 이건 그냥 나랑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 내가 녹아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날 아이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엄마, 사랑해.”
하고 말해왔다.
큰 표현은 못했지만 그 순간, 나는 문득 숨을 한번 쉬고 내 감정이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마음 한 켠이 눈 녹듯 스르르 풀렸다.
그럴 땐 내가 엄마라는 이 삶을 비로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스치고 간다.
말이 서툰 만 네 살 아이는 때때로 앞뒤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며 흘려들었겠지만 이젠 그 말들에도 귀를 기울여본다. 아이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그 목소리가 지금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 같아서.
정말 화가 날 땐 아이의 눈을바라보며 이렇게 말해본다.
“우리, 잠깐 연인처럼 각자 시간 좀 가질까?”
그 말이 마법처럼 효과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와 나, 서로 다른 방에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 이상하게도 조금은 차분해진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몇 분의 시간이 감정을 다스리고 다시 연결될 준비를 하는 아주 중요한 여백이 되어주었다.
나는 아직도 완벽한 엄마와는 멀다.
실수도 하고,
감정도 흔들리고,
자책도 여전하다.
하지만 예전보다 조금 덜 무너진다.
자책의 시간이 줄었고, 다시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더 빨리 찾아온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안다.
내가, 조금은 괜찮아지고 있다는 걸.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아이 덕분에, 아이 곁에서, 나는 나 자신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다정하지 못한 날이 있어도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오늘, 아이가 웃었고 나도 그 웃음에 피식 웃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지금 나는, 조금은 괜찮아지고 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