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분명한데, 마음은 자꾸만 메말라 간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이건 어떤 말보다 확실하고 분명하다.
그런데 그 사랑을 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자꾸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애써 안아주고, 웃어주고,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왠지 모르게, 나는 자주 메말라 있다.
요즘 따라 자주 묻게 된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그 물음은 늘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오지 않는다.
아이의 숙제와 학습지를 함께 보다가,
모르는 단어에 당황해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다가,
옆집 아이가 영어를 줄줄 읽는다는 말을 들을 때,
친구가 보낸 '누구는 수학을 어디까지한데'하는 카톡을 볼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스스로 떳떳하지 못할 때—
그럴 때마다 이 질문이 고개를 든다.
“나는 잘하고 있나?”
“정말, 괜찮은 엄마인가?”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조금만 잘하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앞서 있으면 더 멀리 달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 성향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나는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스스로 원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좋겠다.
좋은 성과를 내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고, 무엇보다 아이 자신이 행복했으면 한다.
그건 틀리지 않은 바람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품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애틋한 희망.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바람이 때로는 희망을 가장한 불안이라는 걸.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내 불완전함을 보상받고 싶은 조급함이고 내 인생의 미완을 아이를 통해 완성하고 싶은 열망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에게 온종일 소리치거나 억지로 학습을 강요하는 부모는 아니다.
그런데도 아이에게 내 기대를 은근히 흘리는 순간이 분명 있다.
“이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는 좀 미리 해뒀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말들은 사랑이 바탕이지만 결국엔 아이의 자존감보다는 나의 안심을 위한 말들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있는데, 표현은 건조하다.
내 마음이 메말라 있다는 느낌은, 그 사랑이 계속해서 비교와 기준이라는 틀 안에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육아서와 교육 인플루언서들의 말은 더할 나위 없이 그럴듯하다.
“아이 중심의 교육”, “자존감이 성적보다 중요하다”, “공감이 먼저다.”
나도 이제는 가슴으로 느낀다.
그 말들이 맞다는 걸.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걸.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작 아이가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
나는 먼저 커리큘럼을 걱정하고,
다른 아이와의 차이를 분석하고,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건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본다.
영어유치원에서 성취가 기준이 되는 순간들.
아이의 자리를 둘러보며 '잘하고 있나'보다 '뒤처지지는 않나'를 먼저 떠올리는 나.
나는 아이를 믿고 싶은데, 정작 믿지 못하는 건 내 불안이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보고 나는 자주 미안하고 슬퍼진다.
나는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싶다.
성공보다 사람 됨됨이가 먼저이고, 결과보다 과정을 보라고 말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런데 현실 속 나는 성적표에 연필로 작은 점 하나 찍혀 있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이 사랑은 진심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꼭 ‘잘하는 아이’라는 틀을 통과해야 마음이 놓인다면 그건 어쩌면 나에게 더 많은 숙제가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묻는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
완벽한 엄마가 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이 질문을 계속 안고 가야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내가 흔들리는 만큼 아이를 더 단단하게 안아야겠다고,
아니, 단단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이와 나, 서로에게 말해주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