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끝내주는 유일한 종소리처럼
남편은 잔잔한 사람이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고, 감정이 크게 요동치는 일도 없다.
그는 늘 일정한 온도로 나를 대하고, 내가 울거나 분주해질 때도 고요한 호수처럼 곁에 있어 준다.
어떤 날은 그 고요함이 고맙고, 어떤 날은 그 고요함에 기대고 싶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날에는 그 고요함이 나를 붙잡아 준다.
남편은 아이에게도 그런 사람이다.
화내지 않고, 큰 소리로 다그치지 않는다.
놀이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씬 유연하고 관대하다.
나는 열 가지 중 세 가지도 못 받아줄 때가 많은데, 남편은 그 열 가지를 그대로 다 품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자주, 하루의 끝을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살아간다.
아침이 시작되면 무의식적으로 오후 일곱 시를 향해 걷는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시간이 내 하루를 ‘이제 좀 끝났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종소리 같기 때문이다.
그 시간까지 버티는 게 하루의 목표가 되는 날도 많다.
남편이 야근을 한다거나 회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앞이 캄캄해진다.
몸이 무겁다 못해 늘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런 날이면 아이의 장난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그제야 더 크게 다가온다.
남편은 자상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더 의지하게 되고, 더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볼 때 나는 문득 작아진다.
누군가를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사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자각,
아이와의 시간이 나 혼자에게는 너무 크다는 실감.
그 모든 감정이 남편의 퇴근 시간에 걸려 있다.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나를 안심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게도 만든다.
나는 왜 혼자서도 아이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할까.
왜 이 작은 생명 하나를 붙들고 있는 게 이토록 벅차게 느껴질까.
이런 감정들을 안고 나는 오늘도 남편을 기다린다.
그가 오면
공기가 바뀌고,
긴장이 풀리고,
내 감정도 잠시 쉬어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언젠가는, 남편이 늦는 날에도 나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림 없이도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아이 앞에서
덜 흔들리고,
덜 미안해하고,
덜 조급해하는 엄마가 되기를.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남편은 여전히 내 곁에서 잔잔한 호수처럼 함께 숨 쉬고 있기를.
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그 틈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아이와 하루를 견뎌내는 나, 정말 '잘' 키우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