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이 아니라 숨 고르기가 필요할 뿐이야
하루를 아이와 함께 보내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빠르다.
정확히 말하면, 빠르게 흐르는데도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놀아주고, 달래고, 숙제하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다 마치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내가 ‘살았다’고 느끼긴 어렵다.
하루는 아이의 것이었고, 남편의 것이었고, 집안일의 것이었다.
내 몫은 어딘가에 흘러가 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
정말 가끔은 이 삶에서 잠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공간에 가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 잠깐이라도 숨고 싶다.
내 이름이 ‘엄마’가 아닌 곳, 누군가의 필요로 불리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런 곳이 어딘가 있다면, 그저 조용히 앉아 있고 싶다.
가만히 있고 싶다.
말도, 손도, 감정도 쉬게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을 품는 순간, 죄책감이 따라온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치지?’
‘아이 하나 감당 못하면서 무슨 엄마래.’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질문들이 나를 더 깊은 구석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그저 살아 있는 채로 버티기 위해 나에게 잠깐의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
숨 고르기가 없으면 다시 시작할 힘도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하루를 보낸다.
지치고 어지럽고 때로는 무기력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아이를 품는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조용히 말한다.
“나는 괜찮지 않을 수 있다.”
“괜찮지 않은 날이 있어도, 나는 여전히 아이의 엄마다.”
잠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도 엄마라는 이름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