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물리적으로 작은. 재미난학교는 아이들 개개인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아이는 몇 학년이고, 성격은 어떻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부모는 어떻고. 그리고 아이들과 마주쳤을 때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고, 요즘 하는 것들을 물어보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마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 속에서 어느 정도 간파했을 것이다. 작은 학교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나와 다른 가정들이 가깝게 연결된 느낌이다. 작은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만큼이나 다른 학부모들과 연결된 거리도 짧게 밀착되어 있다. 이제는 사라져 가는 이웃사촌 정도가 적절한 표현이겠다. 현대 사회에서 이웃사촌은 반가운 존재일까?
본인과 아이에 대한 관심, 주변과 공유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 오감으로 전달되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로 스며드는 피곤함. 작은 학교는 물리적으로 작기 때문에 내 곁에 가깝게 존재하는 이웃사촌들이 많아진 느낌도 있다. 마을 속 학교 공동체라는 학교 철학은 이미 다양한 이웃사촌들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동안 전혀 몰랐던 여러 갈래 사람들과 갑작스레 연결된 느낌은 다른 이의 신발을 신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한 일일 수도 있다. 작기 때문에 다정하고 정감 있으면서도, 이웃사촌이 여러 명 생긴 것 같은 학교. ‘작은 학교’에 담긴 또 다른 해석이다.
#첫날밤
10시를 넘긴 시간. 아이는 혼자 잠들어 있었다. 혼자 있는 집에서 잠들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재미난학교는 부모의 참여도가 조금 높은 편이다. 매월 정기적인 모임과 크고 작은 학교 행사들이 있다. 의무사항은 아니므로 가지 않아도 되고, 실제로 안 오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기존의 문법과는 다르게 살겠다고 이곳으로 오지 않았던가?
계획과는 달리 부모가 늦게 귀가하게 된 그날 밤. 아이는 소파에서 비스듬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중학생인 아이에게는 늦은 경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고 없이 일어난 지금 상황에 못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아이와 미리 이야기하고 혼자서도 문제없이 잘 수 있다는 다짐도 받고 또 응원도 해준 채로 맞이했다면 뿌듯했을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쉽게 방실방실 곧잘 웃고, 여전히 눈치는 부족하고, 또래에 비해 순진한 편인 아이는 아직도 혼자 자는 걸 싫어한다. 인형을 꼬옥 끌어안거나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든다. 무섭거나 쓸쓸하다는 핑계로 재워달라 애교를 부린다. 그날 기억이랄까? 아이를 위해 재미난학교에 왔지만 바빠진 부모로 인해 가끔 아이가 외롭진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적당한 균형점이 처음 생각난 밤이었다.
#경쟁, 바람
서열화와 경쟁. 현재 우리 교육을 압축기로 꾹꾹 눌러 담으면 궁극적으로 저 글자만 남지 않을까? 아이들이 긴긴 시간 책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배우며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안교육을 찾을 것이다. 이런 바람과는 별개로 언젠가는 아이들이 그 경쟁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경쟁은 학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경쟁이란 불청객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그래서 더 어렵다.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경쟁 체제에 적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배움을 통해 교과서에는 없는 자신만의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힘을 갖게 된다면, 경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예행연습이 없으므로 어느 쪽이 올바른 길인지 재미난학교 학부모가 되어도 어려운 건 변함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이가 꼭 몸소 배우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그 경쟁의 대상이 옆에 있는 친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경쟁 대상으로 삼았으면 한다. 그래서 친구가 경쟁자가 아닌 함께 돕고 응원해 줄 수 있는 동반자로 인식되었으면 한다. 그런 아이로 성장하는 방법을 재미난학교에서 꼭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