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 : 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내게 학창시절 국사와 세계사 시절은 암흑기와 같았다. 국사와 세계사, 즉 역사는 한 나라와 사회를 이해하고 일깨워준 시간이 아니라 암기를 위한 각종 편법의 향연이었다.
“은주춘추전국진한 위진남북조수당 송원명청”
물론, 그 결과 아직도 머릿속에서는 중국의 굵직한 나라 이름들이 샘솟고 있다. 그런데 그것뿐 더 이상 내용적으로 그 나라들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니,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나라 이름은 기억하는데, 그걸 왜 기억해야 하냐고!!!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때 배운 북한의 모습은 3층 이상의 건물은 하나도 없고,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고 언제나 감시받은 나라였다. 심지어는 당간부는 돼지나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만화가 연상될 정도로 나는 수업시간에 헛 배운 것이 많았다.
나는 역사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어서, 역사의 기술이 꼭 어때야 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교과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교과론과 교수법에서 어떠한 역사를 기술하는게 적절한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역사는 반성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여행을 다니면 알게 된다.
얼마 전, 독일 뮌헨 근교에 있는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다녀왔다. 독일의 입장에서라면 감추고 싶은 과거일지 모르나 그들은 자기들의 만행과 참상을 비교적 잘 서술해놓고 보여주고 있었다. 이 잘 갖춘 수용소 시설은 추모의 의미로 입장료를 받지도 않는다.
그러한 암흑의 역사를 자기반성의 현재로 가지고 있는 독일은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를 만들고 있으며, 아마도 그러한 힘이 지금의 독일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과거, 힘이 있는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나, 잘못된 권력으로 인해 희생을 당하였다면 그것을 반성하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일의 모습을 볼 때, 잘못된 역사를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경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네! 멋진데?
얼마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사를 읽으면서 아들인 노건호씨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말한 내용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야 했나라는 논란도 일부는 있었지만, 내용은 곱씹어볼만하다.
“국체를 좀 소중히 여겨주십시오. 중국, 30년만에 저렇게 올라왔습니다. 한국, 30년만에 침몰하지 말란 법 있습니까? 힘 있고 돈 있는 집이야 갑질하기 더 좋을 수도 있겠지요. 나중에 힘없고 약한 백성들이 흘릴 피눈물을 어찌하시려고 국가의 기본질서를 흔드십니까”
로마는 이탈리아는 물론이거니와 터키를 가도, 그리스를 가도, 심지어는 이집트에 가더라도 볼 수 있다. 로마의 번영기에는 로마가 그렇게 분화되리라고, 지금 유럽이 이렇게 많은 국가로 재편되리라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유럽의 서쪽에 위치한 스페인의 경우에도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슬람왕조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가 멸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무엇보다 화려한 문화적 번영을 누렸고 그 번영의 결과물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그대로 들어나 있다.
인도는 또 어떠한가? 아그라에 위치한 타지마할을 보라. 무굴제국의 샤 자한이 왕비 마할을 추모하여 만든 이 웅장한 건물을 지을 때만 해도 아마 무굴제국은 더 번영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이러한 무리한 공사는 하지 않았을테니깐.
언제까지나 지속적으로 번영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 나라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이 성장세가 계속 유지하리라는 것은 지나친 낙관적 희망이다. 여행을 가서 본 그 지역의 찬란한 시절의 유적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으로는 경이롭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평생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기도 한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그래봤자 다 옛날이잖아!!
이탈리아 폼페이에 가면 화산으로 뒤덮였다가 다시 복원 중인 폼페이에 가면, 유적지 군데군데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벽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아름다운 폼페이 유적지를 복원하는데 중간 중간 빨간 벽돌로 복원을 해놓고 있다.
처음에는 미관을 해치는 듯 하여, 좀 불쾌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유를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폼페이 유적을 복원할 때에는 과거 진짜 유적과 현대 시대의 복원된 부분이 완벽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지금은 복원한 것은 알더라도, 미래 몇 백년 후의 사람들이 어디까지가 복원이고 어디까지가 원래 유적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진정한 복원이라는 것이다.
숭례문이 불타 없어지자, 우리는 똑같이 복원하는데만 열을 올렸다. 다시 탄생한 숭례문은 조선시대의 것인지, 현대시대의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역사의 아픔을 부끄럽다고, 또는 무지하여 그저 덮고 새로 포장하려만 한다면 그것은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대로 드러내고 과장하지 않을 때, 더 가치있게 다가온다.
다시 내 암흑기로 돌아가보면, 나에게 역사교과서는 암기용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를 앞에 두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여러 관점과 이해가 있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을 더 할 수 있기에, 다양한 역사교과서가 편찬된다는 것은 올바른 교수법을 위한 전제조건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왜 외웠는지 모르겠다니깐!
여행다니면서 느낀 점 하나는, “이렇게 진짜 보고 느낄 수 있는 역사를 그 때에도 알았더라면 역사 교과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것이다. 내게는 고대사의 몇 년에 무엇을 했다는 주입식 역사보다는 피라미드를 직접 보고 그 감동을 느낀 후, 이집트 박물관에 가서 본 이집트의 역사가 더욱 잊혀지지 않는다. 캄보디아 시엠립의 왓마이 사원에 있는 크메르루즈 정권의 유골이 역사를 이해하고 반성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고, 역사적인 교훈을 얻게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_ 처칠
지금 교과서를 재단하여 민족에게 역사를 잊게 하는 것이 어떠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도움이 될지라도, 그렇게 역사 앞에 반성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이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 아니야?”라고 한 말이 그저 지나가는 말로만은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