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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란수 Nov 09. 2015

여행?희망! _
청춘을 위한 여행 제안

여행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 : 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수능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11월 12일은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있는 날이다. 대학 입시를 위하여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12년 동안, 또 어떤 이들은 재수와 삼수까지 거칠 수도 있으니 그보다 오랜 시간 우리 청춘들이여. 너무 고생이 많았다. 뭐, 당연한 인사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라도, 해주고 싶은 말은     


“수능 준비하느라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노력은 성적을 떠나서 분명 스스로가 기억할 것이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12년간의 준비가 단순하게 하루에 판가름 나는 것도 문제이고, 나의 생각과 능력을 암기 위주로 정해져 있는 답으로 인해 결정되는 것도 문제이다. 사실, 청춘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몇십 년이 지나도록 고치지 못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너무나 큰 고통을 받는 것도 안타깝다.      


수능을 보고 난 뒤 물어본 학생이 있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냐고. 나는 개인적으로 영어회화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엑셀, 파워포인트 등 여러 가지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장 해야 할 일은 내 스스로를 정리하고 돌보는 여행을 떠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해방이다앗!!!

      

나를 다시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여행은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그동안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공부하느라 이제 좀 홀가분해졌다면, 그 홀가분함을 적극적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반대로, 이번 수학능력시험이 그다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시험을 잘 못 봤다면, 다시 무언가를 준비하기 전에도 자신을 스스로 추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방황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이는 토머스 풀러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방황하는 것과 여행하는 것이 행동상의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잘 설명하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하나, 삶을 마주하는 내 마음가짐에서, 여행은 내 스스로가 소중하다는 것을 간직하고, 내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와 시간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자양분을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머니머니해도 여행을 가면 즐겨야겠지만 ^^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언론에서 보도가 된 대로, 아일랜드에는 특별학년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일랜드는 중 ․ 고등학교 과정을 6년 제로 통합 운영하고 있다. 6년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3학년 때 주니어 과정 수료시험을 치러야 하고 다시 3년 뒤에 졸업시험을 쳐야 한다. 그런데 주니어 과정 수료인 3년이 지난 뒤에 전환학년의 기간 동안, 1년을 쉬게 해준다.      


이 시간 동안에 아이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다양한 수업을 통해 직업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시간 동안 아이들은 보다 명확히 자신에게 맞는 일을 알게 되며, 자신이 왜 지금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 또는 이유를 자각하게 된다고도 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 고민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 부모가 아무리 이 직업이 좋다느니, 저 대학으로 가라느니 해도 그 말이 모두 정답이 아닐뿐더러, 대신 내 삶을 살아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조언에 불과하다.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분명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중3 이후 1년간의 여유를 준다면, 사교육이 훨씬 극성일지도 모르겠지만...

     

청춘을 위한 여행 추천지     


그렇다면, 우리 청춘을 위한 여행은 어디가 좋을까? 이제 그동안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껏 꿈을 펼치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여행지를 추천해본다. 이 역시 지극히 필자 주관적인 생각으로 작성하였으므로, 무언가 객관적인 순위 기준 따위는 없다.     


1. 라오스 루앙프라방     


젊은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와 같은 이곳은 무언가 특별한 유적지나 웅장함 따위는 없다. 그저 한적한 이 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곳이랄까. 거기에 젊은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듯이 싼 물가도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여유를 더욱 늘려준다. 만낍(한화 약 1,500원) 뷔페부터 맛있고 싼 바게뜨 샌드위치로 하루 종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푸쉬산에 올라가서 본 루앙프라방 전경

        

2. 이집트 바히리야 사막     


요즘 러시아 항공 추락으로 말이 많은 이집트이지만, 시나위 반도 쪽이 아니라면,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전해 보인다. 수도인 카이로에서 차로 3~4시간을 타고 가서, 베이스캠프인 바위티에서 다시 사막용 지프차로 2~3시간을 달리면 바히리야 사막에 도달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별을 볼 수 있고, 저녁에 베두인 족과 함께 즐거운 파티를 열면, 어린 왕자의 친구인 사막여우까지 볼 수도 있다. 세상의 근심을 털어내고, 앞으로의 살아가는 방법을 마음속에 품고 오기 좋은 장소이다.     

     

하얀 사막에서 이렇게 포즈를 취할 수도 있다


3. 태국 치앙마이     


청춘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듯, 치앙마이도 저렴한 물가는 여행자들을 기쁘게 해준다. 다양한 액티비티 활동이 많아서, 쿠킹클래스, 코끼리 생태관광과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35번 연속으로 타고 내려오는 짚라인 프로그램도 여행자를 즐겁게 해준다. 밤이 되면 소수민족 야시장에서 저렴한 기념품을 사보는 것도 재미. 낮에는 사원을 돌아다니며 그동안의 지친 마음을 다스려보자.        

  

치앙마이의 코끼리 자연공원. 코끼리에게 무리를 주는 트래킹이 아닌, 먹이를 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진짜 교감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4. 터키 이스탄불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 그리고 옛 이름인 콘스탄티노플의 명성 답게 다양한 종교적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역사, 문화,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면서도, 구도심을 굳이 혼잡스럽게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걸어 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매력 있는 장소이다. 터키 특유의 따뜻한 인정과 한국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져 더욱 여행자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다만, 여성에게는 너무 과도한 인정이 골치이긴 하지만)       


그 모습도 웅장한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일명 블루 모스크)

   

5. 인도 아그라     


인도는 살면서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여행자들에게 이야기되지만, 막상 쉽게 가기는 어려운 곳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도전하기 어렵기에, 젊었을 때 한 번 도전해보는 진짜 청춘이 되길 희망해본다. 뉴델리에서 약 150km 정도 떨어져있는 아그라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타지마할이 있다. 살면서 그래도 7대 불가사의는 봐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추천. 그리고, 인도의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삶을 보면서 아마 많은 것을 느끼게도 해 줄 것이다.           


아그라뿐 아니라 인도의 상징이기도 한 타지마할


6. 스페인 바르셀로나     


청춘 여행자에게 힘든 것 중 하나가 이질적인 먹거리라면 스페인은 먹거리에 있어서는 천국과도 같다. 다양한 해산물, 그리고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빠에야까지, 대충 아무 식당에 들어가도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 여기에 늦게까지 영업하는 식당의 모습들도 우리 라이프스타일에는 반갑다. 청춘들은 그동안 늦게까지 안 자고 공부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가우디의 건축물부터, 청년들이 몰려있는 까딸루냐 광장에, 좋아하는 축구를 직접 캄프누 경기장에 가서 볼 수 있는 것도 바르셀로나만의 특징.         

 

메시, 네이마르, 수아레즈가 뛰고 있는 캄프누 경기장에서 직접 축구를 관람해보자!


7. 독일 로텐부르크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으나, 로텐부르크는 정말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중세 모습을 간직한 도시이다. 도심 자체가 워낙 작아서 교통편을 걱정할 필요 없이, 도보로 이동 가능하고, 그저 머무르며 이국적인 모습을 즐길 수 있다. 달콤한 간식거리인 슈니발렌을 먹으면서 도시를 걷다 보면 그동안 공부로 인해 얻은 피로와 근심이 사라질 것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로텐부르크를 간다면 크리스마스 마켓의 진가를 느끼고, 그 멋진 광경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독일 로텐부르크의 중세를 옮겨놓은 듯한 도심 모습


8. 스위스 루체른     


루체른은 아름다운 스위스의 도시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자연풍경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도 있다. 호수를 유람선을 타고 가서, 리기산을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갔다가, 트래킹을 한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다 보면 마음이 상쾌해질 것이다. 청춘들이 가기에 사실 스위스는 그다지 바람직한 물가는 아닐 것이다. 워낙 높은 물가로 인해 식당가는 것이 겁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청춘들에게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시간당 20,000원 수준의 임금을 준다고 하니, 그들을 너무 원망하지 말자. 오히려 그들의 사는 모습을 배워서 우리가 살아갈 때 필요한 지식을 얻는 대가로 생각한다면 어떠할까?        

  

루체른 유람선을 타고 다시 리기산을 올라가보자


9. 일본 사카이미나토     


만화에서 나오는 아기자기한 요괴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 모습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곳. 요괴 마을 미즈키 시게루 로드를 걷다 보면 요괴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해진다. 사카이미나토까지의 기차에서부터 요괴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도착해서는 실제 요괴(탈을 썼지만)와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먹거리도 훌륭하다. 요괴 마을 길의 끝 무렵 시장이 시작되는 곳의 참치라면(마구로 라멘)이 인기이다.      

      

거리 곳곳에 아기자기한 요괴들로 넘쳐난다! 지름신 주의!


10. 캄보디아 씨엠립     


캄보디아는 여행자에게 훌륭한 동선을 제공하면서도 다양한 볼거리를 느끼게 해준다. 공항에서부터 여행자 거리까지 툭툭을 타고 이동하면, 대부분의 식사와 숙박은 여행자 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다. 펍 스트리트로 알려진 장소는 청춘들이 함께 어울리기에 좋은 장소이다. 여기에 다시 가장 유명한 앙코르와트까지도 툭툭을 타고 이동하면 되기에 유적지를 보고 싶은데, 교통편이 걱정된다면 이 곳은 그런 걱정은 기우이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서 주변 마을 지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나 현지 시장을 관찰하는 투어 프로그램 등 공정여행을 참가해보면, 삶에 대한 감사함과 또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방향을 생각하기에 좋을 것이다.        

        

씨엠립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앙코르와트를 보자!
이렇게 청춘들이 홀로 책을 보면서 떠나는 앙코르와트가 가장 멋지게 보는 방법인 듯!


재수의 추억     


필자는 첫 번째 대학 입학에 보기 좋게 실패하였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몰랐기에,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난 나 자신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칼카나마알아철니주납구스은, 에취에취이리베비시노프네나마알시피에수시엘에이알, 활석많은방형이인정많은석황을강금했다, 은주춘추전국진한위진남북조수당송원명청, 나라마음(이건 된소리 현상의 ㄴ, ㄹ, ㅁ, ㅇ 을 이렇게 외우게 했다), 아우스바이밋낰자잇폰주게게니버(독일어의 3격 지배 전치사) 등등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난 이런 게 외우는 것만 잘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수능 점수가 나온 날. 다른 사람들이 예상 점수보다 떨어진데 비해 약 10점 정도가 올랐다.  그때가 200점 수능 만점이었으니 아마 전국 석차 비율로는 약 5% 정도가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특차는 물론이거니와, 정시 세 군대를 모두 탈락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다 떨어지고 재수할 결심에 재수학원을 찾아보았다. 가뜩이나 대학까지 떨어졌는데 또 시험을 봐야 한다니. 그렇게 재수학원의 시험을 보고 얼마 있다가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 날, 전화로 재수학원에서는 합격 소식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래서, 졸업식장에서 나와서 전화를 했다. 거의 전화 안내원 수준의 목소리를 가진 분이 전화를 받아 "안녕하십니까! 수험번호가 몇 번이십니까?" 하며 물어보았다.  

   

필자는 "3743번이요"라고 대답했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데 안내원 둘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3743이래? 3734래?",
 "(귀찮다는 듯이) 몰라! 둘 다 떨어졌어!"


이러고는.

다시 상냥하게 "어휴. 어떡하죠? 그만  떨어지셨네요"라는 이야길 들었다. 인생이 참 내 뜻대로 풀리진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운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던 것일까? 다른 학원에는 다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그때 심정이었으면, 학원에 가서 다 엎었을 것이야~~~

    

지났으니까 웃는 거라고 들릴 수도 있겠다. 맞다. 당시에는 시험 점수와 공부라는 사슬에 묶여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성적과 대학 입학은 삶에서 전부는 아니다.      


우리 삶에서 돌아간다고 늦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길을 지름길이 아니라 돌아서 가게 되면 그만큼 더 다른 풍경들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곧바로 지름길만 가다 보면 더 빨리 어떠한 목표점에는 도달하겠지만 그동안 보아오던 것이 없기에 목표점에 서는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왔는지를 몰라 더 허무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우리 삶이라는 것은 경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사는 동안 즐기고 만끽하기 위함이다. 죽음을 위해 내달리는 것은 삶이 아니다. 청춘이라면 더더욱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사실 그것이 국가가 우리 청춘들에게 해주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울고 있을 필요 없어! 국가가 못한 것일 뿐,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길 바라며     


내가 가장 존경하는, 그리고 만인의 은사라고 불리는 고 리영희 교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의 책에는 ‘대학 1학년생과의 대화’에 이러한 글이 실려 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바로 며칠 전의 일. 
연구실에서 다음 시간의 강의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린 남학생 하나, 여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누구지?...무슨 일이야?" 

나의 물음에 둘은 나의 학과의 금년 신입생이라고 답한 뒤에 각자의 이름을 댔다.

(중략)      

대학에 갓 들어온 고등학생의 앳된 티가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의 어려웠던 일에 위로와 입학축하의 말끝에, 으례 하는 말로 물었다. 

"대학에 들어온 기분이 어때?" 

그렇게 묻고 여학생과 남학생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두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서슴없이 뱉어져 나온 같은 답변에 찔끔 놀랐다. 

"시큰둥해요...배울 것도 없구요."    

열여덞 살의 두 남녀는 아주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라는 듯이, 정년이 가까운 노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뭐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되묻듯이.    

  (중략)     

"너희들이 나와 이야기하겠다고 찾아왔으니 내 똑바로 말하겠다. 너희들은 철이 들기도 전에 벌써 교만부터 배웠구나. 대학에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니...? 대학문을 들어온 지 며칠이 됐니? 이제 꼭 열흘이야. 열흘 동안 대학문을 들락거리고 벌써 배울 것이 없다고?" 

그래도 여학생의 눈알은 도전하듯이 나의 눈알을 노려보고 있었다.     

 (중략)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이 어린 자칭 '수재'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대화로 깨우쳐야겠다고 마음을 돌렸다. 

"너희들, 입학하고 나서 오늘까지 대학의 중앙도서관에 가본 일 있니?"   

(중략)      

"내 방에서 나가는 길에 중앙도서관으로 가 보아라. 너희들은 그곳에서 수십만 권의 책을 보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의 도서실과는 다르다. 그곳에는 인류가 수십만 년 간을 진화,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창조하고 축적한 동서양의 지식과 정보가 가득 차 있다. 그것조차도 전인류의 지식의 몇천분의 일밖에 안되는 것이다. 어떤 천재도 그 앞에서는 압도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어떤 수재도 그 앞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왜소하고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것이다. 또 교만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히 겸손해지거나 겸손해야 할 필요를 깨닫게 될 것이다."      

(중략)     

"너희들은 아까 대학 1학년생의 생활이 시큰둥하다고 말했지? 배울 것도 없다고 했지? 그러면 종로서적엘 가 보아라. 교보문고엘 가 보아라. 거기에 진열된 책의 제목들을 너희가 가진 지식으로 살펴보고 나서, 아직도 '배울 것이 없는지'를 나에게 말해 달라. 너희는 자기의 무지를 깨달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그토록 패기만만했던 여학생의 시선이 나의 얼굴에서 떨어져 우리 사이에 놓인 낮은 탁자 위에 멈춰 있었다. 입을 꼭 다문 채 말을 하지 않았다. 머리가 좋은 만큼 깨달음도 빠른가 싶었다. 그래서 대학의 교육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너희들이 여태까지 배운 공부는 국정교과서에 의한 규격화 공부다. 대학에는 국가권력의 강제에 의한 교과서가 없다. 학과에 따라서 조금은 다르지만 원칙으로는 인류의 무한한 지식의 바다에서 교수와 학생이 자유롭게 골라서 읽고 연구하는 것이다. 학문, 연구, 사상의 자유가 거기에 있다. 너희들은 오랜 억압적 교육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사상의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강제와 획일과 억압에 길들여진 머리는 깊은 물의 중압에서 압력없는 표면에 나왔을 때처럼 어지러운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부자유스러울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유를 모르는 정신에게는 '자유라는 형벌'이 된다. 이제부터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책을 읽어라. 인간이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일 수가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희열'이다."      

그들은 저윽이 감동한 듯 보였다. 나는 이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어디서 왔는가를 그들에게 깨우쳐 주어야할 도의적 책임을 느꼈다. 그래서 말을 이었다.      

"이토록 생명같이 귀중한 학문과 사상의 자유는 종교의 하느님이 하늘에서 내려준 은혜도, 국가권력이 하사한 선물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 대학에 들어온 너희들의 선배가 자유의 생명을 말살하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에 대항해서 수없이 많은 목숨을 버리고 피를 흘리고, 고문을 당하고 형무소에서 신음한 결과로 획득한 고귀한 열매다. 인간의 자유와 공민의 권리를 교육과 법률로써 말살하려 했던 군사독재체제와 그 광신적 반공주의에 맞서서 싸운 선배들에게 너희들은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그 열매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기꺼이 빼앗기면서 싸웠던 것이다.

알겠니? 무지한 사람은 자유일 수 없어. 너희들은 젊다. 학교 공부와 교외의 활동과 뜨거운 사랑을 하면서도 적어도 한달에 열 권의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다. 시큰둥할 시간이 어디 있으며,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두 학생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잘 알았습니다. 저희 생각이 잘못이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마지막 말을 해주었다.     

 "대학은 고등학교처럼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스스로 찾아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책을 읽어라."      

두 학생은 들어올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나는 공손히 머리숙이고 연구실을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책 표지


그동안의 억압된 배움에서 이제는 벗어나서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된 청춘들은 이제 자유로움을 충분히 즐기되 스스로가 배움을 익혀야 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세상에서 얻는 지식은 2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접적인 지식과 직접적인 지식. 그 간접적인 지식은 고 리영희 교수님의 말씀처럼 책으로부터 얻게 된다.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직접적인 지식은 일상에서의 생활이나 우리가 여행을 떠나서 보는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이해하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억압적인 공부에서 벗어나 나를 가꾸고 쉬는 일이다.

여행을 떠나서 현명해지고,  또다시 돌아와서 자율적인 진짜 배움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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