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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란수 Nov 03. 2015

여행?희망! _
갑질을 벗어던지는 여행

여행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기 : 이른바 "헬조선"을 벗어던지기 위한 여행

한량이 된 이유? 여행? 갑질!     


앞서 이 글의 연재 처음에는 여행을 많이 가기 위해 ‘한량’이 되었다고 쓴 바 있다. 물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나의 업무가 정말 만족스러웠다면 아마 여행 때문에 그렇게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업무는 보통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또 민간기업에서 관광지를 개발하거나, 사업이 타당한지에 대한 여부를 묻는 용역을 의뢰받아 수행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학술연구용역이라는 형태로 맺어진 갑을관계 중 “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사실, 멋진 발주처도 많이 있다. 전문성을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발주처에게는 더 고마운 마음에 열심히 일할 마음이 나기도 한다.     

 

특히 몇 해전, KT&G 및 한국인삼공사와 연구용역 계약을 할 때의 일이다. 난 계약서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KT&G와 한국인삼공사의 계약서에는 갑과 을로 명시하지 않는다. “을”이 아닌 “상대방”으로 계약서가 명시되어 있다. 단순히 계약서 문구일 뿐이라도 그러한 존중의 자세가 참 고마웠다.      


그러나, 일부의 발주처는 철저하게 “을”로 대하는 경우도 역시 있었다. 이른바 갑질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갑질이라는 것이 정당한 요구라면, 당연히 돈을 받고 행하는 업무에서 필요할 수 있겠으나 도를 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강도가 점차 심해질수록 나 스스로가 회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드라마 송곳에서 이수인 과장이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맞지 않는 것을 깨달았듯이..

  

드라마 송곳에서의 이수인 과장은 관리자임에도 원리원칙을 추구하는 진정한 송곳같은 사람이다 _ 이미지 출처: CBS노컷뉴스


비단, 내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갑질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갑질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포털사이트 내 트렌드 지식사전에는 유석재의 글을 인용하여, 갑을관계에서 ‘갑’의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주의, 더 정확하게는 천민 자본주의가 발달한 우리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로 갑질을 행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늘어났다. 이른바 갑질의 사회가 된 것이다.           


갑질의 사회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코 갑질 논란이었다. 올해 초에는 경비원 분신사건부터 대형마트 VIP 논란, 여기에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갑질로 온종일 뒤숭숭했다. 최근에는 스와로브스키 매장에서 직원을 무릎 꿇리는 일이 다시 생겨서  또다시 갑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하였다. 

     

스와로브스키 매장뿐만의 일이랴. 몇 달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백화점 모녀가 인터뷰하는 모습이 방영이 되었는데, 그들은 백화점에 돈 쓰러 온 자신들이 왜 그러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한다. 이는 대형마트 VIP 사건의 당사자도 자신이 그 마트에서 몇 억씩 쓰는 VIP라고 안하무인처럼 대하는 것과 동일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백화점 VIP 모녀 이야기 中


갑질을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돈이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으로 보인다. ‘내 돈 내고 내가 사겠다는데’ 무슨 문제냐는 것이다. 배려, 인정 등의 다른 연결고리는 부차적인 것이 된 사회에서, 오로지 자본만이 서로의 연결을 이어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내가 물건을 사는데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않냐는 권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서비스업에서 불거지는 논란은 바로 이러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비단, 서비스업 종사자들만 해당이 되겠는가? 필자의 경우에는 물건은 아니지만 용역이라는 서비스를 돈 주고 샀으니 너를 마음대로 이용하겠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그들이 산 것은 노동력이지, 노동자는 아닌데 말이다.           


내가 당해본 갑질에 대하여     


용역을 진행하면서 당해본 갑질은 셀 수 없이 많다. 정부부처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은 다시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을 사그라뜨렸다.      


중앙부처에서 발주한 연구용역을 할 때였다. 세종시에 있어도 아무 때나 당장 오라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었다. 부르면 다른 일정이 있더라도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달려가야 한다. 급하게 가더라도 자신들의 업무가 끝날 때까지 1층에서 1~2시간 대기하는 것은 일상이다. 처음 과업내용과 다르게 업무 범위가 달라지고, 조사할 것이 크게 증가해도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결국 용역비도 더 받지 못하고 3개월을 더 연구해야 하였고, 원래 책정되었던 용역비마저도 나중에 정산하면서 이러한 저러한 이유로 몇 백만 원이 더 삭감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갑이었다.      


내가 너네 때문에 다시 중앙부처랑 일하나 봐라!!!


얼마 전 다른 중앙부처에 갔을 때도 이러한 경우를 또 마주했다. 지방 지자체의 심사가 있었다. 지방공무원은 그 심사를 받기 위해 왕복 10시간여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도착해서 3시간 동안 기다리는 것은 예사이다. 심사에 들어가자마자 시간이 없다며 5분 안에 사업을 설명하란다. 얼마나 사업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설명이 끝난 후 교수진으로 구성된 위원들은 불만을 쏟아낸다. ‘그 먼 곳을 개발하면 누가 가겠느냐’, ‘수치가 이 정도 나오면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할 말은 많지만, 말할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잘못 이야기한다면 그거 자체가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심사위원들은 개선장군이 된 것과 같다. ‘거봐. 니네는 이런 거 모르지? 교수가 이야기하면 좀 배워둬!’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쳐! 10시간 동안 왔다 갔다 하는 지방공무원은 뭐가 되냐!!


지방자치단체의 공원 개발 심의 때는 더 가관이었다. 통상 공원 심의는 하나의 안건만 심사하지 않는다. 3시부터 시작된 안건은 처리가 점점 지연되고 있었다. 6시까지 기다려서 겨우 차례가 되었는데, 심사위원이 하는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6시가 되었으니 오늘 심의는 여기까지 합시다.
다음 안건은 다음 달에 심의합시다”    

      

그들은 몇 분이 아까웠겠지만, 그 안건을 준비하려고 더 밑의 공무원과 연구진들은 몇 달을 기다렸다. 공원에 투자하려는 민간사업자의 손해는 한 달이 더 추가가 되었다.     


지방공무원 편들어주려 했더니, 다 고놈의 고놈이잖아!!!


이러한 갑질이야, 뭐 공무원들의 관행(?) 정도로 해두자. 법적으로 문제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깐.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더욱 심한 경우를 보았다. 직접은 아니지만, 함께 일을 하는 엔지니어링 업체 대표를 자기들 회식하는데 부른 것이다. 물론 함께 일하는 공공기관의 팀 저녁식사 정도를 사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날은 좀 심했다. 그날 그 공공기관 식사자리는 팀 몇 명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한 부서의 모든 사람들이 와있었다. 식대 지불은 엔지니어링 업체 대표의 몫이었다.      


최근 상영되고 있는 드라마 ‘송곳’에서도 협력업체 사장이 와서 이렇게 계산하는 장면이 나온다. 젠장          


갑질에서 벗어나는 여행가기     


내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 이상, 이른바 갑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내가 내 돈을 주고 내 권리를 행사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지불하는 돈은 그가 사려고 하는 제품에 대한 값어치이지,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제공하는 이들의 감정까지 값으로 책정하여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글담출판)라는 책을 낸 린 마틴은 노부부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면서 깨달은 삶의 기쁨을 책에 고스란히 적었다. 책에는 멕시코 산미겔이라는 지역을 여행 다니면서 적은 구절이 쓰여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20년대에 산미겔을 멕시코의 명승지로 선정해 산미겔의 고유한 매력을 보존해 왔다. 산미겔에는 신호등이나 네온사인이나 체인점이 없다. 산미겔은 45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산미겔 대다수 주민의 예의 바른 행동은 품위가 넘치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멕시코 정부는 19세기 중반에 행실이 바른 모든 멕시코인이 어린 시절에 배우는 올바른 행동 강령을 발표했다. 이를 테면, 물건을 사든 사지 않든 가게에 들어가면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거나, 가게를 나가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화를 할 때마다 항상 가족의 건강을 묻는 안부 인사를 먼저 해야 하며, 신사라면 여성에게 문을 열어 주고, 여성이 방에 들어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해야 한다. 

이 모든 게 느긋한 삶의 속도의 일환이다. 우리는 산미겔에 갈 때마다 미국에서와 다른 느린 흐름을 다시 익혀야 했지만, 이런 느긋함이 더 없이 고마웠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책 표지


갑질에는 행사할 권리도 있는 반면, 갑으로서 존중받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도 존재한다.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살 때에도 “내가 물건 사주니 고맙지?”가 아니라, “내게 물건을 팔아줘서 고마워”라는 마음을 지녀야 진정한 갑으로서의 존중이 가능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 사람들이 불편할 때가 있다. 외국에 나가서 내가 내 돈 주고 여행을 왔으니, 공공장소나 식당, 기내에서 마음껏 떠들어도 된다고, 마음껏 내 멋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외부에서 사 온 술을 스스럼없이 꺼낸다거나, 아이들이 떠들고 돌아다녀도 가만히 놔두고, 호텔 조식자리에서 냄새가 나는 컵라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끓여먹는 모습들. 주위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바라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내가 내 돈 주고 여행 왔는데 어떠냐는 식의 모습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모두가 조현아가 되고, 백화점 모녀가 되는 순간이다.      




내게 여행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과, 그리고 함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행복했던 기억은 '갑을'로서가 아니라, 인정과 웃음으로 맞이할 때였다. 비로소  그때서야 그 여행이 더 빛이 났다. 돈의 노예가 아닌, 함께 사는 사람과의 배려를 찾을 때, 이른바 갑질은 사라질 수 있다. 


멕시코 산미겔의 느긋함과 배려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때이다.     

      

여행에 가서 모든 갑질에서 벗어나 하늘로 날아보자!



* 본 글은 필자가 2015년 1월에 쓴 ‘이른바, 갑질에 대하여’ 허핑턴포스트의 글을 토대로 보완하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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