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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pr 23. 2021

나를 향한 여행

씨엠립 여행 1

사무실이 텅 빈 순간 나의 마음도 비었다. 지난 25년간의 세월이 스르르 손에서 빠져나갔다.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갔지만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텅 빈 사무실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언제나 고민이 있으면 혼자서 걸었다. 차가 다니는 대로는 물론 도시의 골목길을 찾아서 걸었다. 특히 회사 뒤에 있는 울창한 숲이 있는 산을 걸을 때가 가장 좋았다. 나무와 햇살 그리고 새소리가 마음을 늘 편하게 했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이 불면 심란하지만 기분은 좋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평소 2만 보를 걸어도 힘든 줄 몰랐는데 오늘은 몇 걸음만 걸어도 발이 늪에 빠진 듯 무겁다. 이제 걷는 것도 마음 대로 할 수 없구나라고 절망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비행기 안이다.


바로 옆에 앉아 계시는 분이 말없이 울고 계신다. 지난 5일 동안 캄보디아의 맑은 모습이 그분에게 잔상으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다.


5일 전 새벽 설레는 마음으로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에 기부할 짐을 들고 많은 분들이 배웅을 나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발시간보다 조금 늦게 이륙한 비행기는 맑은 날씨로 흔들림 없이 캄보디아로 향했다. 이륙 후 30분이 지나자 기내식으로 하얀 밥에 돼지 불고기가 나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 책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비행기에 내려서 걸어서 공항청사로 이동하는데  습기가 가득한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전통 가옥의 지붕을 가진 씨엠립 공항청사에 들어가자 많은 여행자들이 입국비자를 받기 위해 분주하다. 1달러를 요구하는 심사대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입국비자를 받고 공항을 나서자 우리를 기다리는 차가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차를 타고 4시간 거리에 있는 시소폰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끝없는 지평선과 메마른 초원이 어지러운 여행자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시소폰에 도착하여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학교로 이동하였다. 학교는 운동장을 중앙으로 4개의 건물이 둘러싸여 있는데 교실로 쓰는 건물은 하나였다. 다행히 태풍으로 엉망이 된 교실 건물에 멀쩡한 지붕이 올라가 있다. 우리가 미리 보낸 지원금으로 만들어진 지붕이다.


학교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페인트 작업 준비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페인트 칠을 하였다. 처음에는 작업량이 많아 오늘 내 이루어질 것 같이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열정적인 도움으로 작업은 순식간에 성과가 보였다.


페인트 작업을 하면서 간간히 마주치는 마을 분들의 해맑은 눈빛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불과 2시간 만에 큰 건물의 전면이 노란 페인트로 깨끗하게 단장되었다.


뜨거운 날씨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시원한 물과 음료수가 끊임없이 제공되었다. 몇몇 학생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음료수나 물이 떨어지면 바로 갖다 주었다. 오후 내내 작업을 한 결과 교실 건물이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학교가 새단장을 마치자 시소폰 마을에서 마련한 마을 잔치가 시작됐다. 잔치의 참여 인원은 대부분 마을 사람으로 500명이 넘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먹고 춤추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잔치가 끝날 무렵 초등학생들이 전통복장을 하고 세련된 몸동작과 손동작으로 압사라 춤을 추었다. 압사라 춤은 인도의 신이 아름다운 선녀인 압사라에게 가르친 춤으로 손동작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춤이다.


춤의 끝부분에 아이들이 우리 일행을 무대로 데려와서 바구니에 담아온 꽃들을  뿌려준다. 내 눈 앞에 아이들 뿌려준 꽃들이 눈처럼 흩날리자 나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신한다.


다음날 아침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우리가 준비한 쌀죽을 먹기 위해 새벽부터 초롱초롱한 눈빛의 어린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 아이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맨발로 먼길을 걸어서 이곳에 왔다고 한다.



우리는 쌀죽을 떠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쌀죽을 받자마자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어제오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후에 들어보니 다른 분들도 마음속으로 많이 우셨다고 한다.


식사가 마치자 캐나다 출신의 수녀님과 함께 설거지를 하였다. 수녀님은 26년을 일본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이곳에서 4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자원봉사가 베풂도 의무도 아닌 그저 우리가 사는 삶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는 수녀님의 모습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유치원을 나와 우리가 한국에서 돈을 보내어 지은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 페인트로 집을 도색했다. 페인트 작업은 어제 학교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늘이 없는 데다가 높은 곳까지 칠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작업이 더디고 어려웠으나 계속되는 작업과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으로 일의 속도가 붙었다. 모든 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작업한 덕분으로 집이 어느새 깨끗하게 단장되었다. 장애인 아들을 둔 새집의 늙으신 주인은 너무 좋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신다.


작업을 마치자 누군가의 추천으로 봉사자의 노래를 불렀다. 오늘따라 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며  저녁을 먹기 위해 바다 같은 호수 툰렌샵으로 이동했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툰렌샵에서 보는 호수와 일몰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저녁도 대충 먹은 채 일몰을 즐겼다.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배에서 내리자 대기하던 있던 차가 씨엠립에서 최근 유명해진 파래 서커스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차 안에서 운전사는 서커스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커스 공연은 이곳에 여행 온 프랑스 출신의 공연기획자가 길거리의 버려진 아이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자립을 위해 준비한 것으로 공연 내용 역시 실제 이야기와 똑같이 어느 여선생님이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연습시켜 예술가로 탄생시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고난도의 몸 연기와 음악이 어우러진 서커스 공연은 수준 이상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공연 내내 사로잡았다. 특히  서커스가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순간 죽어가는 여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 운명을 버텨온 삶의 이유는
바로 사랑이다.

Life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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