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코로나의 터널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접었던 여행업을 다시 펼치고 일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의욕이 없다. 너무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아서인가 하고 나를 돌아보았더니 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2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받았다.
조국과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시절을 보낸 나는 졸업 후 조그만 여행사에 취직을 하고 IMF라는 경제 한파를 거쳐야했다. 그때부터 나는 나와 내 가족의 안위에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대 초반에 버려진 여행사를 인수하여 우연히 사장이 된 나는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욕망과 열정에 몸을 맞긴 채 세상을 내 중심으로 이해하고 헤쳐나갔다. 주위 사람들 역시 그렇게 변해갔다.
그래도 함께한 분들과 함께 성장하고 함께 망한다는 원칙과 양심은 남아 있었다.
사업이 한참 물이 올랐을 때 나는 이 원칙을 잠시 망각했는지 모른다. 주식을 나누고 성과를 나누었지만 함께한 분들의 기대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처음으로 회사 구성원마다 처한 상황과 욕망의 크기가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회사 구성원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한발씩 나아갔으며 그 사이에 회사는 찌그러져 갔다.
실제 회사가 성장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트렌드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그 결과 매출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성장 이유 역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상품이 당시 유행했던 트렌드와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력 있는 상품을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노력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회사의 성장과 쇠퇴가 우리의 노력과 능력에서 나왔다고 믿었다. 점차 매출이 줄어들자 나를 비롯한 구성원들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각자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서로 미워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동안 벌어 놓은 돈을 다 까먹고 자구책으로 급여를 낮추자 한 분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빈털터리로 남겨진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서로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와서 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1년이 지나고 코로나 동굴의 끝이 보이는 시점에서 다시 사업을 재개하려는 나의 마음은 설렘은 커녕 무겁기만 하다. 그동안 사람한테 받은 상처때문이다.
사업을 시작하자 그동안 숨겨왔던 사람들의 욕망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지난 시절까지 보상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꿈을 꾸다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함께 했던 분들이 받은 상처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살아야 하기에 상처를 붙잡고 다시 사업의 불구덩이로 뛰어들어야 한다.
유일한 위안은 조국과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물론 함께 성장하고 함께 망한다는 원칙을 이제는 지키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을 만큼 내가 뻔뻔해졌다는 사실이다.
또한 욕망과 생존이라는 무거운 짐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각자의 무능과 책임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과 욕망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각자의 생존과 욕망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함께 일할 수 있다. 이는 사업에서 능력에 맞게 성과를 공유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더 이상 과거의 헌신이나 실적 때문에 능력 이상의 성과를 가져가서도 안되고 나이가 어리거나 직급이 낮다고 해서 열정 페이를 바래서도 안 된다.
지금 내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성찰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그 동안 있었던 나의 욕심과 아집을 버려야한다. 또한 일 때문에 생긴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 그리고 무기력을 하루빨리 털어야한다. 그래야 사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이전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그것을 나의 운명이자 내게 남겨진 최고의 순간들이라 여기며 버틸것이다.
삶의 행복과 가치는 성과물보다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나눈 눈물과 땀 그리고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