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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pr 27. 2023

아내의 흔적

일상의 평화

아침에 일어나 청소와 설거지를 한 후 빨래를 널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뭉클함이 올라 온다.


병원에 있는 아내가 30년이 넘게 매일 이곳에서 청소하고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널었다고 생각을 하니 아내의 흔적들이 잔잔히 밀려오며 마음의 물결을 일으킨다.   


이제 대학생이 된 막내를 깨운 후 아침을 챙겨서 먹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자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아내가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을 때 병원으로 향하는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특히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땅끝까지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가슴속 깊은 회한과 눈물이 밀려왔다.


또한 예정된 5시간의 수술시간이 지나도 수술이 끝나지 않자 마음속이 시커멓게 타기 시작했으며 아내가 무사히 수술실에서 나올 수 있도록 기도했다.


6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수술실을 나서는 아내의 모습에서순간 안도감이 들면서도 초주검이 된 아내의 모습에 마음리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후 마취에서 깨어난 아내는 아프다고 울먹이는데 차마 아내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넘어가면서 점차 아내의 몸도 나의 마음도 회복이 되었지만 조직검사 결과 아내는 암진단을 받았지만 아내와 나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감사하게 생각했다.


지난 열흘간의 시간들은 고통스럽지만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힘을 내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함께 하루 종일 보내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귀하고 값진 시간들이었다.


아내의 통증이 사라질 때면 아내와 함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근새근 자는 아내가 잠이 들 때면 고요한 병상의 공기가 평화로움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나 역시 마음이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찼다.


아내와 함께 항암치료를 받고 병을 이겨내야 하는 시련이 시간들이 남아 있지만 오히려 이 시간들이 나에게는 진정 사랑을 나누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하고 있다.

다시는 미래의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현실을 덧없이 소비하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몇 번이나 마음속 다짐을 한다.



현재에 집중하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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