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공부하는 아빠, 그림책 [엄마의 선물]
3월은 아이들 특히 둘째 아들 녀석에게 힘든 달이었다. 집을 떠나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 처음 만나는 선생님, 처음 해보는 것들, 모든 게 새로운 아이는 무척이나 낯설어했다.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울었다. 어떻게든 달래서 차에 태워 보낼 때면 늘 아들의 손에는 가제손수건을 쥐어주었다. 아들은 멈추지 않고 흐르던 눈물을 닦아야 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갈 때 아이들이 그나마 기대했던 것은 다름 아닌, 엄마의 쪽지였다. 쪽지는 아이들의 옷장에 붙어있었다. 유치원에서의 일과를 잘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고생했다는, 너무 애썼다는 엄마의 말이 적혀있었다.
"오늘은 엄마가 뭐라고 써놨을까!"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손을 씻고 곧장 옷장 앞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엄마가 어떤 말을 써놨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득했고, 매일처럼 달라지던 엄마의 격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채워주었다. 글을 아직 모르는 둘째는 아빠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첫째 아이는 쪽지 앞에 한동안 서있었다. 쪽지는 불안함 가득했던 그날을 잘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엄마가 주는 작은 상장과도 같았다.
[엄마의 선물]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할 삶의 교훈들을 들려주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면, 언젠가는 너에게 돌아온단다."
"비 맞을까 봐 두려워 너의 길을 멈추지 마. 너에게는 커다란 우산이 있잖니."
"떨어질까 두려워 너의 꿈을 접지는 마. 너에게는 커다란 날개가 있으니까."
"힘이 들면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보렴.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단다."
엄마의 말들이 어딘가로 흩어지지 않고 아이 마음에 기록된다면, 아이는 살아가면서 언제라도 그 말들을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을 내려야 하고, 여러 판단들 앞에 서야 할 때 엄마가 해주었던 말들, 엄마가 남겨준 쪽지를 꺼내 가만히 고민할 것이다. 또 때로 불안함이 몰려와한 걸음을 떼기가 망설여질 때, 아이 마음에 새겨진 엄마의 쪽지는 자기를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림책 덕분에 내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면 엄마는 식탁에 늘 쪽지를 남겨놓곤 하셨다.
"아들아! 엄마 오늘 일 있어서 나가니까, 배고프면 여기 볶음밥 먹어.
"아들! 냉장고에 수박 썰어놓은 것 있어."
"아들! 학원 가기 전에 배고프니까 식탁에 간식 챙겨 먹어."
나는 쪽지를 읽으면서 엄마가 해놓은 볶음밥을 우걱우걱 맛있게도 먹었다. 늘 내가 좋아하던 그 맛으로 볶음밥을 만들어놓으셨다. 더웠던 날이면, 엄마가 깍둑썰기로 잘라놓은 시원한 수박은 더위를 식혀주고도 남았다. 나는 학원에 가기 전에 엄마가 준비해 놓은 간식을 먹었고, 엄마 쪽지 옆에 다 먹고 남은 과자 봉지를 두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쪽지에 써놨던 모든 말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 오전부터 만들었을 엄마 볶음밥은 잊히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에 학교에서 흠뻑 땀 흘렸을 아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도 썰어놓았던 수박은 엄마의 격려이자 응원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서도 엄마의 온기가 식지 않도록 도와주던 간식이었다.
이제와 보니, 고생했다며 나를 격려해 주던 엄마의 쪽지는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비공식 상장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