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중후반의 고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나우누리, 천리안 등의 PC통신이 모뎀의 '띠~띠이이이디디이 지지지직~~' 소리와 함께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고 그렇게 모뎀을 넘어서서 ISDN과 ADSL로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스타크래프트의 유행과 함께 PC방도 성행하기 시작하며 친구들과 PC방에 가려하면 장시간 대기는 기본이었죠!
집에서 발견한 나우누리 CD '파란피만 모여라'
또한 PC통신의 채팅, 인터넷 채팅, 하두리 같은 영상채팅이 유행하고있었으며 일부의 이상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관심사 이야기를 나누고 매번 접속하는 사람들끼리 안부를 물으며 고민거리도 서로 상담하는 말 그대로의 편한 대화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호죽순 생겨나는 수많은 채팅 사이트 중에 우연히 '늑대 여우 채팅방'이라는 곳에 저는 자주 접속을 했고 그곳에서 주로 대화를 하는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실제 만나지는 않았지만 전화통화 정도는 하는 말 그대로 편한 팸의 느낌이었죠.
그중에는 서로 만나 결혼한 사람도..
컴퓨터를 잘해서 해커가 꿈인 친구도..
약간의 장애가 있는 친구도 있었고
그 외 여러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아이디가 '켄신'인 친구와 만화 얘기를 나누다
'코스프레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
라는 말에 저는 귀가 솔깃해졌죠.
만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남고였기에.. 그런 동아리는 없었거든요.
그때 당시 구입했던 카드캡터 사쿠라 편지봉투&편지지
슬레이어즈 엽서 사진들
그렇게 그 친구의 모임에 가입하여 처음으로 혼자서 부산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무궁화호 입석을 타고 4~5시간을 왕복하곤 했지요.
그 당시 부산의 모습은 지하철도 1호선 뿐이 없었으며 해운대까지 개통도안되어 있었지만 제가 가는 곳은 교대역 부근이라 쉽사리 찾아갈 수 있었답니다. 첫 부산 여행인지라 찾아가는 길은 두근거리기만 했죠!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없이 지도만으로 물어물어 찾아갔던 게 신기해요~
아직도 가끔씩 부산에서의 첫 모임 장소가 기억 속에아른거려요.
부산의 아이즈비전이라는 곳의 지하에서 PIAD라는 행사가 있었고~ 햇살은 밝게 비추어지고 있었으며, 잔디밭에 몇 그루의 나무들이 푸르르게 있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옆의 나무 부근에 앉아서 모두의 소개를 받았었고 그렇게 제 인생에 처음으로 혼자 장거리 여행을 와서 사람을 만나는, 동아리 모임을 해보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팀은 선녀강림이라는 만화의 코스프레를 했었고요.
그 후 부산 코믹월드의 행사가 개최되면서 PIAD는 아쉽게도 점점 사라지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부산 코믹월드 1회 / 10회 카탈로그
이때까지만 해도 PIAD는 '코믹월드' 속에서 살아 있었던 것 같다.
코믹월드는 처음에는 요트 경기장에서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 후에는 해운대의 벡스코에서 진행을 하였고 저는 행사가 있을 때면 가끔 부산에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대전 시내도 잘 안 가본 제가 남포동 시내에서도 놀아보고~ 친구 집에서 잠을 자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에 첫 바다를 부산 송도 해수욕장에서 보았고요.
그 후로 부산 코믹월드는 점점 성황을 이루어 참가팀 부스만 보아도 엄청나게 활성화가 되어갔답니다.
부산 코믹월드의 = 1회 참가 부스 / 10회 참가 부스
아래의 사진은 저의 오래된 이메일에 남아 있던 사진입니다. 그때 당시는 컬러폰이 출시된지도 얼마 안 되었고 휴대폰에 저해상도의 카메라가 장착되는 시기였으며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진을 옮길 수도 없어서 MMS에 이메일로 전송했기에 화질이 더 안 좋은 걸 수도 있어요. 그래도 최신형 이였고요.
제 기억으로는 기차를 타기 위해 벡스코를 나가면서 찍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찍힌 사람들도 아는 사람 들이였고.. 그때 저 장소를 벗어나던 게 기억나고 그 장면도 선명하게 기억이 아는데 정작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마음에 쓰라림을 남기는 것 같네요.
언제였던가..?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벡스코를 나서며 찍은 사진
그렇게 그때 당시에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이클럽이라는 사이트도 알게 되고~
거기서 코스 동아리들을 만나며.. 대전에서도 모임이 있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는 거진 대전에서 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부산 코믹월드는 정말 제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많은 첫 경험을 하게 해 준 그런 행사였습니다.
휴대폰 번호도 중간에 한번 바꾸는 바람에 지금은 연락되는 친구들이 몇 명 없지만.. 연말이나 명절이 다가오면 어쩌다가 가끔~~ 생존 신고하는 느낌으로 연락을 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저의 부산 코믹월드의 추억이 생각나서 이곳에 추억 한편을 기록해 봅니다.
같이 코스를 했던 친구들도 지금쯤은 다들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고 있겠죠?
그때 알던 한 친구는 중학생이었는데 벌써 30대의 중반이 되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답니다.
부산 벡스코에서의 코스프레 벌써 16~17년은 지난 것 같다
부산에 내려가면 자주 재워줬던 친구 '정OO' 아직도 어~~ 쩌다 연락을 한 번씩 합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뜩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티브이에서 흑백 무성영화 '찰리 채플린'을 가끔 방영해 주는 걸 보신 분이 있을까요?
그의 명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나의 시간은 어느새 점점 멀어져서 내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희극'이 되어 버렸고..
현재의 나는 힘든 현실에 '비극'을 느끼지만..
모두들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 힘든 이 순간도 나이를 더 먹고 멀어져서 돌이켜보면 '희극'이 될 거라는 걸 말이죠.
그렇기에 저는 오늘의 이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기 위하여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