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Oct 18. 2023

생계형 워킹맘 8년차

4. 워킹맘으로 사는 감사

 내가 여태껏 직장에 다니는 이유에 대해 생계를 위해서인지,자아실현을 위해서인지 굳이 꼽으라 한다면 확실히 생계형에 가깝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생계형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지치고 힘든 마음과 달리, 비록 생계형이지만 확실히 나는 행복하다 말 할 수 있다. 물론 크고 작은 일에 시도 때도 없이 일희일비 하지만 모두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문제 없다고 느낀다.     

 

 종종 아직 결혼하지 않은 후배들에게서 '일과, 육아 둘 다 하기 너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곤한다.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쉽진 않지. 근데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아서 좋아'이다.     

 결혼전에도 일은 열심히 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되는 학생때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하지만 퇴근을하면 뭔가 참 공허했다.남아도는 시간을 탕진하듯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쓰면서 나 자신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가졌다. 어느것 하나에 정착하지 못했고 , 이상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늘 삶의 전반에 깔려 있었다.


똑똑하게 혼자 잘 사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많이 방황하고 많이 휘둘렸으며 많이 쓰고 살았다.     

 

 그러다 서른넷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 남편,아이에게 아주 꽉 잡혀 탁구대위에 탁구공처럼 직장과 집을 '핑퐁'하며 살고 있다. 이게 너무 좋다.     

 어느것 하나 막나가고 삐뚫어 질 새 없이 근면하고 성실해야 하는 삶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법'을 깨달아 가고 있는 현재의 삶에 감사한다.     

 결혼은 단편적인 선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는 미성숙한 나를 순식간에 복합적인 세상속으로 끌어들였다. 한해에 결혼, 임신, 출산을 모두 경험했다. 사면으로 패대기 쳐지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나만 보면 웃고, 나만 찾고, 나를 너무 사랑해주는 아이를 위해 언제까지 그렇게 끌려다닐 수 만은 없다. 나는 세상을 치고 나갈 용기있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친구들은 멀어져 갔고, 내가 입는것, 신는것은 훨씬 검소해졌고, 쉬는 시간이라곤 밤에 잠드는 시간이 전부이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부피만 커지는 삶보다 뚝뚝 가지치기를 하고 제 갈 길로 가는 사는 삶은 더이상 공허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아 좋다     

 

 2022년 3월 14일     

브로콜리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에 대해선 두말하면 잔소리다. 근데 매번 브로콜리를 살 때 마다 주저하게 된다. 초록색 저 뽀글머리들을 깨끗하게 세척해서 찌거나 삶거나 하는 등의 손질들이 번거롭게 느껴져서다. 그리고 사실 그닥 맛있는지도 모르겠다.그래도 몸에 너무 좋다하니 눈에 보이면 매번 망설이다가 결국 사게된다.     

오늘은 저걸 꺼내 아침을 했다. 난 섬세하고 깔끔떠는 엄마는 아니기에 우선 농약제거제를 초록색 뽀끌머리에 촥촥 뿌려 찬물에 담가둔다. 그사이 냄비에 물을 끓이고, 흐르는 물에 두어번 행군다음 끓는물에 살짝 데쳐낸다.     

끓는 과정에서 비타민c와 엽산이 파괴될 수 있다지만, 그래서 살짝 쪄 먹는걸 권유하지만 난 편한걸 선택한다.     

이젠 브로콜리를 맛있게 먹기위해 연두, 들기름, 들깨로 무친다.     

나물반찬은 불가능하다 느꼈던 내게, 연두는 신세계였다. 연두는 그 어려운걸 가능하게 했다. 그것도 맛있게.     

그사이 에어프라이기에 넣어둔 미니 돈까스가 맛있게 익혀졌다.     

아이는 냉동 돈까스를 제일 좋아하겠지만 냉동 돈까스 사이에서 브로콜리는 엄마가 오늘도 널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기록이다.     

잘 먹어줄까? 안먹을까? 고민되는 , 저 조그만한 칸에 담긴 브로콜리가 사실은 오늘의 메인이란걸, 사랑이란걸 아이는 알까?!          

오늘은 늦은 출근이라 아이 팔다리를 주무르고 손바닥 발바닥 뽀뽀하며 깨워 아침식하 하는걸 지켜볼 수 있어 좋다.     

잠에서 깨자마자 식사를 맛있게 하는 따님. 볼록나온 뱃속에 사랑이 한득이다.     

냉동돈까스야! 브로콜리야!     

우리아이 건강하고 활기차게 아침을 활짝 열어주렴!     

사랑한다. 우리딸 오늘도 화이팅!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엄마가 늘 너를 응원하고 있다고 내 사랑을 보여주고 출근 한다.     

 

 직장에서든, 친구 모임에서든 어디든 ,어느날은 남과 나를 비교하며 알 수 없는 열등감에 휩싸이고, 때론 많은 일과에 파묻혀 죽어서 가는 곳이 무덤인지, 숨쉬고 살아있는 이곳이 무덤인지를 의심하기도 한다. 매일이 긍정이고 매일을 희망할 수 없는 일상속에서도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렇게 밥을 짓고 우리남편, 우리딸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화이팅을 한다. 울다가도 웃고 ,절망하다가도 희망하고, 내앞의 생을 불행 아닌 행복으로 채우기위해 밥을 짓는다. 혼자라면 절대 불가능 했을 일이다. 불가능 했을 마음이다.     

 

 5분만 5분만 더 뒤척이다가 간당간당하게 일어나 헐레벌떡 급하게 택시타고 출근하던 아가씨때보다, 적게 자고 적게 쓰고 많이 움직이는데 삶이 뭐 이렇게 행복한지 ! 생활 곳곳 매 순간 나의 노동이 닿는 모든 곳에 행복이 있다. 이런것들이 모여 나는 삶을 치고 나갈 용기를 얻는다.     


  워킹에 관한 일은 술술 써졌던것에 반해 맘에 관한일은 술술 써지지 않았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서럽고 힘든 기억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기억들을 소환해 절절하게 글을 써보려 했다. 기억은 명확한데 그때의 기분이 기억나지 않았다.꼭 슬프지 않은 연기자가 인공눈물을 떨어뜨려 눈물연기를 하는 것처럼 나도 키보드 위로 인공눈물을 똑똑 떨어뜨려 보았다.     

 

 한참을 쓰고 한참을 지우며 공백으로 커서만 깜빡이는 모니터를 본게 며칠째인지...... 나는 힘들지 않았다. 불행하지도 않았다. 물론 세입자 구하느라, 대출이자 갚느라, 시간 쪼개가며 임신준비하느라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하고 ,아프고, 힘들었던 건 맞다. 하지만 아침이면 밥을 짓고, 출근하고, 저녁짓고 숙제 봐 주는 일상은 변함이 없다. 고민들이 물론 곳곳에 흠집은 낼 수 있지만 단순하고 탄탄한 소중한 일상을 망가뜨릴 순 없다.     

 

 일상은 흘러가고, 문제들은 어떤 결론에 이르렀으며, 그간에 나는 또 많은 걸 보고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러다보면 아이는 또 훌쩍 자라있고... ...     

 워킹맘으로서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미안함에, 이름 부르는 것 도 아까운 소중한 아이를 안고 이유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폐부를 깊이 찌르는게 슬픔만은 아니다. 잘 견뎌낸, 잘 살아낸 감동. 안도 . 감사 ... ...한낱 먼지처럼 삶을 겉돌던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한 사람의 아내가 되어 생애 곳곳에 놓인 경이로움을 맞이하다니... ...산다는게 참 호사스럽다.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워 자꾸만 이들을 위해 더 잘 살아 주고싶어진다.     

 며칠 전 딸이 장염에 걸렸었다. 먹성 좋은 딸이 먹는걸 주저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자다말고 여태 먹은 걸 다 토했다. 진료를 보고 약을 먹고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먹는게 신통치 않았다.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빈도가 잦아졌다.     

 통통한 딸이 일주일새 부쩍 눈에띄게 헬슥해졌다. 딸을 데리고 병원에 다시갔다. 진단은 장염뒤에 올 수 있는 변비였다. 배에 가스가 많이 차 잦은 복통에 시달렸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딸은 생애최초 관장을 했다. 약을 넣고 5분을 참기가 무척 힘든데 끝끝내 잘 버티고 대포알 같은 변을 봤다.

 긴 겨울을 뚫고 꽃망을 틔운 봄꽃처럼, 아이의 속에 그제야 봄볕이 들었다.          

 일하고 살림하면서 피곤한게 하루이틀일도 아니고 괜찮다. 대출금이야 살다보면 다 갚겠지. 둘째야 뭐 팔자에 있으면 어떻게든 생기겠지.     

 우리식구 잘먹고 잘 배출하고 잘자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는 장을 시원하게 비워내고 속이 허한지 집에 오자마자 밥을 찿았다. 키위 갈아서 쥬스 한잔 먹이고 장에 좋은 양배추 채 듬뿍넣어 갈비살이랑 함께 구워줬더니 먹성좋게 밥한공기를 금새 뚝딱했다.     

 신바람이 났다. 창밖의 세상은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기만 한데 아이가 변비에서 탈출한 우리집은 신바람이 일었다.     

 

 다음날 일하다가 함께 수술하는 의사로부터 안좋은 소리를 들었다.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리다가 속이 편한 딸을 떠올리며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 선배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면 한소리 들을 수도 있는게 당연한거라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잘 해야지 하며 넘겼다.     

 이제 그 일에 대해서는 더이상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더 잘 알고 더 잘 하기위해 노력할 것이다. 가족은 나에게 이런 힘을 준다. 비록 내가 생계형 워킹맘일지라도 쪼그라지거나 찌그러지지 않고 다시금 쫙 펴고 내 앞의 생을 치고 나갈 용기를 준다.     

 

 충분히 감당 할 수 있고문제 없다사는게 참 행복하다.               

이전 09화 사랑, 건강, 가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