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Oct 16. 2023

사랑, 건강, 가족

3. 사랑, 건강, 가족

사랑, 건강, 가족.     

 <사랑하는 마음과 건강한 몸, 그리고 가족이 있으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의 가훈이다.          

 

 백세시대인데 저축을 거의 안한다. 더 솔직하자면 못한다. 둘이 벌어 하나 가르치며 사는데 저축을 못한다. 사치도 안한다.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가성비를 따져 묻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신혼 초에는 야무지게 몇 개의 통장을 만들었었는데 집 사느라 헐고 대출이자도 갚고 쓸데 쓰고 그러다보니 남은 게 직장에서 하는 공제저축보험 하나가 전부가 됐다.     

 얼마 넣지 않지만, '복리라 괜찮겠지' 그러려니 하고 있다. 재산은 있는데 빚도 있다. '잘되겠지' 하고 있다. '어떻게든 잘 살겠지' 하고 있다.     

 

 매달 얼마를 벌고 어디에 얼마를 지출하고 얼마가 남고 모자란지에 대한 계산은 안한다. 과소비를 하는것도 아니고 어차피 매달 내야 할 돈에 지출을 하는 게 대부분인데 세세한 계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이다.     


  어려서부터 수학이 불편한 나의 비겁한 변명같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니터가 뚫어져라 가계부 엑셀을 보고 출구없는 궁리를 하느니, 이렇게라도 쓰고 사는 삶에 감사의 마음을 갖는게 훨씬 더 정신건강에 좋다는게 나의 견해이다.     

 딸이 2학년이 되면서 전에 없던 물건 가격을 묻는 빈도가 잦아졌다. 마트에 가서도 자꾸 그만사라 잔소리를 하고 우리집에 돈이 얼마가 있냐고 물어보곤 한다. 처음엔      

'우리 딸이 경제관념이 생겼구나!‘

싶었는데 반복해서 듣다보니

'딸이 지나치게 생계에 대해 염려를 하는구나.'싶다.     

 남편과 나는 돈 때문에 큰 소리 한번 내 본 적 없다. 급히 돈을 마련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서로가 돈 때문에 상처주고 상처 받는 일이 없도록 오고 가는 말 한마디를 조심했었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데, 보이지 않는 내 등에 

'돈걱정' '노후걱정’

이라고 누군가 써 붙여 놓기라도 한걸까?!     

 앞에서는 웃으며 고기를 구워 가족들 접시에 담아주고 돌아서서 나도 모르게 생활비를 걱정했나?! 또 다른 고기 한 팩을 뜯으며 신이 난 얼굴 표정과 다르게 등 뒤로 잠재의식 속에나 존재하던 걱정들이 나도 모르게 세어 나갔나?!     

 

 잠재의식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백세시대라지만, 백세인생을 자신하는 사람이 현 시대에 몇이나 되겠는가? 나역시 노후에 대한 고만고만한 걱정이 있는 보통의 사람 중 하나일 뿐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더욱이 긴 인생을 위해 입을 것, 먹을 것 꾹꾹 참아가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하며 살자고 한 번도 다짐한 적 없다.     

 우리딸은 도대체 어떤 세상을 보았기에 물건의 가격을 물어보고, 집에 돈이 없을까 봐 걱정을 하는 걸까?! 손에 쥐어지는 삼시세끼 밥수저가 전부였던 아이였는데 금수저가 갖고싶은 것일까? 본인이 가진 수저가 흙수저임을 의심하게 된 걸까? 돈에 대한 아이의 조바심나는 질문들에 나는 쉽게 웃어 넘길 수 없었다.     

 

 내가 아이에게 자주하는 말들을 떠 올려 본다. 

'지구가 아프니까 물을 아껴써라, 지구가 아프니까 전기를 아껴써라.' 

라고 수백번 말 했지만 그 수백번 중에 

'돈 아까우니까’

라는 말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음식을 과하게 주문하는 순간에 

'배부르니까'라 했지 

'돈 아까우니까’

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15개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던 8년동안 

'엄마 돈 벌어야해.'가 아니라 '아픈 사람이 많아서 엄마가 꼭 가봐야 해.'라고 말했다.     

 아무리 생계형 직장인이라지만 돈 때문에 초라해지는 일이 없도록 한마디 한마디를 귀하게 골라 담아 키웠는데 어떻게 딸은 소비를 부정하는 형태로 부를 알게 된 걸까?! 집 현관문을 나서면, 시작되는 빈부격차를 경험한 것일까? 우리집에는 없는데 친구 집에는 있는 무언가를 보게 된 걸까?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걸까?     

 

 며칠전에는 할아버지가 부자냐고 묻더니 최근 아이는 하루에 내가 얼마를 버는지 궁금해했다. 많은 액수의 돈이 나오길 바라는 아이의 간절함을 보았다.     

 천문학적인 숫자를 부를까 하다 있는 그대로의 액수를 얘기해줬다. 만원 이상의 돈에 대해 아직 감이 없는지, 아이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축은 많이 못하지만 너하나 가르치고 먹이고 입히기엔 족한돈이야.'라고 말할까하다, 

“엄청 큰 돈이야.” 라고 말해주었다.     

 친구들끼리 모여 '우리엄마는 얼마를 벌어' '너네 아빠는 얼마를 벌어?' 이런 얘기를 나누고 '한달에 저축은 얼마를 해? '더 나아가 '주식은 어느정도 하고 있어? ' '코스피야? S&P야?' 차마 이런 말을 입에 올리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엄청 큰 돈이야.” 에 이어 어떤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은데,     

 돈에 대해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머릿속으로 막 떠올려 보았지만 어떤 지혜로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돈 걱정은 안해도 돼. 우리집은 이미 부자거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언제 어디서, 무얼하든 사랑하는 마음과, 건강, 또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가족이 있으면, 너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거야."     

 

 돈에 관한 얘기는 접고, 다시 한번 우리집 가훈에 대해 얘기했다. 경제 관념이 부족한 내가 미래에 대해 이렇듯 긍정하는 이유이자, 무의식에 깔려있는 불안을 요즘 말로 다 플렉스 해 버리는 나의 슈퍼에고 이기도 한 가훈에 대해 말이다.     

 돈 걱정을 돈으로 채우려 하면 진짜 삶은 저만치 멀어져 가고 허울 뿐인 몸으로 쳇바퀴 같은 하루를 살아 갈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돈 걱정을 꿈으로 채우며 진짜 나로 살기를 선택한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니, 아직 어린 딸이 좀 더 자라고 좀 더 많은 걸 보고 이해 할 때 쯤 아이의 머리를 깨우고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게 '돈'이 아닌 '꿈'이길 바래본다.     

 

 오늘도 이렇게 한 줄을 남기며 꿈에 저축할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건강한 몸으로 꿈을 쫓아 갔더니 돈이 따라오는 백세시대 기대해본다.           

이전 08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