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먹먹하게 만드는 손님들
손님과의 작별도 힘들다.
가게를 몇 년 운영하다 보니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노부부들이 하루에 한 끼 정도 식사하러 자주 오시는 걸 볼 수 있었다.
몇 군데 식당을 정해두고 하루 한 끼를 밖에서 해결하시는 거다.
천안에서 가게를 운영할 때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오시는 노부부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신지 약간 다리를 절룩이면서 걸어오셨고 할머니가 부축해서 오시거나 할머니가 외출하신 날은 혼자서 오시기도 하셨다. 두 어르신이 항상 맛있게 드셔하시고 자주 뵙다 보니 정이들어 오시면 반갑게 인사드리곤 하였는데 할머니는 날 보면서 젊은 사람이 어쩜 이리 살갑냐고 예뻐해 주셨다.
그렇게 뵌 지가 일 년이 넘었는데 어느 순간 안 오시길래 궁금해하던 찰나 할머니가 다른 가족분들과 단체로 오셨고 그 따님들 머리엔 상주들이 하는 머리핀이 꽂아져 있었다.
그렇게 자주 뵈었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음이 먹먹해졌고 그저 할머니의 손을 꼭 한번 잡아드리는 것밖에 해드릴 수 없었다.
광주 가게에서도 가끔 들리시는 어르신이 '나 안 오면 죽은 줄 알아'라고 하셨는데 정말 몇 달 후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평안하시길 기도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후로는 단골 어르신들이 갑자기 안 오시면 괜스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그저 오래오래 찾아와 주시기를 바랐다.
비단 어르신들과의 작별만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천안에서도 광주에서도 장사를 하면서 손님들과 자주 보고 인사 나누며 가까워지는 경험들을 통해 손님과도 이렇게 지낼 수 있구나 많이 느꼈다. 특히나 경기 광주의 가게는 작은 동네라 그런지 자주 오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나의 친정엄마같이 바쁜 자식들을 대신해 어린 손주를 보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이 손주를 데리고 밥을 먹이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엄마를 보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도움 될 건 없을까 기웃거렸고 나와 같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가 딸이랑 자주 밥 먹으러 올 때면 나랑 우리 아이들 보는 것 같아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였다.
유모차에서 방글방글 웃어주던 아기가 어느새 걸음마를 하며 밥 먹으러 왔을 땐 아기가 커가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는 것 같아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하였다.
그렇게 여러 단골손님들과 정을 많이 쌓아간 지 1년이 다되어 갈 때쯤 아시는 분의 가게 하나를 소개받게 되었다. 당분간은 옮길 생각이 없던 우리는 가게를 한 번 보긴 하였지만 썩 끌리지 않아 안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옮길 경우 또 많은 빚을 지고 옮겨야 해서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광주의 가게는 자리를 잡고 매출이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었어서 굳이 무리를 해가며 위험을 감수하고 갈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가게를 인수하라고 권유받았고 남편과 다시 상의하였을 때 여기 광주는 작은 동네라 성장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반면 그곳으로 옮겨 가게를 더 키우면 지금보다 더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세워졌다. 그래서 옮기기로 결정하고 우리 가게도 금방 인수할 사람을 찾았다.
몇 주밖에 시간이 안 남았고 단골손님들에게 우리가 영업을 그만하게 되었다고 말하지 못하였다.
한 번이라도 가게를 방문하여 새로운 사장님 음식을 맛보실 기회를 드리자는 이유가 컸기 때문이었는데 손님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것에 아쉬움이 크기도 하다.
그렇게 손님들과는 또 한 번 작별을 하였고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