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 놀랐던 일 중 하나는 같은 반 아이 중 어떤 친구가 스스로 글을 깨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아직 6살인 우리 아이와 동갑내기인 그 아이는 벽에 붙여둔 ㄱ, ㄴ을 몇 번 보더니 금세 익히고 한자도 같은 방식으로 깨우쳤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ㄱ'도 모르는데 그 아이는 벌써 동네에 다니다 보이는 간판도 읽을 줄 안다는 걸 알고 우리 아이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겁나기도 했었다.
7살이 되어야 어린이집에서 줄 긋기 연습부터 ㄱ, ㄴ과 1부터 10까지 숫자 쓰기 연습, 자기 이름 쓰기 정도를 가르친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어린이집에서도 안 시키는 글자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같은 반에 그런 아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불안감이 든 것이었다.
거기에 요새 아이들은 학교 들어가기 전 글자는 다 떼고 들어가서 선생님들도 당연히 아이들이 알 거라는 전제하에 글공부를 시키고 글자를 떼지 못하고 들어가면 수업에 따라가기 힘들더라는 카더라 소식까지 들리자 지금이라도 아이를 앉혀놓고 글공부를 시켜야 하나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곳곳에서 받았던 한글 공부 벽보도 새로 붙이고 거기에 알파벳 벽보와 한자까지 한쪽 벽을 빼곡히도 만들었던 나였다.
언제가 한 번은 내가 팔로우하던 책 육아전문 인플루언서 엄마가 글자는 통문자로 익혀야 한다며 공구를 하자 그 말에 솔깃하여 몇 달 치 학습지를 한꺼번에 사들인 적도 있다. 호기롭게 학습지를 펼치며 아이와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아이는 어려워하며 하기 싫어 짜증을 부렸고 나는 나대로 아이를 다그치다 결국 중간에 포기하였다.
내 아이가 언어적으로 뛰어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언어 천재적인 그 친구만큼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뒤처지게 두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아이를 몰아세웠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태평할 뿐이었고 결국 집에서 따로 공부시키는 것을 그만둔 채 어린이집에서 글공부를 시킬 때가 돼서야 집에서도 딱 그만큼만 복습을 시켰었다.
다행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즈음엔 띄엄띄엄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글자들도 몇 개 생겼었다.
우려했던 거와 달리 같은 반 친구들도 우리 아이 수준 정도인 것 같았고 카더라 통신과는 달리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수준을 고려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아 안도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니 어느 곳에서나 언어적으로 뛰어난 아이들이 한두 명씩은 있었고 그 아이들을 빼고는 다른 아이들 역시 우리 아이같이 때가 돼야 글자를 떼었다는 걸 알고는 괜히 내가 조급한 마음을 가졌었구나 싶었다.
어제는 친한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 동생의 6살 난 딸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기 딸 주변에 따로 공부를 시키지 않았는데도 글자를 뗀 친구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자기가 너무 태평하게 있었나 걱정이 된다면서 아이 글자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말을 들었다.
동생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변에 언어적으로 뛰어난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고 아이들은 때가 되면 다 글자를 떼니 걱정하지 말라고 진심을 담아 조언해 주었다.
글자 공부를 지금부터라도 시켜야 하나, 자기가 너무 아이한테 너무 관심을 안 가져준 건가 고민하던 동생은 그래도 나의 말을 듣고 조금은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엄마가 되면 자꾸만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비교하게 된다. 혹시라도 내 아이가 뒤처질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나처럼 아이를 다그치기도 하고 조급함에 불안에 떨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가 있을 뿐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시작은 느릴 수 있지만 나중에 더 빨리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초조해지고 아이가 빨리 다른 아이들 수준처럼 되기를 바랄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도 무심결에 남과 비교하는 말을 자주 하셨다.
누구네 집 아이는 어쩐다더라, 너도 좀 열심히 해봐라 등등.
그 비교하는 말을 들으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보다 짜증이 너무 났다. 왜 다른 사람이랑 그렇게 비교하는지 그 아이와 나는 수준이 다른 건데 뭘 어쩌라는 건지 화가 나기도 했다.
부모가 되어보니 어릴 적 엄마가 하셨던 말들이 이해가 되긴 했지만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어 나는 되도록 아이들 앞에서 남과 비교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 무지 애쓰고 있다. 아이들한테도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자주 말 하는데 가끔 아이가 "엄마가 남과 비교하지 말라면서 왜 비교해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애는 쓰고 있지만 나 역시 가끔 아이 앞에서 누군가와 비교하는 말을 꺼냈었나 보다 싶어 반성하게 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조기교육'에 엄청 열정적이다. 그 시작은 당연 글자 떼기부터 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준비가 되어야 받아들이고 따라갈 수 있다.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천재적인 몇 명의 아이들만 보고 내 아이와 비교하며 다그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