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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칠마루 Nov 14. 2023

나이를 거꾸로 드신 분들

병실 빌런 1, 2

내가 있던 병실은 공동간병인이 환자 4명을 돌보는 곳이었다. 비용은 1일에 5만 원으로 개인 전담 간병인을 쓰는 15만 원에 비해 훨씬 싼 편이었고 또한 환자 상태 역시 개인 전담 간병인을 쓸 정도로 중증이 아닌 비교적 가벼운 상태의 환자만 입실할 수 있었다. 10월 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입원하면서 겪은 병실 빌런 1, 2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내 기준으로 보자면 참, 남에게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1. 욕하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빌런     

13일 금요일에 우리 공동 간병인 병실로 들어온 분으로 살짝 치매가 있는 듯했다(치매 진단 여부를 알 수 없으나 가끔씩 성격이 뒤바뀜). 요양원에서 엉덩이 쪽에 생긴 심한 욕창으로 인해 입원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분 고집이 무척 센 편이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잘 걷지도 못하며 몸에는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고 또한 고름을 빨아들이는 석션도 부착한 상태였다. 그런데 굳이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침대 아래로 내려오려는 시도를 했다. 그때마다 간병사님은 그분이 입원할 때 간호사 선생님에게 들은 대로 침대에서 소변기에 해결하시라는 말을 빌런에게 수없이 얘기했다. 


하지만 그 빌런은 절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넌 말해라, 난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라는 태도였다. 그걸 지켜보는 나를 포함한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 여러 차례나 침대에서 내려오지 마시라고 말했으나 의지의 한국인인지 꿋꿋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절뚝거리며(아마 10초에 1m 정도의 속도) 화장실로 향했다. 그 와중에 침대 시트며 환자복, 그리고 바닥에 흥건하게 오줌이 흐르는 건 보너스였다. 그 행동이 하루에도 서너 차례 이상 반복되니 이젠 간병사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빌런의 침대 탈출을 포기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간호사가 보호자에게 이 상황을 하소연하고 어이가 없었던 보호자(아내, 딸)가 환자에게 반 협박성으로 전화를 하자 겨우 진정이 되었다. 보호자와 통화를 하면서도 80대 빌런은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단지 빨리 보호자와 통화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에 “어,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그래, 누가 당신한테 이런 걸 말했어? 확 때려줄까 보다”라는 말하는 걸 보고 병실의 모든 환자들이 소리 없이 웃었다.      


그 빌런은 욕창이 심한 상태라 2시간에 한 번씩 누워있는 자세를 바꿔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과 간병사님이 2시간에 한 번씩 찾아와 체위를 바꿨지만 그 빌런은 그들이 지나가자마자 원하는 자세로 다시 고쳐 누웠다. “난 욕창 부위가 아프지 않아요(가끔 네, 고마워요라고 높임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건 하루 중 1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빌런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치매인가 짐작하기도 했지만 그건 잘 모르겠다)."      

하루에 1번씩 의료진이 욕창으로 손상된 피부에 연고를 바르고 보호패드를 붙였건만 빌런은 저녁 11시가 넘으면 소독한 상처에 붙은 패드를 스스로 다 걷어냈다. 그리고 옆 사람이 다 들리도록 벅벅 긁어댔다. 열심히 상처를 소독하고 패드를 붙이면 뭐 하나, 말짱 도루묵이었다.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이 그걸 보고 그러지 마시라 얘기하면 그때부터 빌런의 막장 행동이 나오기 시작했다. ”싫어, 나 너랑 얘기 안 해, 누가 나한테 이거(소독) 하라고 했냐? 당장 데려와, 씨 0, 개 0 “ 각종 욕이 흘러나왔다. 옆에서 같은 병실의 환자들과 간병사님이 말려도 빌런의 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방안의 모두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이없이 욕을 먹은 간호사가 견디다 못해 빠지고 다른 간호사가 대신 왔어도 마찬가지였다. 20대 후반의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 얼굴이 새빨개져 돌아갔다. 그리고 5분쯤 흘러, 그 빌런의 천적인 보호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아내 : 왜 간호사에게 욕을 하고 그래? 왜 그래?

빌런 : 누가 당신한테 이런 거 얘기하는 거야? 누구야? 확, 씨 0

아내 : 아니, 전에 있던 병원에서도 그러더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병원에 갔으면 얌전히 치료 잘 받아야지

빌런 : 나, 내일 퇴원할 거야, 여기 못 있겠다

아내 : 누구 맘대로 퇴원한다고 그래, 병원에서 선생님들 말씀 잘 들어야지

빌런 : 내가 퇴원한다면 퇴원하는 거지, 누구 허락이 필요해?

(중략)     


그나마 보호자와 통화를 하고 나면 빌런의 상태는 조금 수그러들었다. 기세가 한 풀 꺾인 정도였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싶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빌런 역할에 충실했다. 소변기를 잘 쓰면서도 한 번씩은 꼭 화장실로 간다며 고집을 피워 침대시트와 환자복, 병실 바닥에 오줌이 흘러내렸고 그때마다 간병사님과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이 고생해야 했다.      


병실엔 침대별로 개인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평소 TV를 보지 않던 빌런은 갑자기 호출벨을 눌러 간호사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TV 좀 틀어줘", 간병사님이 진작에 사용법을 설명했어도 듣지 않더니 바쁜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서 한다는 말이 고작 이거였다. TV를 켠 이후에는 여러 차례 볼륨 조절을 했는데 2m 옆에 있는 내게도 큰 소리라고 느껴질 정도의 소음이었다. 처음 20여분 정도는 "그래, 80대 노인분이니까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큰 소리를 참아봤다. 하지만 빌런은 그렇게 큰 소리로 TV를 틀어놓고는 곤히 낮잠을 자고 있었다. 보다 못한 간병사님이 TV를 끄거나 소리를 줄여달라고 해도 수없이 얘기를 해도 마치 자기 혼자 이 병실을 쓰는 것처럼 수시로 볼륨을 높여댔다. 


밤에는 어두워서 잠을 못 자겠다며 병실 불을 훤히 켜놓으려고 했다. 간신히 무마하고 잠이 든 지 몇 시간이 지난 새벽 2~3시 정도면 소독한 부위의 패드를 모두 떼어내어 어쩔 수 없이 불을 훤히 켠 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료진도, 같은 병실을 쓰는 다른 환자들도 빌런 때문에 모두 지쳐갔다. 자신만 소중하고 다른 이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보며 정이 뚝 떨어졌다. 그래도 그 빌런보다 내가 더 빨리 퇴원해서 다행이었다.    

  

2. 자신의 통화내용을 생중계하는 빌런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남자였다. 목소리도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그 빌런은 꼭 내가 쓰는 병실 바로 앞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나 2~30분 이상 스피커 모드로 통화를 했다. "그래, 내가 예민한 거다, 병원에서 쓸데없이 화내지 말자, 골절 수술한 내 다리나 먼저 챙기자"라고 생각하며 꾹 참았다. 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1주일이 지나도록 원치 않는 통화내용을 듣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오죽했으면 그 빌런의 전후사정을 일면식도 없는 내가 짐작할 정도였다.   

   

빌런이 주로 통화하는 대상은 딸, 배우자, 사위로 추정됐다. 본인 차(DPF 장착된 지 3년이 넘은 경유차, 사고로 인해 차량은 폐차 예정이며 본인은 교통사고 환자로 아픈 건 크게 없지만 합의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4주 동안 병원에 있을 예정) 사고에 대한 내용을 그 빌런과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짐작할 정도로 통화를 해대는데 나도 더는 못 참겠어서 휠체어를 타고 나가 한 마디 했다.     


나 : 어르신, 잠깐만요..

빌런 : (통화하다 놀람, 나를 쳐다본다)

나 : 왜 여기서 큰소리로 통화하세요, 다 들려요. 우리가 어르신 통화 내용 다 들을 필요 없잖아요, 저기 계단 통로 나가서 전화하세요

빌런 : (급히 전화를 끊으며) 아니, 내가 귀가 잘 안 들려서...

나 : 귀가 잘 안 들리면 이어폰 끼고 통화를 하시든가, 왜 꼭 스피커 모드로 통화하시냐고요!

빌런 : (뭐라 중얼거리더니 얼른 반대편으로 도망간다)     


꼭 나가서 한 마디 해야 본인 행동이 잘못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는 게 도리 아닐까? 그 빌런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귀가 안 좋다는 변명이 먼저였고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가버렸다. 그 뒤로 그 빌런의 통화 생중계는 하루 1번 꼴로 줄어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참을만했다.     


그들에게 뭔가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성인이라면,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걸 다 알고 있다. 그런 상식 누구나 다 아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겠구나라는 상식 말이다. 그런데 나이를 지긋하게 드신 2명의 빌런으로 인해 10일간의 병실 생활은 육체적인 고통에 정신적인 괴로움까지 뒤따랐다. 짜증도 나고 어이없는 웃음도 나는 10일이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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