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8. ~ 10. 18. 11일간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목발에 기대3족 보행을 하며 집에 들어오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행히 근처에 사는 친한 동생의 도움으로 아파트 주차장까지는 편하게 왔다. 입원하는 동안 생긴 짐을 백팩에 넣어 왔는데 그마저도 동생이 집 앞까지 들고 왔었다(00야, 고맙다. 나중에 형이 밥 사마!). 현관에 들어와 집까지 데려다준 동생을 보낸 후 장모님께 신발을 벗겨달라고 부탁했다. 통깁스로 둘러쌓인 발에도 수술용 신발이 덧대어져 있었기에 먼저 그걸 벗어야 했다. 그다음으로 내가 현관 신발장에 등을 기대고 양쪽 목발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중심을 뒤로 젖힌다. 그리고 멀쩡한 왼발을 30cm 정도 땅에서 들고 나면 장모님이 허리를 숙여 운동화를 벗겨 주셨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홀가분하게 집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막상 집에 오자 알게된 일, 어라, 여긴 병원이 아니라서 소변기도 없었다. 화장실에도 병원처럼 벽에 손잡이가 붙어 있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 머리를 굴렸다. 다리에 가장 아프지 않을 자세가 무엇일까? 일단 문틀을 잡는다. 세면대 옆을 살짝 잡는다. 목발을 문 앞에 둔다.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여러 차례 연습하다 보니 최대한 아픈 다리를 조심하며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지혜가 저절로 생기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하루에 최소 5000 걸음 이상을 걷고 운동을 2시간씩 하던 내가 퇴원한 이후로는 의자에 앉거나 누워있는 것 빼고는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절대 다친 발을 바닥에 딛지 말라 강조했기 때문에 위 2가지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본자세 1. 안방 침대에 누워 있기 1시간
기본자세 2. 둘째 방에 들어가 컴퓨터 작업 또는 인터넷 서핑 1시간
기본자세 3. 식탁 의자에 앉아있기(다친 발은 의자 위에 올려놓음) 1시간
위 3가지 자세를 무한 반복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퇴원 후 10일 정도는 개인 실비 보험 청구를 위해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공무상 요양 승인 신청을 위해 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일반 회사원은 회사일을 하다 다쳤을 경우 공상처리와 산재처리라는 2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 사후처리를 한다. 이왕이면 산재처리가 근로자에게 훨씬 더 좋다.
일반 회사원의 산재와 공상 처리 차이점
하지만 공무원은 같은 공상처리라는 말을 쓰지만 엄밀히 따지면 회사원과는 다르다. 이 개념을 정리하는 데만도 1시간 이상 인터넷을 뒤지고 여러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공무원의 공상 처리는 풀어쓰자면 공무상 재해(부상 또는 질병)로 인한 요양 승인 신청을 했다는 뜻이다.공무원은 회사원처럼 산재와 공상 둘 중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상 요양 승인 신청 외에는 지원받을 방법이 없다.
위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공무상 요양 승인에는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1차 심의(사실관계 확인, 현장조사, 전문조사 및 의학자문, 증빙서류 보완 후 인사혁신처로 이송)에 이어 인사혁신처의 2차 심의를 치른 후에야 공무상 요양 승인 또는 불승인 처분을 받게 된다. 그 기간은 평균 2~3개월이 걸린다. 내 경우엔 공무상 요양 승인 신청을 위해 필요한 서류는 진단서, 골절 판정을 위한 MRI나 CT, X-ray 사진이 들어있는 CD, 출퇴근 이동 경로도, 응급초진기록지, 다친 날 회사에서 작성했던 업무보고 등이다. 내게 필요한 서류를 파악하는 데 2~3일(연금공단 양식에는 필요서류라고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서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움), 진단서와 의사 소견서가 나오기까지 다친 날로부터 2주가 걸렸다(입원 후 수술하는 데 3일, 그 뒤 2주 걸려 반깁스에서 통깁스로 전환, 진단서에 통깁스한 내용을 적으려면 실제 통깁스를 적용한 날에야 발급할 수 있었음). 회사에 전화해 내가 공무원연금공단에 직접 신청하는 게 나은지 회사에서 신청하는 게 나은지 의견 조율 → 회사에서 신청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10월 31일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요양 승인 신청이 완료되었다.
내 생각엔 승인 신청이 통과될 확률이 90% 이상이다. 퇴근한 지 6분 만에 회사에서 300m 떨어진 곳에서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자전거 출퇴근을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한 것으로 인정해 줄지 여부인데 심사기관 2곳에서 워낙 깐깐하게 심사하는 편이라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승인 신청이 받아들여진 다음에는 비급여 부분의 환급을 위해 또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병가 중이라 남는 시간이 많기에 미리 시작했다.
지불한 치료비 중 건강보험공단의 급여 부분은 4~5개월 안에 자동으로 환급이 되지만 비급여 부분은 내가 직접 공무원연금공단에 신청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남는 동안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알아보고 준비하는 데 신경을 썼다. 병원을 오가는데 드는 택시비(의사 소견서, 택시 영수증, 이송비 관련 공단 양식), 목발이나 발목 보호대를 사는 데 드는 비용(영수증 등), 상급병실 사용확인서, 통원확인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진단서, 간병비(간병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 간병비 영수증 등) 내 사정에 맞는 각종 서류를 확인하고 발급하고 공단 양식에 맞게 적어놓는 것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최대한 신경 써서 서류 정리한 후 신청해야 비급여 부분의 8~90%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서류 작업은 지난주 금요일에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아내는 월~금까지 아침 7시 30분에 나가 저녁 8시 30분이 되어야 들어오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지만 오른발이 다쳐 걷지도 못하고 운전도 못해 아이를 돌보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결국 장모님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우리 집으로 오셔서 우리 가족을 돌봐주시고 있다. 장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데 말로 표현하기가 쑥스러워서 제대로 말씀을 못 드렸다. 못난 사위 덕분에 고생 많이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장모님!!
지금 내 모습은 백수는 아닌데 집에만 있는, 그렇다고 히키코모리도 아니면서 집에서 하루를 버티는 잉여인간이다. 통깁스를 빼고 다시 걸을 수 있기까지 몇 주가 걸릴지 모르지만 그때를 위해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