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임신, 그리고
10월 초 즈음이었을 것이다.
으슬으슬하고 기력 없는 몸, 열이 나는 이마 등으로 나는 올해 내가 너무 열심히 달리고 있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프로젝트로 열심히 달린 여름이 끝나자마자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같은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타이트한 타임라인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레 타오른 열정으로 내년에 책을 내겠다고 혼자 열심히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요가원을 찾아 조금씩 다시 요가도 시작을 했다.
당시 나는 10월 말로 끊어놓은 이탈리아 여행만 바라보며, "빨리 잘 매듭짓고 남편과 떠나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참 늦어진 여름휴가이기에 최대한 호사스러운 숙소들로 예약을 했고, 단순 관광이 아닌 토스카나 팜스테이가 주목적인 만큼 여러 쿠킹클래스와 와인 클래스도 알아보고 있었다.
계속 좋지 않은 컨디션 탓에 혹시 또 코로나에 걸린 것인가, 생리 전 증후군인가 하며 아이폰 생리 주기 트래커를 들여다보니 예정일보다 하루 늦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설마 임신일까 싶었다. 마침 남편과 나는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임신 준비를 하자며 그 전주에 산전검사를 받고 왔었던 참이었다. 보통 자연임신은 바로 되기 어렵고, 3개월 이상은 열심히(?) 노력을 해보라는 팁들이 많아 나 역시도 "그럼 올해 말부터 노력하고 내년 가을에 아기를 낳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원하는 계절에 아기를 낳는 것 역시 참으로 유치하고 단순한 생각인 것을 알지만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친구가 예전에 주었던 테스트기 중 하나를 주섬주섬 꺼내 소변 검사를 하다 테스트기를 물에 빠뜨렸다. 임신 여부는 알 수 없을뿐더러 "윽..." 하고 짜증나하며 뒷정리를 하고 급하게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퇴근 후 다시 한번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사람의 육감이나 직감이라는 것은 꽤 신기하다. 왜 그날 유독 그렇게 테스트기를 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 몸살, 하루이틀 늦어지는 생리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9월 내내 "나 뭔가 촉이 왔어, 삼신할머니한테 카톡 왔나 봐 봐"라고 호들갑을 떨며 임신을 내심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 그리고 바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똥촉 부리지 마"라고 핀잔을 줬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테스트기에 소변을 묻히고 기다리기 시작을 한 지 30초, 테스트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두줄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로부터 받아왔던 임신테스터기는 정말 요긴한 선물이 되었다.)
머리가 하얘졌고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를 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벅찼고, 설렜고, 떨렸고, 두려웠다. 나는 퇴근 중인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며 울면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남편은 놀라 무슨 일이냐며 나에게 물었고, 나는 남편에게 임신을 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보통 임신을 확인하면 배우자에게 알리는 서프라이즈 등도 준비를 한다는데, 나에게 그런 정신과 센스는 없었다.
남편은 잠시 멈추더니 격앙된 목소리로 진짜라고 되물으며 크게 웃었고, 얼른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을 하자마자 나를 꼭 안아주었다. 퇴근길 차 안에서 그 역시 나의 전화를 받고 눈물이 났다고 했고, 어쩌면 그 순간 나의 모든 불안과 알 수 없는 두려움 등이 순식간에 없어진 것은, 나 이상으로 한없이 좋아하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남편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인을 더 하고자 (나도 참 지겹다) 병원에 방문 전에 총 세 가지 다른 테스터기를 사서 매일매일 테스터를 추가로 해보았다. 모든 테스터기는 그 어떤 반전 없이 명확하게 붉은 두 줄을 보여주었다.
임신을 처음 알게 되고 또 시간이 꽤 지나 나는 9주 차 임산부가 되었다. 몸도, 컨디션도, 기분도 매일 달라져 적응하느라 바쁜 시간이다. 회사에서는 단축근무와 재택을 시작했고, 보건소에서는 임산부 배지를 받아 달고 다니기 시작했으며 (지하철에서는 거의 양보를 해주지 않아 그냥 택시로 출퇴근 중이다), 눈물 나는 입덧에 적응 중이다.
아이의 태명은 '순신'이로 정했다. 아마 순신이가 나에게 점지(?)되었을 무렵이었을 9월 초 어느 날, 남편은 자다가 한참 신나 하고 깔깔 웃으며 이상한 잠꼬대를 했다. "전쟁 중이야!" 라며..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웃겨 나중에 남편이 일어났을 때 그의 잠꼬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평소 어떤 꿈을 꾸는지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그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꿈에서 그는 장군이 되어 전쟁에 참전했는데,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승리를 해서 모든 사람들이 남편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고,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갔던 꿈의 해몽을 임신 사실을 알고 뒤늦게 찾아보니 "집에 좋은 소식이 들리는 꿈"이라는 해몽이었기에, 우리는 그의 꿈에 따라 이순신 장군님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용맹하고 건강한 '순신'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나중에 임신 사실을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더니, 전 직장 동료이자 현재는 친한 친구인 지인이 "언니, 진짜 대박. 나 몇 주 전에 꿈에서 언니랑 걷는데, 엄청 큰 거북이가 있어서 내가 으악 징그러! 하니 언니가 예쁘다고 커다란 거북이를 집어서 가지고 가더라고. 그래서 내가 ㅇㅇ이한테 (친구의 남편) 나라언니 태몽 아니야? 했더니, 요즘은 그런 거 이야기하는 거 조심해야 한다고 ㅇㅇ이가 말하지 말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태몽이 맞았어!!!" 라며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녀의 꿈에서 내가 커다란 거북이를 두 마리 들고 갔다 하여 혹시 쌍둥이인가 싶어 설렘반, 두려움반이었으나 순신이는 단태아로 판명이 되었다. 여하 간에 이순신-거북선-거북이-거북이태몽 등의 연결고리를 나름 그리며 혼자 신기하다고 생각 중이다.
여담이지만 원래도 좋았던 남편이지만, 임신을 하고 가정적이고 따뜻한 남편이 더 좋아졌다. 병원에 항상 함께 가주는 것도, 다리를 주물러주는 것도, 음식물 쓰레기를 매일 버려주는 것도 너무 고맙다. 또 임신 5주 차에 산후조리원을 몰래 찾아 예약을 해 놓은 남편이 너무나도 귀엽다.
삶은 역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탈리아 여행은 시원한 페널티로 없던 일이 되고, 준비 중인 자격증 시험은 심해진 입덧 탓에 괴로워하며 준비 중이며, 자격증 시험 끝나고 연말에 못 본 사람들을 몰아봐야지! 했던 계획 역시 달라졌지만, 그래도 이 감사한 서프라이즈 덕에 또 다른 계획들을 많이 하게 되고, 처음 느껴보는 경이로움과 설렘으로 삶을 또 채워나가는 중이다.
많이 부족한 우리지만, 함께 부모로 가는 여정을 차근차근 준비를 해보려고 한다. 결혼을 하면 한차례 삶의 새로운 관문이 열리고, 아이를 낳으면 또 완전 다른 차원의 관문이 열린다고 하는데... 너무나도 기대가 많이 된다. 분명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변화를 맞을 생각에 너무나도 벅차고 기쁘다. 여담이지만 임신 소식을 알리니 본인 일처럼 기뻐하는 주변 사람들 덕에, 원래도 나를 많이 아껴주셨지만 더더욱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양쪽 부모님 덕에 우리의 기쁨 역시 배가 되고 있다. 그 와중 드는 생각은, 우리가 부모가 될 준비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더 많은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고 또 그 사랑으로 주변에 보답을 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부디 막달까지 순신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 내년 6월에 잘 만날 수 있길! 그동안 엄마아빠가 잘 준비해 놓을게! (여담이지만 사실 난 아이를 낳으면 적어도 두 명 이상 낳을 생각이었는데, 입덧을 겪으니.. 엄두가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