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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Dec 08.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40장: 사회화, 재사회화

성별이분법이라는 연극 

[40장: 사회화, 재사회화]



32장에서 나는 “(둘 다 경험해보셨을테니) 남자 오르가슴과 여자 오르가슴 중에 뭐가 더 좋아요?” 라는 질문을 받았던 일을 적었었다. 물론 매우 무례하고 불쾌한 질문이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그 궁금함의 전제였던, 내가 남자의 삶과 여자의 삶을 모두 경험해봤다는 사실 자체는 맞긴하다.        

우리는 어떤 성별을 가졌는지에 따라 상이한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아동기 시절부터 머리길이와 옷차림, 말투와 태도, 취향과 놀이 등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권장되고, 그렇게 형성된 동성또래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학습과 모방이 이루어진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남자아이들 무리에서 남자아이들을 따라하고 배우면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세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성격이 거칠거나 하는 등의 ‘남자다움’ 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적 성역할 규범을 잘 습득하고 잘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남성집단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갖는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남성성이 일종의 ‘레벨’ 같은 느낌인데, 그 레벨에 따라 소위 ‘일진’ 이나 ‘찐따’ 같은 식으로 서열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규범을 잘 못 따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스르는 경우는 그 서열에서조차 배제된다.

남성인데 꾸밈을 좋아하고 치마를 입고싶어한다든지, 같은 남성에게 성적으로 끌림을 느낀다든지 하는 경우 말이다. 남성들이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서, 동성애자 남성에게 온갖 혐오와 조롱을 노골적으로 쏟아내는건, 그 대상들이 남성집단의 서열을 구성하고 있는 그 남성성이라고 하는 범주에 대한 위협이라고 간주하기 때문도 있는 것이다.         



남성들에게는 '게이같다' 라는게 가장 큰 모욕인듯 하다.


여성집단의 경우에도 성역할 규범과 권력이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가정청소년과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여학생들은 만만해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화장을 열심히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치마를 짧게 줄이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꾸밈을 잘 해내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화장이 일종의 무장으로서 기능하는 셈이다.

나같은 경우도 여성으로서의 재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고, 속옷을 포함하여 여성복으로 분류되는 옷들은 고르고 입어보는 과정들이 다 처음이라 생소하고 어려웠다. 그런 것들을 잘 못 해내면 우스워보일까봐, 바보같아 보일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한테 조언이나 도움을 받았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성으로 사회화되어온 사람과, 20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여성으로서 새출발(?)을 하는 사람과는 당연히 그 능숙도가, 여성성 ‘레벨’의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내가 남성집단과 남성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대신에 여성집단이나 여성성 수행에 관해서는 서투른 면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요한큼 배워갈 생각이다.      


나는 연극을 좋아하는 편이다. 연극을 보는 것 자체도 즐겁지만, 배우들이 원래의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대리해방감을 준다. 우리는 다 사회에서 무언가의 역할을 연기하도록 강요받지만 연극이라는 무대에서는 거기에서 벗어난 또 다른 자신이 될 수 있으니까.      

트랜지션 하기 전, 남성의 모습으로 원피스를 입었을 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연극하세요? 왜 여장하셨어요?” 라고 시비를 건 적이 있다. 물론 그건 굉장히 무례하고 혐오적인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모두 다 저마다의 연극을 하고있는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내에서는 부모 혹은 자녀로서의 역할,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의 역할, 직장에서는 직장인으로서 요구되는 역할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성별에 있어서는 우리는 태어났을 때 지정받은 성별대로, 남성 혹은 여성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성별이분법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배역에 걸맞는 옷을 입고, 걸맞는 대사와 행동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배우가 있으면 연극을 망치게 되는 것처럼, 이 성별이분법이라는 연극도 언젠가 망쳐지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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