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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Dec 07.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 39장: 트랜스젠더의 몸

같은 몸, 다른 해석 

[39장: 트랜스젠더의 몸]



나는 어렸을때부터 남자들 무리에서 체격이 가장 왜소한 축에 속했다. 키 순서로 줄을 선다면 거의 항상 맨 앞에서 세,네번째 정도였다. 남자답고 싶어했던 그 당시에는 작은 키가 나에게는 콤플렉스였다. 그런데 여성으로 정체화하게 되자 165cm인 나의 키는 결코 작은게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큰 편이다’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이 160cm대 초반 정도 된다고 하니 맞는말이긴 했다. 성장이 멈춘 뒤로 나의 키는 계속 그대로였는데 성별에 따라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다는게 기분이 묘했다. 러버들을 만날때도 러버들은 내가 트랜스젠더인거 치고는 아담한 편이라서 좋다고 했다. 체중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데 아무래도 사회적인 기준 때문에 예전에 비해서는 체중을 밝히는게 좀 꺼려지게 되었다. 남성은 체중에 대해서 어떠해야 한다라는 기준이 없지만 여성은 45킬로가 이상적인 체중이며 60킬로만 넘어도 살찐 것으로 여겨지니까. 다이어트의 강박이 심한건 아니었지만 체중의 앞자리가 5면 다행이라 여기고 6이 될까봐 전전긍긍하였다. 만성적인 위염으로 인해 하루에 한 끼밖에 못먹는 신세가 되었는데도 오히려 ‘살찔 일 없어서 잘됐다’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 역시 트랜지션 전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나는 여성호르몬치료로 인하여 근육량이 많이 빠졌다. 트랜지션 하기 전 한창 운동할 때는 푸쉬업을 몇 백개씩 했었는데, 호르몬치료 한 지 몇 년 지나고 나서 해보려고 하니 단 한 개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호르몬 때문만이 아니라 몇 년간 여러 수술들을 하며 회복기를 가지느라 운동을 전혀 안해서 몸이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차이가 너무 심해서 충격이었다. 내가 이렇게나 약해지다니. 예전에 ‘여자들은 푸쉬업을 무릎대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는 남자와 여자의 근력 차이가 심하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남의 일로 여겼는데 이제는 내가 그 입장이 된 것이다. 팔뚝에 아무리 힘을 줘봐도 예전과 달리 그저 말캉거리기만 했다.

내 몸이 약해진 것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든다.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기대되는 여리여리한 몸이 되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건강에 대한 염려와 ‘원래의 나’를 잃어간다는 상실감이 있었다. 그래도 한 때는 헬스도 다녔고 암벽등반도 했던 몸이니 말이다.     


여성은 꼭 약해야 할까? 다들 성차별적인 편견이라고 할 것이다. 세상엔 웬만한 남자들보다도 강인하고 신체능력이 뛰어난 여성들도 많다. 그리고 많은 여성이 그런 여성들을 동경한다. 나 역시 강인한 여성들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강인함을 추구하지 못하고 항상 연약함을 증명해야 된다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트랜스여성에 대해 항상 따라오는 “그래도 어쨌든 신체적으로는 남자인거 아니냐” 라는 말 때문이다. 트랜스여성을 여성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어쨌든 신체적으로는 남자이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이랑 같은 운동종목에서 뛰는건 불공평한거 아니냐는게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큰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생물학적 이분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항상 우위에 있는건 아니지 않나. 남성집단 안에서도 다양한 신체가 있으며 근력의 차이도 제각각이고, 여성집단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중에서도 키가 180cm이 넘거나 웬만한 남자들보다 근력이나 운동신경이 좋은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다’ 라고 학교에서 배워왔고, ‘연약한’ 여자가 밤길에 혼자 돌아다니다가 치한한테 붙잡히면 강인하고 정의로운 남자 주인공이 나타나 멋지게 구해주는 드라마 장면들을 보고 자랐다.      

그렇게 주입된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다’는 인식은 가부장제에서 여성을 통제하고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것에 복무해왔다. 여자로 하여금 자신의 힘을 기르거나 발견하지 못하게 하고,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체적 성별에 따른 고유한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차이가 상당 부분 과장되고 왜곡되어 있다는건 확실하다.        


내 경험을 하나 예로 들어 보겠다. 나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통해 한 트랜스남성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나는 호르몬치료를 시작한 지 몇 달 안됐을때고, 그 분은 아예 호르몬치료를 하기도 전이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군인이 되고싶다고 했던 그 분은, 자신의 남성성을 어필하고 싶으셨는지 힘자랑을 하며 나보고 팔씨름을 해보자고 했다. 결과는 0.5초만에 내 패배로 끝났고 우리는 서로 만족(?)했다. 생물학적 이분법의 기준으로 치자면 호르몬의 영향도 받기 전이었으니 지정성별 남성인 내가 지정성별 여성인 그분보다 강해야 하지않나. 이렇듯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할 수 없는데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가 없다. 그러니 비수술 트랜스여성은 일반 여자보다 센거 아니냐 이런 소리 좀 안했으면 좋겠다. 애초에 수술/비수술로 트랜스젠더로 호명하는 것부터가 모욕적이기도 하다. 시스젠더들에게는 자지남자,보지여자 이렇게 부르지 않으니까. 왜 트랜스젠더만 성기로 호명되어야 하는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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