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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르마이 Sep 09. 2023

< 프롤로그 > 아빠의 무관심

쌍둥이는 어떻게 ㅇㅇ대에 갔을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나는 자신을 위해 변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이 여러분에게 보내준 선물인 나를 처벌함으로써 여러분이 신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여러분을 위해서 변명하려는 것입니다.
_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 프롤로그 > 아빠의 무관심


개입주의와 관련해서 직업 세계에서 널리 퍼져가고 있는 기만이 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가.'보다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라는 말로 상대방을 납득시키기가 훨씬 더 쉽다.  _안티프래질(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2021년 대학 입시에서 쌍둥이가 ㅇㅇ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첫째인 건(健)은 0000학과, 1분 40초 차 동생인 수(秀)는 0000학부에 입학했습니다(쌍둥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축하를 받고 두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동시에 잘 될 수 있느냐고 비결을 물을 땐 이 말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무관심


축하받을 당시에 저는 지방에서 근무 중이었습니다. 회사 업무에 지쳐서 번아웃 상태였습니다. 아이들의 동시 합격 소식에 기뻐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그걸 어떻게 몇 마디 말로 다 할 수 있겠어요!’라는 못다 한 말들이 남았습니다.


요즘도 가끔 축하 인사를 받습니다. 이제 대학교 2학년인 쌍둥이 소식을 최근에 들었다며 건네오는 인사입니다. 회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제가 먼저 쌍둥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일부러 물어 올 때만 쑥스러워하며 알려주곤 합니다.


저는 중년의 직장인입니다. 사회성과 표현력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의 특별한 성취에 대해 마음먹고 표현하려 해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감을 잡는데도 미숙합니다.


그저 남모르는 즐거움으로, 내가 먼저 자랑하면, 이런 즐거움이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하며 조용히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ㅣ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


쌍둥이의 학업적 성취에는 전업주부인 아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저는 쌍둥이 교육에 있어서는 배경처럼 뒤로 물러나 있던 시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직장 위주로 생활했고, 한동안은 일 중독자처럼 살았습니다. 쌍둥이 교육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드러낼 만한 게 별로 없습니다.


쌍둥이가 좋은 결과를 낸 후 돌아보니, 엄마가 쌍둥이 교육 전담하도록 한 것은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선택이라기보다는 저는 직장 일에 전력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쌍둥이 교육에 있어서, 저의 역할은 전체적으로 보면 '아빠의 무관심'이라는 표현은 맞습니다. 그러나 쌍둥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였던, 유아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역할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쌍둥이는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고 지나왔을 아빠의 노력과 역할에 대해.


 이 시대의 아빠와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아빠의 역할은 '무관심'이라는 단어로 대신하는 시대입니다. 아빠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해도 많습니다. 그런 아빠들을 대신해서 변명하고 싶습니다.


이 시대에 자녀 양육이나 교육에 대해 제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아빠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과도한 입시 경쟁에 내몰려, 고통받는 아이들에게도 저와 쌍둥이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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