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며 번역하며
Better late than never, 이라고 혹자는 말했더랬다. 수영 강습 시간에 늦는 자신을 합리화하며 수영장으로 향할 때 되뇌는 말이다. 7시에 강습이 시작되지만 수영장에는 7시 20분에 들어갈 때, 또는 30분에 들어갈 때, 아니 심지어는 7시에 일어나버려서 수영장에 가서 씻고 들어가면 수영을 5분밖에는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까 침대에서 미적대는 그 순간에 떠올리는 말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야 늦는 게 낫겠지. 그렇게 향한 수영장에서는 왜 늦었느냐며 핀잔을 주는 수영 강사 선생님과, 그래도 5분 10분이라도 하겠다고 나온 그 마음이 가상하다며 웃어주는 회원들이 반겨준다. 그래도 단 5분이라도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온—수영인들은 이런 수영을 ‘씻수,’ 즉 씻고만 나온 수영이라고 칭한다—그런 날은 수영장에 가지 않은 날보다 기분이 확연히 다르다.
영국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수영이 정신 건강에 커다란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한다. 찬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한 그룹이 대조군보다 정신 건강이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이니, 수영인들이 너스레를 떨며 ‘우울은 수용성이다’ 또는 ‘스트레스는 수용성이다’라면서 수영과 정신 건강을 연결 짓는 것도 아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연구 결과를 알지 못하더라도, 수영을 단 5분 10분이라도 하고 나오면 정신이 확연히 맑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단 찬물에 몸을 담그면 너무 차가워서 소름이 돋는다. 그런 원초적인 온도에 대한 반응을 하면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물속에 들어가면서 온몸으로 차가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차가움을 손끝과 유선형으로 갈라 나갈 때의 그 쾌감, 그리고 그렇게 물살을 가르느라 점점 더워지는 몸에 그 차가움이 기분 좋게 다가오기까지. 그렇게 시원하게 수영을 하고 오면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만큼, 체력적인 단련이 되지 않는 시간일지라도, 단 5분, 10분이라도 수영장으로 향하는 시간이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수영장에서 씻으면 왠지 집에서 씻는 것보다 더욱 상쾌하다는 수영인들의 의견마저 있을 정도이다. 그것은 비단 물살이나 수압의 문제라기보다는, 찬물에 몸을 담근 다음 씻는다는 행위에서 주는 정신적인 시원함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우리가 뜨거운 국밥을 먹으면서 시원하다, 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시원함의 감각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저 ‘시원하다’는 번역이 매우 어려운 단어 중 하나이다. 저 뜨거운데 속이 풀리면서 시원하다는 정서는 아무래도 번역이 어렵기에, 어떻게 한국인들은 저 펄펄 끓는 국물을 마시면서 ‘cool’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지, 외국인들은 의아할 따름이다.)
시원한 수영, 시원한 샤워, 시원한 하루. 그렇게 시원하게 시작된 루틴은 하루를 시원하고 상쾌하게 보내게 해 준다. 그러니만큼, 살짝 늦게 일어났을 경우에, 그래서 수영에 갈 시간을 조금 놓쳤을 경우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 보는 것이다. 가자. 씻기라도 하자. 가자. 그렇게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들어간 찬물 속에서는 정신의 시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