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 포지티비티(Body Positivity)

수영하며 번역하며

by 백지민

신체 긍정. 신체를 긍정한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자 한다면 먼저 긍정의 뜻부터 새삼 정립해 볼 필요가 있다. 긍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속 정의는,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 이다. 다시 말해, 어떤 현상이 있으면, 그 현상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늘이 파란 날에는 하늘이 파랗구나, 인정하고,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구나, 인정하는 것. 이런 긍정에 대조되는 행동은, 비가 내려도, 오늘은 쨍쨍해! 라고 한다거나,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도, 하늘에 먹구름투성이네! 하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겠다. 다시 말해, 그것은 현상을 부정하는 일에 가깝다.

그러니만큼 여기에서 긍정적인 태도, 부정적인 태도가 파생된 것이렷다. 현상을 딛고 일어서고자 한다면, 먼저 현상을 긍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니 말이다. 이제부터 열심히 돈을 벌어보겠어! 하는 태도를 가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래, 난 지갑에 한 푼도 없어. 인정! 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니 긍정이라는 것은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신체에 관해서는,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신체를 현상 그대로 보기가 매우 어렵다. 볼록 튀어나온 이게 내 배란 말이야, 믿을 수 없어. 이렇게 울퉁불퉁한 옆구리가 내 옆구리란 말이야, 믿을 수 없어. 이렇게 상황을 부정하는 것의 밑바탕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아니 어쩌면 사회가 심어놓은 소위 말하는 이상적인 신체의 상태가 있다. 어떤 모델은 11자 복근이 있다는데, 어떤 배우는 출산 후에도 저렇게 말랐는데, 나는 이게 뭐람, 믿을 수 없어. 그러면서 거울 속 자신의 신체에 다른 신체를 겹쳐본다. 내 옆구리가 그 연예인처럼 매끄러웠더라면. 내 배에 그 연예인처럼 11자 복근이 있더라면. 아니 연예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스타에서 보니까 내 친구 누구는 보디 프로필을 찍어서 저렇게 됐다던데.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 이 모습은 싫어. 인정할 수 없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바로 보신 것이다. 이것은 비교할 대상이 너무나 많은 현대 사회에서 빠지기 너무나 쉬운, 신체 부정의 예시이다.

그러나 이렇게 획일화된 이상향의 신체상을 품은 사람이라도, 수영장에 가면 어떤가. 생각보다 다양한 신체 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라서 고민인 사람도, 체중이 늘어서 고민인 사람도, 사고로 팔을 잃은 사람도, 다리를 잃은 사람도, 맹장 수술을 한 사람도, 항암 치료를 받은 사람도, 하체 마비로 휠체어를 탄 사람도, 모두 모두 차별 없이, 수영장에 와서 샤워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찬물로 뛰어든다. 첨벙, 하고 뛰어든 그 속에서는 그 어떤 강박도, 신체 부정도 물속에 녹아 사라지고, 오로지 숨 쉬고 싶다는, 앞의 회원을 쫓아가고 싶다는, 팔다리가 저린다는 감각만이 남는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단순히 보기에 예쁘고 멋지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신체보다, 나는 자유형 10바퀴를 돌 수 있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신체를 가지고 싶다. 평영 몇 바퀴를 돌아도 숨이 차지 않는 폐활량이 좋은 신체를 가지고 싶다. 팔을 잃었어도 꾸준히 나와서 훈련하는 저 1번 회원님처럼, 지구력이 뛰어난 신체와 정신을 가지고 싶다. 그렇게, 수영하며, 지향하는 바가 조금씩 바뀌어가며, 그렇게 내 몸을 보는 순간. 아, 이 몸이 나를 자유형 10바퀴를 돌게 해준 몸이로구나. 물속에서도 숨 쉴 수 있게 해준 강인한 몸이로구나. 요즘 접영을 열심히 훈련했더니 어깨 근육이 조금 잡혀 있구나. 그래,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몸인가.

우리의 언어—신체 언어를 포함하여—는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내 몸은 별로야, 맵시가 없어, 검은색 옷만 입어야지, 눈에 띄지 않게, 하고 가리면 가릴수록, 나의 신체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신체 언어를 거듭할수록, 나의 사고는 신체를 부정하는 쪽으로 굳어진다. 그러나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신체를 드러낼수록, 그렇지, 이게 나야, 강인하고 아름다운 나야, 하고 신체를 긍정하는 쪽으로 사고가 변화하게 된다. 나를 드러내고, 남이 드러내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나와 남의 신체를, 모든 신체 유형을 긍정하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곳 수영장은, 보디 포지티비티, 신체 긍정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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