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수영하며 번역하며

by 백지민

"턱걸이를 하는 방법이 뭔지 알아요? 그냥 헬스장에 매일 빠지지 않고 나오는 거예요."

아직 풀업 밴드를 졸업하지 못한 나에게, 턱걸이를 50개씩 하는 회원님은 조언해 주셨다. 오늘내일 당장 턱걸이를 해야겠다 생각한다고 해서 되는 턱걸이가 아니니까, 그냥 꾸준히 빠지지 않고 나오다 보면 언젠가는 된다는 것이다. 본인도 불과 1~2년 전만 해도 턱걸이를 단 한 개도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50개씩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 말을 듣고 시나브로, 라는 순우리말이 생각났다. 이 단어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이라는 뜻으로, 마치 가랑비에 옷이 서서히 젖어가는 그런 느낌의 점진적인 진행이 느껴진다. 시나브로 사랑에 빠지고, 시나브로 뜨개질에 매혹되고, 시나브로 체력이 늘어가는 것이겠다.

뭔가를 이룩한 대가들의 어록을 보면 정말로 위대한 행위를 시나브로 행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지금 당장 위대한 행위를 해내겠다는 각오까지도 필요가 없고, 그냥 오늘의 할 일을, 지금 당장의 할 일을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피겨스케이팅의 여왕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에게 언젠가 기자가, 훈련할 때 무슨 생각을 하나요, 하고 묻자,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지, 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니까 평생토록 안 됐던 턱걸이가 지금 당장 될 리가 없다. 수영을 배우는 내내 어려웠던 플립턴이 지금 당장 돌아질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훈련을 해내는 것이다. 풀업 밴드를 끼더라도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올라가 철봉에 턱을 걸어보는 것. 플립턴을 돌다가 물을 먹더라도 그래도 오늘의 횟수를 채워 돌아보는 것. 그런 것들이 시나브로 시나브로 쌓여 결국에는 경험치가 올라가 어느 순간 턱걸이에 플립턴에 성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렷다.

언어와 운동은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영어도 운동 실력도 똑같이, 계단의 평면에 머물러 있을 때는 아무리 해도 실력이 안 느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왜 이렇게 해도 안 늘지, 이쯤 하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함마저 느껴진다. 여기가 감정적인 고비로,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때는 계단의 수직 절벽을 올라가기 직전일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견디면 비약적인 성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계단의 평면을 시나브로 시나브로 다 지났을 때 문득, 어라?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했던가? 내가 턱걸이에 성공하다니! 내가 플립턴을 돌다니? 하는 비약적인 성장의 시점이 반드시 온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매일매일을, 그저 꾸준히, 담담히,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습관의 힘을 믿으며, 시나브로 나아가는 것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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