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유지

수영하며 번역하며

by 백지민

"상급반 회원들은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간격으로 갈 수가 있어요?"

...하고, 최근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어느 선배가 물었더랬다. 선배는 아직 수영 초급반에 있는지라, 수영을 하다 보면 앞사람보다 뒤처질 수도 있고 조금 더 빨리 가서 앞사람과 부딪힐 수도 있는 노릇이라 초급반에서 수영하다 보면 영자들의 앞뒤 간격이 일정치 않은 것이 당연한데, 그러던 중 쉬면서 옆 레인의 상급반 회원들을 구경하면 여지없이 아주 똑같은 간격으로들 몇 바퀴씩이나 돌고 있어 신기하다는 것이다. 선배의 눈에는 센터 스노클—바닷속을 구경하기 위해 끼는 스노클과는 달리, 훈련용으로 호스가 얼굴 중심에 있는 스노클을 말한다. 이것을 끼면 호흡하느라 얼굴을 옆으로 돌릴 필요가 없어지니 자신의 팔동작을 끝까지 볼 수 있으므로 자세를 교정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을 끼고 줄지어 뺑뺑이를 도는 상급반 회원들이 마치 한 무리의 상어들 같았다고 한다.

"빨리만 간다고 잘하는 게 아니에요. 때에 따라 조절해서 느리게도 갈 수 있어야 진짜 잘하는 거예요."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수영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급 때는 속도가 빠르면 잘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저 사람은 벌써 25m를 다 갔네, 나와 반 바퀴는 차이가 나네. 빨리 가면 잘한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물속에서 진짜 실력이 드러나는 경우는 이렇게 교통체증이 일어날 때, 앞사람이 빨리 가지 않아 레인의 속도가 느려질 때이다. 그때는 발차기를 하지 않고 팔만 천천히 저어 나아가거나, 그것도 앞사람보다 속도가 빠르다 싶으면 스컬링을 해서 앞으로 나아가든가, 자유형 대신에 평영으로 천천히 나아가든가 하면서 앞사람과의 거리를 맞춘다. 초급반일 때는 빨라야지만 물 위에 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일 수 있겠지만, 상급반이 되고 물과 조금은 친구가 되면 속도를 내지 않고서도, 발차기를 차지 않아도, 팔을 젓지 않아도 가만히 물에 떠 있을 수가 있게 된다. 사실은 이렇게 수평뜨기—물에 엎드려 온몸을 띄우는 연습—가 선행되어야만 발차기를 해도 앞으로 더 잘 나가고, 팔 젓기와 호흡을 해도 몸이 가라앉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유선형을 잡는 법과 호흡을 몸속에 가두고 온몸을 띄우는 법을 알아야지만, 공기의 600배나 되는 물의 저항을 슬쩍슬쩍 피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이렇게 온몸에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길 수 있어야지만, 발차기를 차거나 팔을 젓지 않아도 가만히 떠 있을 수 있게 된다. 이 훈련이 되어야만 앞사람과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앞으로 가되, 멈춰서 기다릴 때는 또 멈춰서 기다릴 줄도 아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물에 뜨는 훈련이 초급반 때 발차기를 배우기 전에 선행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그래야 저항이 덜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으니—아무래도 초급반 때는 물이 무섭고 물속에 가라앉을 것만 같으니까 몸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초급반 때에는 천장까지 물을 튀기며 힘차게 발차기는 찰 수 있을지언정, 살랑살랑 물에 떠 있는 법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조금 더 수영장 물을 먹으면—혹자의 말로는 수영장 물을 다 먹으면 상급반에 올라간다고들 한다—물속에서도 몸에서 힘을 빼고 있는 법을 알게 된다. 물에서 헤쳐나가는 법을 알고 있으니만큼, 실력에서 오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더는 외국인을 만나서 덜덜덜 떠는 초급 영어회화자가 아니라, 외국인 앞에서도 자신의 영어 실력을 믿고 웃으며 안부를 묻는 상급 영어회화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수영을 하면서 이런 실력에 대한 여유가 생겨야지만 앞사람과 뒷사람과의 간격을 일정하게 조정할 수가 있게 된다. 그렇게 실력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을 지키며 수영하는 곳, 그곳이 상급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여유는 오늘부터 가져야지, 하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반짝 생기는 유의 것은 아닐 것이다. 모름지기 실력에서 오는 여유란 실력을, 내공을 쌓는 실력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조금 더 물놀이를 하며 물과 친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앞뒤 사람과 간격을 일정하게 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실력을, 내공을 쌓다 보면, 남들을 배려하고, 남들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렷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