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주 자신을 자책하고, 비난합니다. 때로는 그로 인한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이 더욱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 글을 적는 저도, PTSD를 경험한 한 사람이었기에 누구보다 이 감정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도, 또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무서워서 끌어안고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해요.
그런데, 트라우마를 공부하고, 신경계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트라우마 전문 치료를 받고, 트라우마 전문가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깨닫게 된 것은 우리는 과거의 나 자신에게 채찍질하거나, 잘못이라는 짐을 더욱 어깨에 쌓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어린아이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고, 그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는 지식과 정보를 다 동원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 현재의 내 모습으로 연약하고, 미성숙한 그 아이를 질책하는 것 같아요. 그때 따라가지 말걸, 그때 최선을 다해볼걸이라고.
이는 마치, 1Kg의 아령도 들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성인이 된 내가 1Kg도 못 든다고 질책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내 기준으로는 더 좋은 방법과 대안을 알 수 있지만, 그 당시 어린아이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했고, 누구보다도 노력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런 어린아이를 질책하지 말고, 부단히 애썼구나, 부단히 노력했구나, 너의 잘못은 아니란다라고 우리 스스로 아파하는 어린아이를 안아줄 필요가 있어요.
특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의 느끼는 정서와 현실사이에서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데, 저 사람을 미워해도 되나?, 아 그래도 아빠인데, 저 사람을 이렇게 거절해도 괜찮나 등의 생각으로요. 증오하는 마음 혹은 싫어하는 마음을 보면서 자신이 악한 사람이라고 자책하거나, 미안해하기도 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그 사람과 닮아가는 것 같아 굉장히 혐오스러움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싫어해도 괜찮아, 미워해도 괜찮아”라고. 왜냐하면, 이건 우리의 본능이기에 그래요. 길을 가다가 구덩이에 빠져서 크게 다쳤다면, 우리는 계속 그 구덩이 근처를 갈 때 조심하게 될 것이고, 피해 갈 겁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줬다면, 우리의 몸은 자동적으로 그 사람과 멀리하게 되어있습니다. 몸은 우리에게 ”너 또 사람과 가까이 가면 다칠 수 있어, 내가 널 보호해 줄게”라고 신호를 계속 보내니깐요.
더 나아가,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감정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되며, 때로는 죄악시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기쁨, 슬픔, 분노, 불안 등에 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새깁니다.
트라우마 사건 후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 이런 상황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감정을 억압하게 되면서 슬픔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우울한 감정에 대해서도, 슬픔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무능력하고, 다른 사람과 달리 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죄책을 느끼게 됩니다. 불안한 감정에 대해서도, 트라우마 상황시에 겁먹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자책하면서, 불안을 느끼는 것에 대해 혐오하고 질책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감정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현재 내 생각으로,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그 당시 어린아이가 참 부족해 보일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계속 반복되기에, 우리는 시선을 현재 내가 아닌, 그 당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 당시 아이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음을, 누구보다 부단히 애쓰고 있었음을,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런 힘들고 부단히 애쓰고 있는 어린아이를 성인이 된 내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