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는 건 네가 살아있다는 가장 큰 증거야."
생전에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지금은 그저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반칙이야.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이제는 더 이상 듣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녀에게 대꾸해본다. 실감할 수 없을 만큼의 환한 웃음을 짓는 사진 속 그녀는 이 곳에 없다.
이따금씩 그녀는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든 알 수 없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녀는 병약했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병원 속 창가 자리가 전부였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아픈 친구의 면회를 왔을 때였다. 친구는 6인실을 쓰고 있었는데, 그녀와 친구는 꽤 친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비슷한 또래에 젊은 남녀이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쉬웠나 보다. 자연스레 나도 인사받게 되었고 친구의 병환이 길어짐에 따라 나의 방문 횟수도 늘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우리 셋은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친구가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먼저 떠나게 되었지만, 나는 그의 몫까지 종종 그녀의 병문안을 하고 지냈던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그녀는 방문할 때마다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툭툭 내뱉는 말들이 범상치 않았다. 나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해석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그녀의 말은 맥락이 없고, 가끔은 마치 노스님이 던지는 화두 같았다. 친구의 이야기는 잘하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그래도 녀석 덕분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까 마음속에는 항상 녀석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수밖에 없는 거야. 아무리 비참하고 비굴하고 힘들어도 살아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있지. 말에는 힘이 담겨 있대. 그걸 언령이라 불러. 그러니까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고, 신중하게 대답해야 하는 거야."
어느 순간, 나는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기만을 할 뿐. 그녀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전부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그녀는 그저 말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며 사실 대화의 주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와도 돼. 나 이제 정말 괜찮아."
"아니, 이젠 내가 안 괜찮아. 그러니까 계속 올 거야."
"사실은 불안한 거 아냐? 나도 네 친구처럼 될까 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현재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희귀병. 그녀에게 달라붙은 지독한 녀석이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불안하다는 건 네가 살아있다는 가장 큰 증거야. 죽은 사람은 걱정도 고민도 없어. 네가 살아있기 때문에 고민하고 불안하고 절망도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감정조차도 쓸모없는 게 아니야. 살아있으니까 느끼는 감정인걸."
"그러니까 넌 살아. 네 친구와 내 몫까지 어떻게든 살아서 나중에 만났을 때 멋진 이야기를 들려줘.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사실 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선생님이 말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가버린 사람 걱정 같은 건 내버려 두고 넌 네 뜻대로 살아줘."
멋대로 상대방에게 살아달라는 부탁이라니, 꼭 마치 내가 죽을 사람처럼 말한다. 사실은 알 수 없다. 난 이미 한 번의 상실을 겪은 사람인 걸. 상실이라는 건 한 번 겪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겪으면 겪을수록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데. 결국 나를 떠나버리는 건가.
"함께했던 시간... 후회 같은 건 없지?"
물론이지. 그게 내가 그녀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그다음 날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부터 꽤나 심각한 상태였지만 마약성 진통제를 한 가득 복용하고 내가 오는 시간부터 가는 시간까지 버텼다고 했다. 대체 나란 놈은 뭘 한 건지. 곁에 있어준 마지막 사람 정도 되려나.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알 수 없다. 사실 그 녀석과 그녀가 없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거리는 여전히 붐비고, 도로 위엔 차가 가득하고. 거리는 화려하고 시끄러우며 나는 아침에 눈을 뜬다. 달라진 것은 이젠 병문안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기가 막히게 하루의 루틴을 잘 따라간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변하지 않은 채로. 후회하지 않은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삶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에 해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현재는 머물러 있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때까지는 살아봐야지. 별 방법이 없을 듯하다. 나중에 너희들에게 꼭 말해줄게. 그때에 미처 다 하지 못한 수많은 말들을.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