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Sonate Vom Guten Menschen.
한 사람의 인생이 타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그것도. 완전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아마도 쉽지 않을 일일 것이다. 그것도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 극과 극의 이데올로기가 휘몰아치던 1984년의 독일 베를린에서.
주인공 게르트 비즐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잔인한 프로 심문관으로 동독의 첩보기관 STASI(슈타지)의 비밀요원이다. 코드명: HGW XX/7.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은 그의 캐릭터가 어떠한 유형의 것인지 확고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친구와 보러 간 연극에서 유명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나온 게오르그 드라이만을 보고 그의 첩보 본능은 위험을 감지한다. 행동이 거만한(그의 시점에서) 드라이만은 장차 동독의 위험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그는 그 본능을 토대로 드라이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의 집 모든 곳에 도청을 깔고 이웃주민도 스파이로 만든다.
그런데 이 남자, 이상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만 하고 있다. 분명히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말이지. 요컨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황. 안 되겠다 싶어서 그의 집을 침입한다. 근데 뭐가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근데 웬 책 한 권(브레히트의 시집)이 있다. 가져가야겠다.
9월 푸른빛 달이 뜨던 그날
자두나무 아래서
그녀를 안았네
조용하고 창백한 나의 그녀를
마치 아름다운 꿈처럼
우리 머리 위로 펼쳐진 여름 하늘
구름이 내 눈길을 사로잡네
하늘 높이 떠 있는 하얗디 하얀 구름
눈길을 돌렸을 때 그곳에 없었네.
이상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가슴이 몽글몽글하다.
아니다! 나는 내 임무에 사명을 가지고 반드시 동독의 반란 분자를 색출할 것이다.
선생님이 목을 매 돌아가셨단 소리를 듣고 이 남자, 피아노를 친다.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레닌이 말했다지? 이 곡을 계속 듣다간 혁명을 완수하지 못할 거라고. 이 곡을 진심으로 듣고도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남자가 물었다.
안 되겠다. 이 남자를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감화되는 거 같다. 타깃을 바꾼다. 이 남자의 애인 크리스타로.
드라이만의 애인이지만 출세를 위해 장관과 양다리를 걸친 이 여자를 캐내면 분명 뭔가가 나오리라.
그런데 이 여자 안쓰럽다. 연약한 여자다. 도대체가 이 커플의 정체는 뭔가. 지켜주고 싶다. 아니 지켜주어야만 한다.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타인의 삶은 한 소설가로 인해 인생 자체가 바뀌어버린 한 첩보조직 비밀요원의 성장담이다. 그야말로 냉혈한 그 자체이던 비즐러는 드라이만이라는 소설가를 만나 자기 안에 내재된 감성을 일깨우고,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된다. 그 계기가 도청 때문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살아왔고 그 방향성에 의심을 품지 않았던 그가 흔들리고 깨지고 부수어진다. 비즐러의 미묘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다가도 결국 모두가 알 수 있는 그런 방면으로 흘러간다.
사실 제목에서 보이듯 타인의 삶. 말 그대로 나와는 다른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비즐러에겐 드라이만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었다. 비록 당시의 드라이만은 몰랐지만.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던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 한쪽에 동화되어 버렸다. 비즐러는 안다. 이 행위(도청)는 명백히 잘못된 것임을. 자신의 동독 정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딱 결론만 놓고 보자면 비즐러가 본 드라이만의 첫인상을 틀리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동독 정부의 위협이 될만한 인물이었고 실제로도 저항 운동을 하는 레지스탕스였다. 그러나 비즐러는 놓친 게 있었다. 자신이 그의 인생에 감화된다는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된 지 2년 후, 드라이만은 동독 시절에 자신의 모든 삶이 도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면에 숨어있던 비즐러의 존재도 알아차린다. 숱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자신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 비즐러가 모든 사실을 감춘 채 침묵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자신에 관한) 자료에 놀라면서도 그는 비즐러에게 감사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책 첫 페이지에 이렇게 쓴다.
'HGW XX/7 gewidmet, in Dankbarkeit.'
감사한 마음을 담아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통일 후, 우체부로 살아가던 비즐러는 우연히 서점을 지나가다가 드라이만의 책을 보게 되고, 첫 페이지의 문장을 읽은 뒤 점원에게 책을 구입하는데, 점원이 포장해 드릴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Nein, das est für mich.'
아니오.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단 한 줄로만 요약하라면 이보다 더 완벽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비즐러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관찰자였으나 어느 순간 그들에게 깊이 빠져 감독처럼 관여하기도 하고 그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끝내는 자신의 불이익까지도 감수하게 된다. 이 행위에서 수동적(관람만 하는 관람자)이었던 실제 관객마저 영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참여자(비즐러의 이단 행위를 옹호하게 되는)로 만드는데, 이 또한 이 영화가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비즐러를 이렇게 만든 것은 예술의 힘이다. 드라이만의 삶의 영향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렇다. 예술은 힘이 없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잘 모른다고 해서 내 삶에 큰 지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알면 좋은 것.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지선의 어떤 것. 하나의 좋은 예술은 충분히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드라이만의 진심을 알아본 비즐러의 인생이 바뀐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