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떠났다가
엄빠의 귀여움을 발견한 이야기

중년도 귀여울 수 있다

by 역마살찐년 김짜이

또 오래 전에 쓴 글을 발굴했습니다.




최근까지 아주 오랫동안 엄빠와 따로 살았습니다. 대학 때부터 나와 살았으니 근 9년에서 10년쯤(지금은 11년째다!)된 셈이죠. 고등학교 때까지는 중 2병을 심하게 앓기도 했고, 엄빠와 성격이 딱 맞지도 않아서 심하게 싸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불효새끼였어요. 불효자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아까울 정도로, 저는 그다지 효도에는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저지만, 큰 마음을 먹고 제주도에서 2박 3일을 엄빠와 할머니와 함께 보내기로 했고 그 결심 덕에 엄빠의 귀여운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 안내판을 꼼꼼하게 읽는 아버지

저는 보통 여행지에서 안내판을 다 읽는 편입니다. 가이드 갔을 때의 습성이기도 한데, 아버지도 똑같이 그러고 계시더라고요. 가이드 때문이 아니라 유전자에 각인된 습성이었나? 싶었습니다. 모든 안내판을 묵묵히, 하지만 꼼꼼히 읽으시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습니다.


2. 조식을 꼭 먹자고 하는 어머니

묵었던 숙소는 약간 고급스러운 펜션이었는데요. 아침을 제공하는 옵션이 있어 골랐는데,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꼭 먹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어제 먹고 남은 매운탕에 밥을 드셨고요. 어머니와 내려와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고보니 어머니는 조식이라는 게 먹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평소 하고 싶은 게 분명한 어머니라니, 역시 귀엽습니다.


3. 아버지의 첫 셀카 시도

어른들이 여행에 가서 사진을 많이 남기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향은 사뭇 달랐어요. 아버지는 주로 셀카를 찍으셨는데, 셀카를 처음 찍으실 때 카메라를 어떻게 안쪽으로 돌리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알려드린 후에는 군데군데에서 셀카를 찍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귀엽게시리.


4. 어머니의 사진찍어달라는 요청

반면 어머니는 어딜 가나 내게 카메라를 건네시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여기저기 찍어 드렸는데 나중에는 살짝 귀찮아하긴 해서 죄송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카메라를 내미셔서, 나중에는 그냥 제가 먼저 찍어드렸습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신나 하시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5. 밭작물을 유심히 살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원래 농부셨어요. 어릴 때부터 집안을 도와 농사를 짓던 소년이었고, 자라나서도 동네에서 유명한 효자이자 농부였던 아버지. 결혼을 하고 나서는 돈을 벌기 위해 염색공장에 취직을 하시게 되었지만, 주말이면 할머니댁에 가서 여전히 농사를 도우십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의 농산물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놀고 있는 밭이 있으면 저 밭을 왜 놀리냐며 탄식을 뱉기도 하셨는데 그 모습이 또 귀여웠습니다.


6. 모바일 예약 기능에 어리둥절해지는 엄빠

카멜리아 힐을 갔었는데, 표를 현장에서 끊는 것보다 모바일로 예약하는 게 더 저렴했어요. 휴대폰으로 뭘 툭툭거리더니 표를 안 끊고 입장하는 게 신기하셨나봐요. 표를 안 끊어도 되냐고 여러 번 물어보셔서 그게 참 귀여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흔하고 쉬운 일인데, 엄빠께는 그렇지 않구나 싶어 마음이 좀 짠하기도 했고요.



이 글을 시작했을 때는 인도를 가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재작년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다시 취직을 했고 열심히 돈을 모아 아버지가 환갑이 되신 작년, 기념으로 가족끼리 다 같이 오키나와에 다녀왔습니다. 네 명 가족이 3박 4일에 250만원밖에 안 쓴 저렴이 여행이었지만 두 분은 충분히 만족하신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여행하셨을 때의 귀여운 모습보다는 점점 익숙해지는 모습이 보여 기뻤어요. 여러번 그럴 기회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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