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먹고 여행하다
펑펑 울었던 이야기

청주 여행 실패담

by 역마살찐년 김짜이

어디서 그 소식을 먼저 봤을까요?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인터넷을 떠돌다가 우연히 사랑 인도 축제가 개최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도 가이드북을 쓰신 환타님이 말해주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인도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인도 문화 알리기 축제 같은 느낌으로, 까탁과 오디쉬 공연에, 동대문 메리어트 부페에서는 인도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여러 가지 부대행사도 열리는 그런 축제였어요. 게다가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무료였습니다. 당연히 안 갈 순 없었죠!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글쎄, 서울 공연은 이미 다 매진이 된 거예요. 행사 주체가 대사관이기에(그리고 다른 컨택포인트가 적혀있지 않기에) 전화를 걸어서 혹시 다른 곳에서 표를 구할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랑 인도 축제 꼭 보고싶다고.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표는 다 매진되었으며 당일날 와서 취소표가 있을 경우 입장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취소표가 나올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찾아보니, 볼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내로 입국한 인도 무용수들은 전국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까탁 무용수들과 오디시 무용수들이 내한했는데, 카탁은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무용이고 하니 오디시를 꼭 보고 싶었습니다. 오디시 공연 자체가 흔히 보기 어렵고,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오딧샤 주 여행을 반추하기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찾아보니 지난 주 일요일 청주에 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더라구요. 고민 없이 청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 때는 몰랐습니다. 이 여행이 그토록 참혹한 실패로 끝날 줄은…….


공연 시간 전에 박물관에 잘 도착할 수 있게 티켓을 끊고, 커피도 큰 걸로 한 잔 사들고 신이 나서 버스를 탔습니다. 날씨도 너무 좋고, 길도 안 막히고, 더할 나위 없었어요. 너무 잘 풀린다 싶은 이 때부터 저는 알아야 했습니다. 이윽고 청주에 도착했습니다. 택시 승강장 아래 인도로 보행하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인도를 다녀온지 얼마 안 된 저는 그 두 글자만 보고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릴 기세로 기뻐했습니다. 인도! 인도! 인도!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은 제법 막혀서, 원래는 20분 예정이었는데 무려 40분이나 소요되었습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앞에 내리자 어마어마한 계단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공연에 대한 열정에 불타올라 거의 날듯이 계단을 오르다가, 올라가는 길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보고 기뻐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청명관으로 입장했습니다.


바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덮쳐왔습니다. 공연장으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문 앞에 뭔가 내걸려 있었습니다. 입장 마감이라는 팻말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입장 마감이라니? 인원이 정해져있다는 말은 없었잖아?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습니다. 이거 하나 보겠다고 서울에서 왔다고, 구석에 서서라도 보게 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관리자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도착했는데, 공연을 볼 수 없다니……. 그리운 인도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없이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어버려서였는지, 그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줄기 또르륵 흐르는 게 아니라, 두세 줄기씩 콸콸 흘러나오는 겁니다. 이해가 되기는 했습니다. 공연의 분위기를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 서서 보는 건 안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어떻게든 안 될까 싶어서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여성분이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나오시면서 애들이 너무 울어서 못 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명 자리가 비었으니 기다리는 사람들을 들여보내라는 말씀도 함께요. 그러면 이제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두 분이 들어가셔야 하는 게 마땅한데, 국립청주박물관 직원들은 확인하려는 제스쳐도 취하지 않고 그저 입구를 막고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더 들여보내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그 목소리를 전달할 공기가 사라진 것처럼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빈 자리 제가 파악할 테니까 기다리신 순서대로라도 들어가게 해 주시고, 그래도 못 들어가면 포기하겠다고 말했는데도 안 된다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자리를 파악하고 안내할 수 있었는데도, 안내방송도 내보내지 않고 그저 문을 닫기에만 급급했습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무능한 대처였습니다. 좌석 수가 정해져있는 공연장의 공연이었다면 선착순 입장 정도는 미리 고지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예상 관객 수도 계산하지 않고, 또 예상보다 관객들이 많이 모였을 때의 대처법도 전혀 없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거기다가 책임자로 보였던 중년 남자 직원의 짜증섞인 대응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한심했습니다. 공연을 진행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걸까요...... 국립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기관에서 진행된 행사라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보러 갔었던 무료 영화 상영회도 이것보다는 나았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결국 공연은 시작되었고, 바깥의 티비로 중계되었지만 그나마도 나오다 말다 나오다 말다 할 뿐더러 음향도 재생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여기 뭐 인도인가요? 그래도 충청도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곳이 이렇게 엉터리일 수가 있나요? 아까부터 쏟아지던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아서, 더 못 보고 돌아섰습니다. 다음 공연은 월요일 춘천이었습니다. 연차라도 내고 보러 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물관이라도 관람하고 싶었지만, 중년 남직원의 엉터리 일처리 때문에 박물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 둘러보지 않고 나왔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데, 버스가 한 시간 뒤어 온다고 뜨는 겁니다. 욕할 기운도 안 나서 하늘이나 보고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두 여성분께서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알고 보니 공연장에서 들어가지 못한 분이었는데, 제가 엉엉 울고 있는 걸 보고 내심 안쓰러우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울고 있을 때 직원에게 저라도 들여보내주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운 마음에 다시 눈물이 삐져나오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아냈습니다.


그런데, 이 곳은 버스가 자주 안 다닌다며 버스를 탈 만한 곳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처음에는 몇 번 거절했지만, 결국 염치불구하고 탔습니다. 꽤 먼 거리를 태워주셔서 도청 앞에 내려주셨습니다. 커피 쿠폰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번호를 여쭤봤지만 그저 청주 사람들이 다 그런 거 아니라고, 청주 사람들 친절하다는 것만 기억해달라 하셔서 결국 또 삐죽삐죽 울었습니다.


길에 서서 눈물을 훔치다가 이대로 서울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보 같은 박물관 직원이 있는 동네지만, 이렇게 마음 좋은 분들도 계시는 동네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든 기분을 풀고 가자 싶었습니다. 그때, 아까 박물관으로 가는 중에 봐 두었던 가게가 떠올랐습니다. '외롭고 웃긴 제과점'. 특이한 이름이 평범한 간판들 사이에 걸려있길래 검색해봤죠. 케이크와 타르트를 파는 집이었습니다. 공연 끝나고 기쁘게 먹고 마시려고 점찍어뒀었던 곳인데, 이렇게 비참한 기분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두 여성분의 따뜻한 배려로 기분이 한층 나아져서 다행이었습니다. 눈물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가는 길에는 외롭고 웃긴 가게라는 작은 소품샵도 있었습니다. 분홍색과 짙푸른색으로 되어 있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반짝거리는 온갖 문구류와 소품들이 있어서, 구경만 하는데도 한참 걸렸습니다. 특히 변신소녀물을 모티브로 한 아이템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딱딱히 굳었던 얼굴이 점점 말랑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렴해 보이는 몇 가지 문구를 집어들고 계산했습니다. 어쩐지 샵의 사장님도 제가 운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무척 친절하시고 따뜻하셨거든요.


외롭고 웃긴 제과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탄사가 터져나올 만큼 예쁘고 귀여운 타르트와 케이크들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힐링이었는데, 주문한 커피에 꽂혀 나오는 빨대까지 하트 모양이어서 결국 작은 웃음을 터트려 주셨습니다. 분홍빛의 무화과 타르트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습니다.


한참 타르트와 커피를 먹고 마시고, 가게 구경도 하다가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보통 여행을 떠나도 이 정도로까지 맹목적으로 실패하진 않았는데……. 울릉도 같은 경우에는 아예 배가 안 뜰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미리 고지를 받았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연 때문에 내려간 곳에서 설마 공연을 못 보게 될 줄은 몰랐죠. 세상은 넓고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들은 많습니다. 서른을 먹어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엉엉 울게 되는 일도 있는 겁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떤 어린이도 울지 않았는데……. 서른 먹은 어른이 울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하게 창피합니다. 아무튼, 아무리 슬픈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잘 추스려야죠. 이렇게 무화과 타르트같은 맛있는 걸 먹어가면서 말이에요.


외롭고 웃긴 제과점에 걸려있던 네온사인처럼, 외롭고 웃긴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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