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두었던 다섯 가지 비기
사람이라는 게 참 이상한 존재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요. 밥 먹으면서 음식 얘기 할 때, 등산하면서 등산 얘기 할 때처럼 지금 하고 있는데도 또 얘기할때가 그렇습니다. 특히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는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사람이란 참 욕심이 많은 존재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달까요.
몇몇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여행 얘기를 할 만큼 여행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저 같은 사람은 여행을 떠나와서 이번 여행은 이랬으니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면 되겠다, 하고 계획까지 짜 버리곤 해요. 미련퉁이같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습관 중에 하나입니다.
여행을 이렇게나 좋아하니 여행이 끝났을 때의 후유증도 제법 큰 편인데요.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의 아쉬움과 내가 있는 곳이 일상 속 장소라는 사실에서 오는 허탈함, 바쁜 일상에서 잠깐 짬이 났을 때 느껴지는 씁쓸함이 배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감정에 쉽게 잠식되는 편인지라, 가만히 두면 한없이 가라앉아버리곤 해요. 그래서 일부러 더 적극적으로 여행 후유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첫 번째로, 여행을 자랑합니다.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다녀온 여행지가 어땠는지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마음껏 보여줘가면서 뭐가 좋았는지, 어떤 맛있는 것을 먹었는지 자랑합니다. 선하고 참을성 좋은 제 지인들은 그런 제 자랑에 열심히 장단을 맞춰줍니다. 그러고 나면 제가 여행에서 보낸 시간이 더 행복하게 남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남들 다 하는 사진 보며 추억팔이 하기입니다. 심심하거나 쓸쓸할 때, 특히 자기 전에! 누워서 하염없이 여행 사진을 둘러봅니다. 아, 이 풍경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사진으로는 잘 안 나왔네, 이거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다, 다음 번에 가면 반대쪽에서 찍어봐야겠다. 실컷 중얼거리면서 사진들을 보고 나면 슬펐던 마음이 사라지고 여행지에서 느꼈던 긍정적인 기분이 되살아납니다.
세 번째, 여행기 쓰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카페에 가 앉습니다. 편안하게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카페라면 더 좋아요. 노트북, 또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펼쳐놓고 화면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아요. 커피만 쭉쭉 빨아들이고 있을 뿐. 사진첩을 뒤적거리고, 예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들도 보면서 그때의 느낌을 되살려야 합니다. 서서히 기억들이 떠오르면 놓치지 않고 천천히 쓰면 됩니다. 기억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쓰다 보면 점점 선명해지는 추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문장이 조금 어눌해도, 단어가 고급스럽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가장 중요한 건 여행을 기록한다는 것! 하나의 여행기를 다 쓰고 나면 여행 후유증 같은 건 온데간데없습니다. 오히려 글을 완성해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매우 좋아집니다.
보통의 후유증은 위의 세 가지 방법을 썼을 때 사라집니다. 하지만 가끔 여행 후유증이 너무 극심하게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을 때! 그럴 때 저는 여행 계획을 짭니다. 새로 떠날 여행 계획을 짜는 게 아니라, 갔었던 여행지에 대한 계획을 다시 짜는 겁니다. 만약에 다시 간다면 다음 여행에서는 이렇게 여행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서요. 여행은 언제나 계획대로 될 리가 없잖아요? 가려던 곳을 못 가는 상황이 흔하고, 막상 가도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계획에 없던 곳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고 말이죠. 어떻게 돌아다녀도 미련이 남는 게 여행이니까 같은 곳의 여행 계획을 또 짜더라도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에서 어렴풋하게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났을 때는 그렇게나 행복했으면서, 돌아와서는 후유증에 시달리다니. 참 모순적이죠. 그래도 여행을 안 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짜릿할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거든요.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서 여행지 냄새가 날 때요. 분명 서울에 있는데 순간 여행지로 확 끌려들어가는 느낌은 황홀하기까지 해요. 그 순간이 지나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모든 것이 그리워집니다. 여행지에서 했었던 사소한 대화까지도요. 조금 시무룩해질 때, 그렇게까지 그리워할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충분한 위로를 받습니다. 불어온 바람 하나에 이렇게까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느낄 수 있다니. 과연 사람도 여행도, 참 이상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