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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 Heather Aug 11. 2017

디지털 노마드가 된 여행자




나는 제작자도, 개발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프리랜서도 아니다.



영어 점수, 사회생활, 스펙 없이 학창 시절에 호텔과 옷가게에서 한 아르바이트 경력 몇 줄로 채워진 이력서를 들고 20살에 한국을 떠나 호주,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일본, 아일랜드, 영국, 독일, 미얀마, 캄보디아 그리고 다시 서호주의 퍼스라는 곳에 돌아와 살고 있다.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한국을 떠났고, 여행의 매력에 빠져 여행을 한지도 어느덧 6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여행 커뮤니티에서 나를 보았다며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나는 현재 서호주 퍼스에서 여행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여행을 업으로 삼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싱가포르에서 살 때 누군가 나에게 '현재 직업을 유지하면서 가이드를 하면 용돈 벌이를 할 수 있대'라고 알려주었지만,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현재 마이 리얼 트립처럼 현지 거주자가 직접 가이드가 돼서 안내를 해 주는 것이 상당히 인기 있는데, 그때 그 말을 자세히 한번 생각이라도 해 봤다면 꽤 많은 용돈을 벌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온라인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하고 있다.


내 직업의 특성이라고 하기보다는, 회사 대표님의 특성 때문에 나는 강제적(?) 디지털 노마드가 되었다. 쉽게 말해, 노트북 그리고 휴대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도 서쪽 끝에 고립된 서호주 퍼스처럼, 사람을 회사라는 한 곳에 그것도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고립시켜 놓는다고 해서 일의 능률이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으신 신세대적 사고를 가지신 대표님의 제안이었다.





싱가포르에서 3년이란 시간을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했지만, 책상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일은 아니었다. 서비스직이었기 때문에 직접 손님들을 마주하고, 전화 혹은 이메일로 손님을 다루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나에게 생애 첫 번째 '회사 일'과도 같았다. 6년을 여행자로 살아오며 마음 한 켠에는 정장을 입고 평일만 일을 하고 주말은 쉬는 직장 생활을 한번 해 보고 싶은 꿈도 있었다. 20살 초반에 엄마가 말했던 '가을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안 되겠니?'와도 부합하는 꿈이다.


여행업이 처음이니 만큼,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많이 없었다. 강제로 일을 시키기보다는 내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대표님 덕분에 남을 보다 편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신입인 내가 시드니로 긴 출장을 갈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으니 말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내가 직접 가이드로 나간 적도 있었다.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남을 위한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이였다. 현지에서 거주하며 내가 아는 것들을 생생하게 전달 해 줄 수 있는 것 만큼 좋은 자산도 없다.





시드니로 출장을 다녀와서 놀랐던 점은, 한국에서의 삶처럼 다들 바쁘다는 것. 워낙 경쟁자가 많은 것도 이유일 테며, 하루에도 수천 명 혹은 그 이상의 여행자가 방문하는 시드니라 그런지 모두가 바빴다. 평일은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업무도 항상 바빠 보였다. 그들의 일상을 보며 배운 점도 많았고 어쩌면 느리고 여유로운 퍼스에서의 생활을 한번 더 돌아보고 나를 채찍질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일에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주말에는 쉬는 직장 생활을 경험해 봐서 좋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좋기만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듯 재택근무/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나만의 타임테이블을 짜서 움직여야 한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출근, 퇴근 시간은 없기 때문에 내가 룰을 만들어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의 능률도 떨어질 뿐 아니라 나의 책임감과 의욕도 상실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아니므로 평일은 스케줄을 만들어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루의 일을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이 따로 없는 것은 대표님이 나를 알아서 잘 할 거라 믿으시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감사드린다.



누군가 나에게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사실 그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늦잠을 잘 때도 있고, 밤늦게 밀린 일을 하기도 하고, 게을러지기도 하고 능률이 떨어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한 번은 너무 능률이 떨어져 오히려 대표님께 앞으로 주에 몇 번은 회사에 나가고 싶다고 말 한적도 있다. 집에서 도저히 일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회사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현재는 주에 1-2번은 회사에 출근을 하여 미팅도 하고 바람을 쐬고 온다. 강제적인 것이 아니니 부담감은 없다.



디지털 노마드


일과 주거에 있어 유목민(normad)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도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을 뜻한다. 이전의 유목민들이 집시나 사회 주변부의 문제 있는 사람들로 간주되었던 반면에 디지털 노마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여 정보를 끊임없이 활용하고 생산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인간 유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며 나에게 가장 장점으로 다가오는 것은 단연, 일의 초점이 나한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오랜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 어딘가에 묶여 정해진 틀에 나를 끼워 넣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싶을 때는 여행을 다녀올 수 있고 인터넷이 터지는 모든 나라, 그리고 노트북과 휴대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이메일과 메시지를 체크할 수 있고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나에게 딱 맞다. 그 덕분에 며칠 전에는 발리와 윤식당 촬영지 길리 트라왕안을 잘 다녀왔고 생각보다 인터넷이 터지는 곳이 많아 틈틈이 일을 할 수 있었다.



나처럼 컴퓨터를 잘 다루거나 좋아하며, 여행을 좋아하고, 안정감보다는 불안정함의 매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딱 맞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근사하게 들린다고 해서 무조건 재택근무/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봉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규칙적이며 평범하고 어쩌면 벗어나고 싶은 삶이 나에게는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꿈(?)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서가을 (Heather)

20살에 한국을 떠나 6년째 여행중인 여행자

호주 퍼스 여행사 마케팅 매니저

15살 소녀, 헐리웃 배우 아담 샌들러 싸인을 받다

나의 6년간의 세계여행 총 결산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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