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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Mar 15. 2020

드디어 디데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구나

동남아 배낭여행 - D-Day


 새벽 5시 반, 빛도 안 들어오는 데 눈이 번쩍 뜨였다. 시계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회사 다닐 때에는 알람을 5분 단위로 맞춰서 겨우 일어났는데, 퇴사 첫날인데 새벽같이 일어나다니’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대감과 두려움에 찬물로 세수를 하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침대에서 벗어나서 샤워를 하고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방 정리를 했다.


 3 반을 지냈던  방도  정리하고 나가려니 기분이 뒤숭숭했다. 퇴사와 동시에 배낭여행이라는 숙제에 플러스로 3 반을 지냈던  방과도 작별이었다. 참고로, 독립적인 삶을 좋아하는 이모의 압박에도 꿋꿋이 9 퇴사와 동시에 방을 빼겠다고 타협을  놓은 상황이었다.

변화하는 삶을 항상 동경하지만 나와는 항상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쫄보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한꺼번에 닥쳐온 변화들이라니.

 집 식구들이 눈 비비고 다 일어나서 떠나는 내 옆에서 자꾸 힘을 불어넣어줬다.

“언니 너무 부러워.. 나 가방에 넣어서 가줘”

“아니 나를 넣어가 줘~~”라고 외치는 동생들에 앙탈에 긴장감이 조금은 풀어졌다. 심지어 우리 이모는 전 날 새벽 비행기로 싱가포르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 닦고 공항 길에 따라나섰다.



 매번 오는 공항인데,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서 그런지 그 날 따라 공항의 공기는 또 참 달랐다.

체크인을 마치고 이모랑 KFC에 앉아서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나의 마음을 간파하고 이모는 옆에서 또 이야기를 참 조잘조잘 많이도 하고, 말레이시아 링깃을 탈탈 털어서 줬다. (100링깃 정도였나) 그리고 출국하는 게이트 앞에서는 또 사진을 찍자며 나를 DEPARTURE 가 쓰인 곳 앞에서 사진기를 막 들이대었다. 그리고 출국하기 전에 이모가 한 말은 나의 여행에 대한 긴장감과 두려움을 다 씻어주었다.


“가람아, 이 여행 네가 계획한 대로 꼭 끝까지 다 안 해도 돼.
만약에 여행하다가 힘들면 그냥 와도 돼.”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획한 건 스트레스를 옴팡 받아가며 끝내려고 하는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역시 내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역시 나의 소울메이트..


상상력이 좋은 나는 (부정적으로 말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 ‘여행하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만약에 집에 오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그냥 한 군데에만 있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비행기는 이미 예약해 놓았는데.. 그때까지는 여행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이 아름다운 퇴사 여행을 곧 숙제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괴로워하는 마음을 읽어준 이모 덕에 공항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던 하늘은 참으로 맑았다

나는 비행기를 타서는 꼭 기도를 한다. 예전에 심한 난기류를 만난 후에는 항상 기도를 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가는 내내 비행기가 안 흔들리고 잘 도착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도착해서도 여행을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중얼중얼 참 이것저것을 주절거리며 하나님께 땡깡을 놓는다. 아! 참고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하나님은 계실 것 같아서 믿는다. 기도를 마치고 보는 하늘은 정말 맑았다.


하나님께서 이 쫄보의 땡깡을 이번에는 받아주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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