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 서핑이란, 서퍼의 자세
내가 '카우치 서핑'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듣게 된 것은 2015년 겨울이었다. 그때 나는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나와 동갑인 한 여행자의 여행 스토리에 흠뻑 빠져있었고 충동적으로 유럽행 비행기표를 질러버렸다. 혼자, 그것도 한 달 이상 길게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인지라 떨리고 긴장됐지만 비행기표를 끊는 그 순간부터 나는 이번 여행에서 '카우치 서핑'을 이용해보기로 굳게 마음먹은 상태였다. 이미 통장에서 돈은 빠져나갔고 비행기표를 물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호스트가 안 구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카우치 서핑 사이트에 접속하게 되었다. 그게 내 카우치 서핑의 시작이었다.
카우치 서핑 사이트 주소: https://www.couchsurfing.com/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란 소파를 의미하는 Couch와 Surfing의 합성어로 직역하자면 여행자들이 자신이 묵을 수 있는 카우치를 찾는 것이다.
카우치 서핑에는 잠자리를 제공하는 '호스트'와 호스트가 제공한 공간에서 머무르는 여행자인 '서퍼'가 있는데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위 그림에도 나와있듯이 호스트는 서퍼에게 무료로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준다. 왜 생판 모르는 남에게 잠잘 공간을 무료로 제공해줄까. 나는 카우치 서핑의 본질적인 목적이 '문화교류'라고 생각한다. 호스트는 아무런 대가 없이 서퍼에게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서퍼를 통해 다른 문화를, 혹은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공간을 흔쾌히 내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서퍼는 호스트의 집을 단순히 무료로 묵을수 있는 호스텔 쯤으로 인식해서는 절대 안 된다. 문화교류 같은 단어를 사용해 거창해보이지만 쉽게 말해 좋은 현지인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호스트와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서퍼는 호스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문화를, 자신의 여행을 공유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 정도면 카우치 서핑이 무엇인지는 다들 이해했을 것이다. 동시에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퍼는 호스트와 문화를 교류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지금부터는 서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호스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단,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므로 다른 방식으로 카우치 서핑을 하는 서퍼들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호스트와 함께 시간 보내기
: 서퍼가 호스트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카우치 서핑을 할때 되도록 저녁 시간 전에는 호스트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혹여나 야경을 보거나 하는 등의 일정이 있을 때는 미리 호스트에게 양해를 구했었고 호스트들 역시 여행자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해주었다.
여기에 한가지 더, 호스트의 생활패턴을 고려해야 한다.
서퍼는 여행자이기에 비교적 시간 사용에 자유롭지만 호스트는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보통 묵는 첫 날 호스트에게 "혹시 몇시쯤 돌아오는게 좋을까?"와 같이 물어보곤 했다. 호스트가 서퍼에게 집 열쇠를 주는 경우는 비교적 자유롭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호스트의 귀가 시간에 맞춰서 들어와야 할때도 있으므로 미리 호스트와 이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열쇠의 유무를 떠나 호스트와 함께 저녁을 먹는 등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기
솔직히 나는 낯을 조금 가리는 편이다. 영어도, 못하진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엄청 능숙한 것도 아니다. 카우치 서핑도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잘 맞는 호스트도 있고 괜히 어색한 호스트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잘 맞는 호스트와는 딱히 어색하다는 느낌 없이 대화가 잘 이어졌지만 간혹 대화가 자주 끊기거나 어색한 순간이 존재하는 호스트도 있었다. 이런 순간 나는 그 상황을 회피하기 보다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그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거나 내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새로운 화제를 제시하는 등의 노력 말이다.
★한국 음식 만들어주기
아무리 외국이라 하더라도 왠만한 큰 도시에는 아시안 마트나 한인마트가 하나쯤은 있다. 없다 하더라도 외국재료로도 만들 수 있는 한식들 역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호스트의 집에서 묵는 기간 중 충분한 여건이 된다면 최대한 한번쯤은 호스트에게 간단한 한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한식을 해주는 게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호스트와 친해지면 내가 먼저 만들어주고 싶더라.)
첫 카우치서핑때는 떡볶이를 만들어주었고(그런데 호스트 친구들이 너무 매워해서 미안했다) 모스크바 호스트들에게는 참치전을 만들어주었다. 아무리 요.알.못이라고 하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 겁먹지 말길. 나도 그랬으니까.
**추천하는 음식: 전(참치전, 부추전 등), 계란말이, 찜닭, 떡볶이, 잡채 등
★호스트를 위한 작은 선물
이것 역시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낭 여행자 더군다나 장기 여행자라면 이런 선물을 미리 준비해 들고 다니기란 사실 힘드니까.
나의 경우엔 출국 전 얇은 전통 책갈피 5~6개를 배낭에 챙겨 여행을 떠나곤 했다. (전통적인 느낌도 나면서 부피도 별로 안 차지해 좋았다.) 서퍼들마다 이 선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꼭 돈을 주고 산 물건이 아니여도 괜찮다. 호스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주거나 자신이 여행 중 찍은 사진을 뽑아 편지를 적어 주거나 다른 여행지에서 샀던 기념이 될만한 물건을 주는 것도 모두 좋다. 사실 '선물'이란 것보다 나의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이 정도만 알아도 혹시나 호스트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까, 혹시나 내가 무례한 행동을 하진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스트와 친구가 된다면 이런 것들이 뭐가 중요할까 싶다. 이미 마음이 잘 맞는 친구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