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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an 05. 2019

05.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했다

모로코, 마라케시

“전 모로코에 다시 와도 마라케시는 절대 안 갈 거예요.”    

 

  하실라비드에 머무는 동안 만난 여행자 중 마라케시를 거쳐 온 이들은 하나같이 ‘마라케시는 정말 별로예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삐끼도 많고 더럽고….’로 시작되는 마라케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맞아. 마라케시가 삐끼가 정말 많지. 한걸음 걸을 때마다 호객행위를 하는 건 좀 심하잖아? 걷다 보면 땅에 벌레는 얼마나 많이 기어 다니는지…. 어디 그뿐이야? 제마엘프나 광장의 공기가 너무 안 좋아서 목감기가 더 심해지기도 했었는데…. 그때 사진작가님이 주신 약이 아니었다면 아마 메르주가로 가는 버스에서 엄청나게 고생했을 거야.’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너의 마라케시는 어땠냐고 물어올 때면 나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하곤 했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삐끼도 많고,

  더럽고,

  호스텔은 찬물만 나와 제대로 씻지도 못했지만.      


  모두가 별로라고 말했던 마라케시가 나는 좋았다.      



  마라케시는 모로코 여행의 첫 도시였다. 그래, 모로코. 내가 이번 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자 한국에서부터 기대와 걱정을 반복했던 모로코 말이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첫 도시인 마라케시만큼은 한국을 떠나기 전 동행을 구해둔 상태였고 한 시간의 연착 끝에 도착한 마라케시 공항에서 무사히 동행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 여행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순주야, 어떡하지? 나 데이터가 안 터져.”

  제마엘프나 광장으로 향하는 택시 안, 인터넷을 켜보았지만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눌러봐도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라는 글자만이 나를 반겼다.

  “걱정하지 마. 이따 호스텔 스태프한테 물어보면 도와줄 거야.”

  순주의 말에 ‘그렇겠지?’하고 대답하면서도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른 동행들처럼 공항에서 유심을 샀어야 했나? 아니면 기다리는 동행들에게 미안해서 데이터가 제대로 터지는지 확인도 안 하고 기차역을 떠난 게 문제였던 걸까? 동행들과 함께 있는 마라케시는 괜찮겠지만 메르주가는, 페스는 어떻게 하지?’

 다른 나라였다면 “유심이 없는 게 뭐 어떻다고…. 아날로그적이고 좋네!” 하며 이곳저곳 쏘다녔을지도 모르지만, 모로코는 아무래도 걱정이 앞섰다.

 

  결국, 내가 숙소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호스텔 스테프에게 유심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었다.


  “혹시 이 근처에 유심을 살만한 곳이 있니?”   

  

  드디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설렘을 가득 안고 물어본 질문이었건만 그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구글맵에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방금 떠나온 마라케시 기차역을 가장 가까운 모로코 텔레콤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정말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가야 하나?     

  “무슨 일이야?”     

  내 얼굴이 자못 심각해 보였던 걸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쇼파에 앉아 있는데 다른 스태프가 말을 걸어왔다. 친절한 그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나의 걱정거리를 술술 이야기했다.

  “기차역에서 유심을 사고 충전도 했는데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그런데 가장 가까운 모로코 텔레콤이 기차역인가 봐. 나는 내일 아침 버스를 타고 메르주가로 가야 해서 시간이 많지 않거든.”


  “음…만약 핸드폰 설정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유심을 새로 사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그의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 한국에서도 핸드폰이 없으면 길 못 찾는데…. 이러다가 진짜 모로코에서 미아 되는 거 아냐?


  “한번 내가 봐볼게. 핸드폰 좀 줘볼래?”

  “고마워.”     


  의례적인 감사 인사였다.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채 그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뭐, 얼마나 열심히 봐주겠어. 난 오늘 처음 본 타인인데…. 그냥 몇 번 건드려보다가 말겠지. 그나저나 유심은 정말 어떻게 한담?’     


  언제 핸드폰을 돌려주려나, 생각하고 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몇 번 건드려보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했던 나를 비웃듯 그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분도 넘게 끙끙거리고 있었다. 핸드폰 설정을 바꿔보고 주변 다른 스태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핸드폰으로 모로코 텔레콤에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그에게 핸드폰을 넘겨줄 때 내 모습은 어땠던가.     


  말로는 고맙다고 하면서도 그의 호의를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았나. 그는 호스텔 스태프니까 그의 친절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이 세상에 당연한 친절 같은 것은 없는데도. 그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모로코, 제마엘프나 광장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작은 친절함은 내가 잠시 걱정을 내려놓고 모로코를 온전히 마주하기에는 충분히 따뜻했다.     

  그의 작은 친절함이 전해진 그 순간부터, 모로코는 나에게 더이상 낯설고 무서운 나라가 아니었다. 비록 삐끼도 사기꾼도 많고 호스텔은 따뜻한 물조차 안 나오지만, 처음 본 여행자에게 작은 친절함을 베풀 줄 아는 따뜻한 사람들도 있는 그런 곳.     


  그게 나의 마라케시였고,

  나의 모로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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